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2

2000.07.13

소리만 요란한 ‘속빈 강정’ 청문회

이틀간 6명 ‘수박 겉핥기식’ 진행…약점 많은 의원들 법원 눈치보기 ‘뻔할 뻔’ 지적도

  • 입력2005-07-1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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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만 요란한 ‘속빈 강정’ 청문회
    국무총리 인사문회보다 대법관 인사청문회가 더 중요하다. 왜 그럴까? 국무총리는 잘못하면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대법관은 한번 임명되면 적어도 임기 동안은 탄핵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법관의 경우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라 우리 사회의 규범적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막중한 자리다. 이를테면 법관은 법정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해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지만 대법관은 사형제도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사람의 생사 여탈권을 갖게 된다. 구체적 판결이 아니라 대법관의 사상과 세계관에 따라서도 생사가 갈리는 것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한테도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막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이를테면 민법이 금하는 동성동본 혼인제도에 대해 대법관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개개인 삶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수도 있다. 또 만약 대법관 자신이 페미니스트이거나 동성연애자라면 여성과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법관이 ‘딸딸이(딸만 둘) 아빠’인지 ‘들들이(아들만 둘) 아빠’인지에 따라서도 우리 사회의 성(性)에 대한 규범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대법관을 ‘최후의 판단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앉게 될 후보자에 대해 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고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마저 검증을 외면한다면 그로 인한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전철(前轍)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보편적 상식이 정치권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일까.

    헌정 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이한동 총리서리의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국회 인사청문특위의 준비 부족과 후보공직자에 대한 미진한 검증이 대법관 인사청문회(7월6, 7일)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전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선 물리적 시간의 제약이다. 이틀 동안 1명의 후보자를 검증했던 국무총리 후보 청문회와 달리 대법관 청문회에서는 이틀 동안 6명의 후보자를 검증하게 된다. 게다가 인사청문특위 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여야 대립으로 시간을 허비해 증인-참고인 신청기일을 넘김으로써 증인 출석 여부마저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반된 국무총리 청문회 때와는 달리 대법관 청문회의 경우 여야의 관심도도 높지 않아 맥빠진 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무총리 청문회의 경우 이른바 DJP 공조의 연결고리인 이한동 총리서리를 차단함으로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한나라당 특위위원들이 나름대로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대법관 청문회의 경우 그럴 만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사법부는 16대 총선 선거사범에 대해 전례없이 강력한 처벌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 또한 대법관 청문회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낳게 하는 배경 중 하나다. 그래서 선거법 위반 및 각종 비리 혐의로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들이 많은 국회가 법원의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이쯤 되니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라는 의의가 무색해지고 심지어 청문회 무용론까지 제기될 지경이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걸게 하는 것은 참여연대(공동대표 김중배 박상증 박은정)의 활동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한인섭·서울대 법대 교수)는 7월3일 오후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2층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자 6명에 대한 인사의견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법권력에 대한 시민의 견제의지를 뚜렷이 하고 사법에의 시민참여의 선례를 남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인사의견서를 발표하게 됐다”고 밝히고, 이번 인사평가서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충실한 국민적 검증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가장 관심을 모은 참여연대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평가의견’은 네 가지였다. 참여연대는 후보자들의 △민주적-개혁적 소신 △법률적 식견 및 전문성 △도덕성 및 청렴성 등을 평가기준으로 각 후보자의 판결, 수사 및 기소, 변론의 사례와 사법개혁에 대한 태도, 재산관계를 분석했으며 이에 따라 △찬성 △찬반의견 없음 △반대 △적극 반대의 평가 결론을 내렸다고 경위를 밝혔다.

    그같은 방침에 따라 참여연대는 강신욱 후보자(서울고검 검사장)에 대해서 ‘적극 반대’ 의견을, 박재윤 후보자(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그리고 이규홍(제주지법원장) 이강국(대전지법원장) 손지열(법원행정처 차장) 배기원(변호사) 후보자 4인에 대해서는 ‘찬반의견 없음’ 의견을 제시했다.

    참여연대의 ‘대법관 후보 인사평가서’에 담긴 구체적 수사(재판) 사건 관련 기록에 따르면, 강신욱 후보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89년 ‘공업용 우지(牛脂)라면 사건’과 91년 ‘유서대필 사건’이 ‘적극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참여연대는 “강신욱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탁월한 수사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전주지검장 시절 관내 조직폭력배를 일거에 소탕하는 등 수사검사로서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이러한 탁월한 수사능력이 방향을 잘못 잡을 때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다”고 지적하고 그 대표적 보기로 우지라면 사건과 유서대필 사건을 제시했다.

    강후보자가 서울지검 특수부장 시절에 수사책임을 맡은 우지라면 사건은 7년 8개월 만에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났다. 반면에 강후보자가 서울지검 형사부장 시절에 총괄지휘한 유서대필 사건은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났지만 재야 및 지식인 사회에서는 이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부르면서 ‘정치적 판결’로 간주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강후보자는 최소한 이 두 사건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탁월한 수사능력은 검찰 고위직 임명요건은 될지라도 편견과 예단 없이 진실을 신중하게 추구해야 할 대법관의 자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반대’ 의견을 낸 박재윤 후보자에 대해 참여연대는 “대부분의 판사들이 그의 판결을 좇을 정도로 법조계에서 최고의 이론가로 정평이 나 있다”고 그의 법논리와 재판경륜에 대해 최상의 평가를 내렸지만, 참여연대가 대법관 후보 검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민주적-개혁적 소신’ 면에서 대법관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는 구체적 판결사례로 두 건(불법체포감금 수사관 고발사건과 교도관의 폭행사건)의 재정신청 기각결정과 또 다른 두 건(SK텔레콤 유상증자 금지가처분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발행 가처분)의 가처분신청 기각결정을 제시했다.

    참여연대는 “박후보자가 국가 권력의 위법 부당한 처사를 눈감아주고 재벌의 위법 부당한 태도를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법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에서 쉽게 강자의 편에 서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찬반의견 없음’ 의견을 낸 나머지 후보자 4명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우선 이규홍 후보자에 대해서는 원심에서 ‘실제적 위험성’이 경미하여 무죄가 선고된 국가보안법 사건을 굳이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하는 등 ‘공안적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했으며, 이강국 후보자에 대해서는 대학시절 학생운동 경력이 문제되어 검사임용에서 탈락된 사법연수원생의 국가상대 소송에서 법무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상검열’을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또 손지열 후보자에 대해서는 사법부 내부에서 사법개혁을 책임지고 추진해온 인물이지만 지금까지 제출된 사법부의 사법개혁안은 국민을 위한 법률서비스 강화`-`확대라는 관점보다는 ‘법조 이기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배기원 후보자에 대해 참여연대는 정보의 부족으로 충분한 평가를 할 수 없었음을 밝히고 배후보자를 포함한 후보자 전원의 의견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부분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추가로 검증할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이국운 교수(한동대 법학부)는 대법관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데는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지더라도 헌법적 쟁점들에 대한 후보자들의 견해를 알아보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특위위원들이 △후보자의 정치적 견해가 우리 사회의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좌우의 양면으로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는 않은지 △비교적 중도적이더라도 정치적 견해가 내적 논리와 삶의 증거의 측면에서 엄밀한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대법원의 판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있는지 염두에 두고 청문(聽聞)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시간 제약과 준비 부족, 그리고 어쩌면 청문자의 자질에 비추어 이같은 수준 높은 청문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의 여야 구도와 정치적 이해관계로 볼 때 강신욱 검사장 등 일부 후보의 경우 다소간의 ‘곤욕’은 치를지언정 인준이 거부되는 ‘사변’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참여연대의 인사평가서와 인사청문회가 판결문 작성에서부터 재산 형성과정에 이르기까지 법관들의 자세를 가다듬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재산 형성과정이 문제가 될 후보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도 헌정 사상 첫 인사청문회를 의식해 후보자 인선에서 청렴성 및 도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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