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2

2000.09.21

“너 죽고 나 살자” 식 극한정치 다시 거리로

국민 볼모의 지루한 기 싸움 ‘이제 그만’…여야 수뇌 ‘제3의 길’ 모색해야

  • 입력2005-06-20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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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죽고 나 살자” 식 극한정치 다시 거리로
    길고도 지루한 ‘장외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고려대 함성득 교수(대통령학)는 그의 저서 ‘대통령학’(1999년)에서 “대통령의 소속당이 다수당이 아닌 ‘여소야대’의 상황이나 대통령의 국회의원 설득이 여의치 않은 경우 대통령은 국민 여론에 직접 호소하게 되는 경향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통령은 국회보다 언론을 활용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어서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연설, 국가 행사 등을 통해 국민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려고 한다는 것. 소위 정치학에서 말하는 ‘국민에게 호소’(going public)하는 전략이다.

    이를테면 ‘방송의 날’을 맞아 9월3일 김대중 대통령이 텔레비전 방송 3사와 합동 특별회견을 가진 것도 이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양휘부 언론특보가 “TV 3사가 일요일밤 10시 프라임 타임대에 생방송도 아닌 녹화방송을 동시에 내보냄으로써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박탈하고 여당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홍보한 것은 5공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비난한 것은 이런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현 정부 초기에 몇 번 있었던 ‘국민과의 텔레비전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등돌린 여야 ‘총체적 정치 파행’

    물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책이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변정담‘을 통해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레이건 대통령 역시 이를 통해 집권 1기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김대통령과 ‘국민과의 텔레비전 대화’가 IMF 외환위기 상황의 극복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장점 못지 않은 위험도 있다. 국민에게 실현될 수 없는 과잉기대를 제공하기 쉽고, 정책의 입법화를 위하여 실제로 지지가 필요한 국회의원들과 소원해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 함성득 교수는 “대통령이 이 전략을 사용하면 국회의 지도자들, 특히 야당 그리고 인력과 재원을 가진 이익단체들도 이 전략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국민에게 밝히면서 지지를 호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치가 제도권이 아닌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의 의약분업 방침에 맞선 의사협회가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거나, 한나라당이 방송 3사에 항의방문단을 보내 야당 총재의 반론권을 요구한 사실은 이같은 전략의 위험성이 국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정치가 제도권(국회)이 아닌 제도권 밖(장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정책의 미집행과 혼란, 민생과 국익의 손해는 심각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9월14일 여야대치 상황과 관련해 기자 간담회를 갖고 “김대통령은 나라가 깨지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국민과 기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 싸움을 벌이는 주체에는 바로 이총재 자신도 포함돼야 할 듯하다. 국민은 극한적인 장외정치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국민을 볼모 삼아 김대통령과 이총재가 기 싸움을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김대통령과 이총재의 시국 인식은 극단적인 대척점에 서 있다. 남북관계, 국회파행, 경제문제, 의약분업, 한빛은행 거액대출 사건 등 쟁점 현안 중에서 어느 하나도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재 한국 정치의 실상이다.

    이같은 ‘총체적 정치 파행’의 배경에는 국회는 도외시한 채 오로지 국민(유권자)들만 직접 상대하려는 여야 최고지도자들의 그릇된 인식이 혹시라도 자리잡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최근의 청와대는 정국 경색과 관련해 야당과 적극적인 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민생 현안 챙기기 등 대국민 직접 호소전략으로 타개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당 또한 2년 뒤의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전국을 누비는 장외집회를 통해 효율적인 사전 선거운동을 한다는 유혹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여당을 상대로 하는 야당의 장외투쟁은 권위주의 체제 시절의 재야 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2대 총선(1985년)에서 제1야당으로 일약 부상한 신민당(신한민주당)과 김대중-김영삼 공동의장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주도한 1986년의 ‘1000만 개헌추진 서명운동’이나, 1987년 ‘4·13 호헌조치’에 반대해 통일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6·10 대회’ ‘6·26 대행진’ 등은 장외정치의 효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재야정치’의 성격에 가깝고, 본격적인 장외정치는 평민당(평화민주당)이 13대 국회에서 3당 합당(1990년)에 반대하는 장외투쟁에 나선 것을 그 시발로 볼 수 있다.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연출한 법안 강행 통과에 맞서 총력 저지에 나섰고, 파행 국회가 지속되자 “13대 국회는 끝났다”며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전면에 내세워 서울 보라매공원 집회 등의 장외정치에 돌입했다. 이후 100만명 이상이 모여 열기를 드높이는 장외집회는 평민당과 야권 통합 후 민주당의 전매 특허가 되다시피 했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지금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의 강경 장외정치에 맞닥뜨린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밖에 할 수 없는 대목.

    그러나 14대 총선 이후 야당 총재로서의 김대중식 장외정치는 원내외 병행투쟁을 전개했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장외정치와 원내정치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상당히 노련한 솜씨를 보였다는 것. 바로 이 사실이 현재 한나라당의 장외정치와 다른 점이라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이 야당의 장외정치에 대해 “국회에서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원내외 병행투쟁을 통해 여당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만큼 얻어냈던 과거의 장외정치 방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총재는 당분간 등원 거부를 통한 강경 일변도 장외정치를 계속할 전망이다. 이총재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 혼선과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한 의혹과 비판에 정면으로 대처하지 않고 오기로 밀어붙이려는 김대통령의 자세는 민주국가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다”며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총재의 이런 어투는 ‘김대통령이 먼저 굽혀야 국회에 등원하겠다’는 기 싸움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비친다. 김대통령과 이총재가 서로 맞지 않는 이유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대선 패배 후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98년 8월)한 이회창 총재의 지난 2년 동안의 대여투쟁 기조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강경론이다. 그는 총재 재취임 직후인 98년 9월초부터 99년 8월말까지(검찰의 세풍사건 수사 시작부터 종결 때까지) 장장 1년 동안 1차 장외정치를 전개했고, 1년 후인 지금 다시 2차 장외정치를 벌이고 있다. 장외정치 자체가 ‘3김 정치의 낡은 유산’이라는 비판론이 따갑지만, 이총재는 이를 답습하고 있다. 과연 투쟁의 정치,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제로섬 정치’ 이외에 ‘제3의 길’은 정말 없는 것인지 여야 최고지도자들은 깊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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