주간동아 330

2002.04.18

이랬다저랬다 … 노무현 왜 이러나

對 언론 강경발언 관련 잇단 말바꾸기… 트레이드마크 ‘원칙론’에 흠집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0-28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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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랬다저랬다 … 노무현 왜 이러나
    ”동아, 조선이 소유지분 제한 주장을 포기하라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모략을 당하고 있다.”

    지난 4월6일 민주당 대선후보 인천 경선에 나선 노무현 후보는 자신의 과거 발언과 노선에 대한 유력 언론들의 검증 기사에 대해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언론에 비굴하게 굴복하는 정치인이 되지 않겠다”며 일부 언론에 대해 정면으로 맞설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노후보의 ‘폭로’는 곧바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왔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언제 포기 압력을 넣었는지 밝히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 노후보는 양 언론사의 요구에 구체적 근거를 대지 못하다가 급기야 “보도 경향을 보고 그런 것이다. 조선일보에 미안하다”며 물러섰다.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명시적으로 누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다만 여러 차례의 취재 형태가 압력으로 느껴졌다”며 주관적 판단에 따른 문제 제기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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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노후보의 이 같은 ‘말’ 때문에 대혼란을 겪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그의 발언으로 경선은 언론과의 갈등으로 비화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과격한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유력 언론 국유화 및 폐간 발언에 대한 그의 해명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 또 다른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후보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지켜보던 같은 당 조순형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문이 대선후보 경선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가닥을 잡고 정리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노후보측은 모략과 관련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노후보측은 최근 일부 언론의 국유화 및 폐간 발언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캠프 참모진은 이 문제가 자칫 거짓말 논쟁으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노후보에게 ‘발언 수위’를 낮출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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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5명의 기자와 술자리에서 나눈 언론사 국유화 및 폐간 발언에 대한 노후보의 해명은 여러 차례 내용이 바뀌었다. 당시 발언이 공개되자 노후보측이 보인 첫번째 반응은 “조작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유종필 언론특보)는 ‘조작극론’이었다. 그러나 같은 날 밤(4월4일) 11시 MBC ‘100분 토론’에서 노후보는 “밥 먹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한 얘기를 듣고 와 따지면 어떻게 하나”라고 말해 폐간 발언이 술자리에서 오간 얘기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다음날인 5일 저녁 경인방송 후보 토론회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이인제 후보가 “(폐간 얘기를) 했느냐, 안 했느냐”고 다그치자 “그런 얘기를 의미 담아 한 적은 없다”고 답변했다. 명확하지 않은 답변에 사회자가 “그냥은 했다는 말이냐”고 다시 묻자 노후보는 “그냥 한 것, 안 한 것은 기억 밖의 일”이라고 얼버무렸다. 정동영 후보가 “두 후보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책임론을 제기하자 노후보는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내가 100%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술 먹고 어쩌면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인데, 나는 그런 사고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고 있다”며 사실상 발언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노후보는 다음날(6일) 인천 경선 연설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고 다시 말을 뒤집었다. 노후보는 7일 발표한 ‘최근 언론 관련 현안에 대한 입장’에서는 “어느 기자가 세금 추징을 당하면 문닫는 것 아니냐고 해서, 돈 없으면 문닫는 거지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며 자신의 발언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언론 문제에 관한 한 노후보는 누구보다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언론 세무조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노후보는 “언론과의 전쟁 선포도 불사해야 한다”는 말을 비롯해 조선일보를 ‘조폭 언론’이라고 지칭하는 등 강경론을 펼쳤다. 그러나 최근 이런 발언이 문제가 되자 “그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그런 용어를 사용해 질문을 하기에 동의했을 뿐”이라며 기자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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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은 해체되어야 한다”(88년 7월 국회 대정부 질문)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89년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 등의 과거 발언이 문제 될 때도 “당시 발언과 지금 생각은 같지 않다. 연설의 특정문구만 떼어 사상 검증하려는 극우언론의 극우적 수법이다. 그곳에서는 장(場)의 논리라는 게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좀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할 수 있다”(3월 KBS 라디오 방송과 전주 TV토론)며 과거 발언을 뒤집었다. 그러면서 노후보측은 “이 모든 것은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쓰는 매카시적 수법”이라고 몰아붙였다.

    최근 문제 된 일련의 발언들은 불과 10여년 전에 그가 국회의원 등 공인의 신분으로 한 말이라는 점에서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는 민주당 경선 1위이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점에서 언행과 노선에 대한 언론의 검증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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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B의원은 “유력한 대선후보의 정치철학과 노선에 대한 검증작업을 매카시적 수법이라고 볼 수 있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중도파로 분류되는 민주당 L의원은 “노후보는 김중권 고문을 기회주의자로, 이인제 후보를 정통성·정체성이 없는 인물이라며 공격하지 않았나. 그렇게 ‘원칙’을 앞세워온 그가 스스로에게는 어떻게 ‘장의 논리’를 앞세울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유력 대선후보로 등장한 노후보의 말 바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회창 총재를 꺾기 위해서는 영남 출신이 후보가 돼야 한다”(제주 경선 합동연설)는 영남후보론은 전주 TV토론에서는 “영남 출신이지만 영남후보론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말로 바뀌었다. 정계개편과 관련해 지난 3월 경남지구당 간담회에서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민주당에 들어오는 것이며 이미 통화가 시작됐다”고 말했지만 파문이 커지자 창원 토론회에서 “통화는 전화 통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술렁거리자 “정계개편론은 후보가 된 후 당 지도부와 협의할 것”(전주 TV토론)이라고 대폭 후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입장이 애매하다.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갈 것인가”라고 기자들이 묻자 노후보는 “후보가 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하고 도움을 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후보는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라는 자서전에서 YS를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 철학이 없는 사람, 변절자”라고 적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한 노후보의 입장도 당초 입장에서 선회했다. 그 과정도 원칙 없는 말 바꾸기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4월1일 이인제 후보측 김윤수 언론특보가 “노후보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고 공격하자 유종필 특보는 “그런 사실이 없다. 터무니없는 빨간색 칠”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이후보측이 자료(중앙일보 1990년 11월24일자 19면)를 제시하자 유특보는 “당시 노후보가 이름만 빌려준 것인지, 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인지는 확인을 못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2일 대구 TV토론회에서 노후보는 “초선 국회의원일 때 다소 부정적인 견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입장을 조율하게 됐다”고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노후보의 이 같은 말 바꾸기에 대해 고려대 함성득 교수(대통령학)는 “지금까지 소수그룹에 속해 있다가 경선을 통해 메이저리티 포지션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나타난 현상”이라며 “한마디로 메이저리티로서의 준비가 안 된 데서 오는 혼란”이라고 진단했다. 당내에서도 비슷한 시각을 제기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장의 논리에 따라 바뀌는 말로는 연말 대선에 이길 수 없다”며 노후보의 말 바꾸기를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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