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6

2000.01.06

새천년 新 기상도 ‘열강지도’가 바뀐다

21세기 국제질서 전망… ‘통일 한국’ 부푼 꿈

  • 입력2006-05-25 12: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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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천년 新 기상도 ‘열강지도’가 바뀐다
    전쟁과 혁명, 살육과 테러, 빈곤과 착취…. 지나간 20세기의 키워드는 온통 이런 것들이었다. 새 천년의 아침에서 돌이켜보면 생각하기조차 싫은 살벌한 단어들이 악다구니를 하며 20세기의 역사를 휘갈겨 나간 것이다. 21세기의 서문에 우리는 무엇을 쓸 것인가. 21세기의 서막을 열어젖힌 조상들은 20세기 피의 역사를 광정하기 위해 무엇을 했다고 후손들에게 기록할 것인가.

    이 아침에 세계 지도를 펴놓고 21세기의 국제 질서가 어느 방향으로 요동쳐 나갈지를 전망해 보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 21세기는 경제의 시대요 자본의 시대다.

    정보통신과 신기술이라는 무기를 거머쥔 미국은 세기를 넘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용틀임을 준비해온 거대 중국이 세기말에 이르러 세계 단일 무역질서에 동승했다는 사실 또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국경을 없애는 실험에 들어간 유럽연합의 진군은 경제를 뛰어넘어 정치사회적 거대 변혁을 예고한다. 금융위기가 낳은 충격에서 겨우 벗어나 21세기를 맞은 제3세계는 독자적 생존법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고 있고 테러와 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중동지역 역시 희미한 평화의 메시지에서 21세기의 희망을 읽는다. 그러나 21세기를 맞는 한민족이 무엇보다 가슴 터지도록 외쳐야 할 말들은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통일한국이야말로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라 대한민국이 세계 중심국가로 번영하는 굳건한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가 ‘그들의 것’이었다면 21세기는 당당히 ‘우리의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나간 20세기는 아메리카의 시대였다. 미국은 20세기초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의 리더가 되었다. 포드주의로 불리는 미국적 생산방식은 세계 표준이 되었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많은 신생 국가들이 벤치마킹하려는 정치제도가 되었다. 다원적 민주주의와 대량생산 경제에 기초한 미국의 문화는 전세계의 젊은 세대를 열광시켰다. 결국 19세기의 강자인 영국과 프랑스는 20세기 전반에 이미 미국에 패권국의 자리를 물려줘야만 했다.

    물론 이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치 독일은 군국주의 일본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더불어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했으나 무참히 패배했고, 그 뒤를 이어서 소련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이러한 결과로 장기간의 냉전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계체제는 1989년에 그 자체의 모순으로 조용히, 그리고 평화적으로 자멸하고 말았다. 새 천년, 새 세기를 앞두고 미국은 도전자 없는 단일 헤게모니를 확보했다.

    미국의 시대는 21세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의 헤게모니를 대체할 경쟁자가 등장할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체제가 무너진 후,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미국의 적대적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중국은 당분간은 지역적 위협세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만이 전 세계적으로 군사력을 배치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세계화 시대에 부유한 선진국과 가난한 제3세계 국가간의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으며, 미국-유럽연합-일본의 3극체제는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3극체제하에서도 미국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지정학-지경학적으로 볼 때, 대서양 세력인 유럽연합이나 태평양 세력인 일본과 달리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시에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 이민들이 세운 국가’라는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아시아태평양 공동체의 일원을 자처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유럽연합, 일본과는 달리 단일 문명권에 속하지 않고 다양한 인종-종족-종교를 포용하고 있는 ‘자비로운 제국’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이점과 문화적 다양성-개방성은 21세기에도 미국의 운신의 폭을 넓혀 줄 것이다. 미국은 대서양중심주의와 태평양중심주의를 상황에 맞게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두 지역을 포괄하는 세계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은 또 한편으로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묶어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라는 지역주의적 기구를 결성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태평양을 아우르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주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다자주의의 범세계적 규범과 제도를 확립하려 하고 있다.

    경제적 국가경쟁력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미국의 시대는 지속될 것 같다. 냉전의 해체로 인해 양극체제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무너지고 미국이 단일 헤게모니를 확보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 쇠퇴론’이 한동안 강하게 번졌다. 미국의 제조업은 일본과 동아시아의 도전에 밀려 활기를 잃고 있었다. 경쟁력의 약화는 재정과 국제수지에서 쌍둥이 적자를 낳아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더욱 위축되었다. 덩달아 21세기는 일본의 세기 또는 동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 천년의 전야에 미국은 다시 일어섰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은 미국에 ‘미국 쇠퇴론’을 불식시키면서 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미국 전성시대 지속론’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혁신의 10년이었다.

    지나간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미국은 지식-정보통신 혁명에 발빠르게 대처함으로써 경제적 강자의 지위를 되찾았다. 정보통신산업, 두뇌산업, 생명공학에서 ‘창조적 파괴’에 능한 미국의 강점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유연성과 혁신에 강한 미국의 문화가 미국으로 하여금 제3의 산업혁명을 주도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낡은 것은 빨리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는 데 강한 미국이야말로 정보통신 혁명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적임자였다. 방대한 두뇌집단으로 구성된 인적 인프라와 다원주의, 그리고 자발적 시민사회가 제공하는 사회적 인프라,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경제적 인프라가 세계 일류 미국의 부활을 뒷받침해 주었다. 미국경제는 다시 일어섰고, 미국은 역사상 최장기간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30년 이상 계속되었던 악성 재정적자에서 벗어나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21세기 세계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인적-물적-사회적 자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정치-군사적 경쟁자가 사라지고, 경제적 경쟁자를 앞지르게 된 시점에서 미국은 이제 전 세계를 ‘미국화’ (Americanization)하려 들고 있다. 미국의 표준이 세계의 표준이 되는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를 시발로 WTO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미국의 자유무역 규범을 전세계에 적용했고, 동아시아에 경제위기가 왔을 때 IMF(국제통화기금)를 동원하여 미국식 처방을 강요함으로써 동아시아 모델 자체를 미국식 모델로 개조하려 하고 있다.

    비단 경제 분야뿐만이 아니다. 걸프전-코소보-동티모르 사태 해결 과정은 미국식의 안보, 인권, 주주의가 전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이익이 다른 국가의 이익에도 합치되는 보편성을 가지는 한 미국의 시대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이러한 ‘미국화’가 미국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만으로 나타날 경우 미국의 헤게모니는 지구촌의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헤게모니는 다른 국가의 동의에 기초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헤게모니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1999년부터 완성단계에 들어선 경제통화동맹(EMU)을 실현하고 이어 유로(Euro) 화를 선보이면서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EU는 아직까지 회원국간 역내 시장통합에 주력해 왔다. 정확하게는 1950년 ‘슈만(Schuman)선언’에서 출발한 유럽의 통합 노력이 역내 시장통합 완성 계획인 ‘1992년 계획’을 거쳐 이제 ‘국경 없는 하나의 거대시장’을 완성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EU는 또 국제경제적 차원에서 미국과 더불어 우루과이라운드를 포함한 국제 무역 협상을 주도해 오기도 했다. 공동통화정책으로 재무장한 EU는 21세기를 맞아 대내적으로는 역내 경제통합을 마무리하고 대외적으로는 경제규모에 걸맞은 중요한 역할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구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EU는 경제 부문의 통합 이외에도 회원국간에 정치`-`외교정책, 그리고 내무 및 법무 분야에서까지 협력과 유대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지난 5월부터 발효한 암스테르담 조약은 특히 사회정책에 있어서 회원국들 사이에 ‘역내 표준’의 채택을 요구함으로써 경제통합을 보완하고 있다.

    물론 현재 EU의 발전 양상이 1950년대 연방주의자들의 이상이었던 ‘유럽합중국’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EU가 통합의 영역을 더욱 확대하고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일부 분야에 있어서 이미 EU는 미국보다 더 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인구수나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역외거래 기준 17∼18%)에 있어서는 미국(14∼15%)을 앞지르고 있다. 유로화가 국제금융시장의 전체 외환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로 미 달러화(41.5%)에 비해 아직까지는 뒤지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이 두 통화는 실질적으로 양대 기축통화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EU의 급속한 발전은 종전까지 일본을 포함하는 세계 3대 경제권이 앞으로는─물론 중국경제가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미국과 EU라는 양대축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예고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양대 경제권간에 어떤 게임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국제경제질서는 순항할 수도, 격랑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EU간에 조화로운 상호 협력과 견제가 이뤄진다면 보다 안정적인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이들 사이에 이해대립에 따른 국제거래의 불안이나, 담합에 의한 배타적 이기주의 현상이 발생한다면 이는 결국 다른 모든 국가들에까지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EU가 국제경제에 미친 결정적인 파급 효과 중 하나는 지역주의의 확산이다. 이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대내적인 측면에서 EU는 그간 세 차례 확대과정을 거쳐 15개 회원국을 보유하게 됐다. 현재 가입 협상 중에 있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중동부유럽 및 지중해 연안 국가까지 감안한다면 EU는 21세기 초에 전유럽을 망라하는 초대형 경제권을 탄생시킬 전망이다. 여기에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지역(ACP) 등 과거 유럽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각종 무역특혜지역을 추가한다면 세계 전 대륙에 걸쳐 무려 120∼130개국이 EU 경제권에 속하게 된다.

    미국이 지역주의로 선회하면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창설하고 2000년대 초를 목표로 전(全)미주자유무역지대(FTAA)의 수립을 주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취지 중의 하나도 EU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하자는 데에 있다. 물론 지역주의가 반드시 다변주의적 국제거래의 확대에 역행한다고 볼 수는 없으며 운영하기에 따라서 이 양자는 서로 보완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역내당사국들의 선의에 입각한 의식적 노력이 전제될 때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국제거래를 분할함으로써 수많은 특혜지역을 난립하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EU가 21세기 국제경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층 강화하려면 대내적으로 안정 성장을 유지하고 역내 경제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도 나와 있듯이 EU가 공동통화정책을 실시하는 근본적인 목표가 유로화의 안정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의 고실업 문제와 같은 구조적 취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회원국의 급속한 확대에 따라 제기되는 EU 기구들과 EU내 의사결정과정의 재조정 문제도 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EU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과제는 각국의 주권에 대한 회원국들의 애착을 극복하는 일이다. 유럽 각국은 이미 통화정책, 무역정책 및 농업정책 등에 있어서는 EU에 주권을 이양해 놓고 있다. 그러나 EU 통합의 진전에 따라 그 대상은 사회정책, 나아가 정치 분야와 같이 지극히 민감한 분야에까지 확대될 것이다. EU 회원국들은 ‘이러다가 주권마저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만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회원국의 주권 문제는 이 때문에 더욱 심각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자면 EU는 이러한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통합 기반을 위협할 정도의 도전과 갈등을 겪었으면서도 EU는 이들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EU는 끊임없이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EU내 각종 조약의 명문 규정이 없을 경우 회원국들은 개별 이해 관계를 고집하기보다 공동체 차원의 경제정책을 수립해 나감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보조성의 원칙’(subsidiarity principle)을 존중해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당면한 난제들을 해결하면서 역내 통합을 심화하고 회원국을 확대해 EU의 규모에 걸맞은 국제 사회에서의 임무를 떠맡아갈 것이다.



    세기말 행사로 어수선했던 지난 12월20일 마카오의 중국 반환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얼마 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협상을 마무리지은 중국은 마카오를 성공적으로 인수하면서 이제 21세기에 거대한 정치`-`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꿈을 안고 새로운 밀레니엄에 진입하고 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이 21세기에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이 구소련이나 동유럽처럼 붕괴할 것이라던 예측을 깨고 90년대 들어 연평균 9.6%의 고도성장을 실현하자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8년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제7위인 1조554억달러로서 아직까지 미국의 13.7%에 불과하다. 그러나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보면 이미 4조3825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1.5배, 미국의 57%에 상당하는 규모다. 적지 않은 국제 연구기관들은 2020년에 가면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명목GDP 기준으로 보아도 중국이 향후 7, 8% 정도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게 될 경우 30년 내에 일본을 뛰어넘어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갈수록 ‘중국위협론’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나 중국에서 ‘NO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을 부르짖는 민족적 감정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모두 21세기에 가서 중국이 ‘경제공룡’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확신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제럴드 시걸과 같은 상당수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은 현재 ‘이류 국가’에 지나지 않으며, 21세기에 미국에 견줄 만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에 중국이 분열할 것이라던 예측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견해 역시 중국의 잠재력을 또 한번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대의 인구에 세 번째의 국토 면적을 가진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20년 이상 고도성장을 계속해 왔으며 현재 경제 ‘이륙 단계’를 완성하고 한 단계 높은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선진국형 경제구조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은 이미 50년대 초부터 일본 등 역내 선진국 경제가 먼저 성장하면서 이들 나라의 주도산업이 인근 국가들로 파급되거나 인근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이른바 ‘기러기식’ 발전을 통해 성장해 왔고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거대국가인 중국에서도 연해지역에서 낙후한 내륙지역으로 개혁과 개방이 파급되면서 지금의 고도성장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국이 선진국들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한 선진국들과의 경제 격차를 줄여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21세기는 경제발전에서 물질자본보다 지식자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다. 국내 자본이 적거나 중화학공업 발전 역사가 일천하다는 것은 자본과 상품의 이동이 발달한 21세기에는 국가경쟁력의 결정적 장애요인이 되지 않는다. 13억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은 비록 국민의 평균교육 수준은 낮지만 절대적인 양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인재를 배출해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터넷, 이동통신 등 21세기를 선도할 신흥 산업분야에서 중국은 선진국들과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경쟁에 참가하게 되는 이점을 누리고 있다.

    물론 중국이 21세기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정치적 안정이다. 인터넷 등 정보화 수단이 발달한 21세기에 지금과 같은 정치적 통제와 ‘개발 독재’ 전략이 계속 유효할 것인지가 의문의 대상이다. 게다가 대만 독립이나 소수 민족의 분리주의 움직임도 경제발전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대만이나 한국 및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들의 경험으로 볼 때 경제발전은 흔히 민주정치제도의 산파 역할을 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까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사회의 근본적 모순 해결을 뒤로 미뤄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받게 돼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도 누구나 이익을 보게 되는 개혁만이 아니라 일부는 손실을 보아야 하는 개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21세기에 가서 정치`-`사회적인 안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경제의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세계질서의 안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21세기에도 정치-사회적인 안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개혁의 성과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러시아나 동구권 일부 국가들에서 빚어진 경제 침체와 정치적 혼란은 중국 지도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중국식 발전방식에 대한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싱가포르처럼 권위주의 방식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대만이나 한국처럼 평화적 방식으로 정치제도의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도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개발 독재’ 정권이 반드시 멸망하고 경제가 일대 혼란기를 겪게 된다는 시나리오는 그 필연성이 검증된 바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권이나 정치 민주화 측면에서 중국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수많은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적 생존권과 관련한 경제발전 전략에 있어서만큼은 대체로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21세기의 중국’을 낙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이 만약 21세기에 ‘경제공룡’으로 부상한다면 이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한국에는 커다란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우리 자신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망국과 분단, 그리고 6·25전쟁으로 얼룩진 암울했던 20세기와 달리 의욕과 희망이 넘치는 21세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한민족의 존재와 대한민국의 ‘준 강대국화’를 꿈꾼다. ‘한국의 독립적 역할과 참여 없이는 동양 및 세계 평화가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민족의 오랜 염원이 국제사회에서 현실화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열망과는 달리 남북한은 아직 냉전적 대결구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동북아 질서 개편에서 아무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소련 붕괴후 동북아의 세력 재편 과정에서 연평균 10% 가까운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 중국이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주적(主敵)이었던 소련의 지위를 대신할 것이라는 국제적 인식이 동북아지역을 매우 긴장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과 일본이 20세기에 다져놓은 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해 중국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는 체제, 즉 ‘중국 대(對) 미`-`일 동맹’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에 초강대국화할 중국이 미국의 세계적 패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중국 위험론’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아직은 노골화하고 있지 않지만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체제는 과거 냉전기의 미`-`소 대립과 유사한 ‘두 개의 블록’간 대결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21세기의 동북아 국제관계가 신냉전 시대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극단적 시나리오가 이른바 ‘동북아 다다국(多多國)체제’다. 이 체제는 ‘중국 위험론’과는 달리 21세기에 중국 대륙이 분할된다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 대륙 전체를 강력히 통치하는 중국공산당이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중국내 정치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민주화와 부의 공정분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실패해 통치력을 상실하고 소련 해체후의 러시아처럼 ‘보통 국가’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통 국가’로 전락한 중국과 이러한 기회를 틈타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대만 티베트 몽골 신강지역 등이 미국 일본 러시아 한국 북한 등과 각축하면서 대략 10여개 국가가 동북아 국제질서 형성에 참여하는 체제가 형성된다.

    ‘동북아 다다국 체제’는 중국 대륙의 분할을 전제하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 정부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일본과 같은 해양 국가들이 과거 유럽 대륙을 분열 상태에 둠으로써 안전을 확보했듯이 중국의 약화를 전제하는 ‘동북아 다다국 체제’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권력정치의 생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21세기의 동북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 위험론’을 근원적으로 봉쇄할 ‘다다국 체제’ 형태를 선호하는 해양세력과 통일 중국을 더욱 강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대결 구도에 따라 전체적 판도가 드러날 전망이다.

    이같은 두 가지 극단적 시나리오 이외에 ‘동북아 6개국 체제’나 ‘동북아 5개국 체제’와 같은 타협적 모델도 생각해볼 수 있다. ‘6개국 체제’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두 개의 블록’을 구축하여 대결하기보다는 적절히 타협하면서 평화 공존관계를 모색하는 한편, 이 지역에서 비교적 영향력이 약한 러시아 한국 북한 등 3개국이 개별적으로 중도적 입장에서 세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대결과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를 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동북아의 3대 강국을 견제할 입장에 있는 다른 3개 국가가 ‘두 개의 블록’ 대결체제 결성을 위해 강대국들이 요구하게 될 동맹 참여를 유보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중재 역할을 적극적으로 떠맡는 것이다.

    ‘동북아 5개국 체제’는 ‘6개국 체제’와 달리 한반도의 두 개 정부가 연합 혹은 통일국가를 이뤄 통일한국을 포함한 5개국이 동북아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5강 중 1강이 될 한반도 세력은 분단시대와 달리 남북의 힘을 합친 연합 혹은 통일국가로서 ‘준 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는 반면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이 지역의 전통적 강대국들은 상호 견제로 인해 한반도에 서로 제한된 영향력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체제에서는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그리고 통일한국 등 5개국이 비슷한 비중을 갖고 동북아 질서 형성에 참여하게 된다. 과거 유럽 강대국들도 5개국 이상이 세력 균형 원칙에 입각해 ‘유럽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안정과 평화를 누렸던 적이 있다.

    ‘동북아 5개국 체제’야말로 21세기에 맞는 이상적 체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남북한이 이 지역에서 뚜렷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4개국만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5개국 체제의 현실성 여부가 논란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와 한민족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동북아 5개국 체제’에서 통일한국이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1강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가 21세기 동북아의 질서를 좌우할 것이라는 말이다.

    냉전시대처럼 남북한이 극단적 대결을 반복하거나 통일한국이라 하더라도 이류국가로서 동북아의 전쟁과 평화 구도에 발언권이 없는 무력한 존재로 남는다면, 주변 강대국들은 유럽식 세력균형체제를 통해 동북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한민족이 힘을 합쳐 ‘준 강대국’으로서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주변 4강들도 한민족의 독자적 역할을 믿고 ‘동북아 5개국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 분명하다. 한민족의 새로운 길은 여기에서부터 열릴 것이다.

    물론 이 길은 매우 불확실하고 어렵다. 어쩌면 환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세기의 비극을 21세기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 국가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과감히 매진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90년대 외환-금융위기와 IMF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개발도상국들은 새 천년의 세계경제무대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가. 과거의 고통과 시련을 모두 떨쳐버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안심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할 것인가. 아니면 빈곤과 사회-경제적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너도나도 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내던질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사회가 될 것인가. 비단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새 천년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임에 틀림이 없다.

    21세기 전반기에 개발도상국을 포함해 세계경제를 규정하게 될 최대의 힘은 금융 글로벌라이제이션 (financial globalization) 아래에서의 금융주도자본주의(finance-led capitalism)다. 금융주도자본주의란 연기금(pension fund),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들이 자금배분에서 핵심적 주체로 등장하면 서 금융시장, 특히 자본시장의 규율이 경제전체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것은 대내적으로는 금리자유화 및 금융업무 영역구분의 해체, 대외적으로는 단기자본이동에 대한 규제 철폐에 의해 형성된 자본주의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본시장의 규율은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조정, 리스트럭처링, 기업지배구조, 거시적 성장체제의 동학(dynamics)을 좌우한다. 금융주도자본주의 하에서의 거시경제에서는 과거 자본주의 황금기에서처럼 실업과 인플레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로 표현되는 금융취약성과 디플레가 약한 고리가 된다. 또한 노동자와 경영자간의 단체교섭보다는 주주가치의 극대화 원리가 중시되며 사회적 형평이라는 가치는 무력화된다. 나아가 자본시장의 수익성을 우선한다는 새로운 규율은 제3세계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거시적 경제정책과 사회복지제도에까지 침투하여 이들의 기반을 약화 내지 와해시키기도 한다.

    80년대 외채위기를 계기로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일찍,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IMF-세계은행-미국 재무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이들 제3세계 국가는 80년대 말 ‘잃어버린 10년’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발전기반을 확립하기보다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금융주도자본주의에 더 깊숙이 편입되는 과정에 불과했다.

    대내적으로 그 과정은 멕시코의 자파티스타 무장봉기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첨예한 계급 갈등과 격심한 금융 불안을 수반했다. 94년 멕시코의 페소 위기와 98년 브라질의 금융위기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위기 이후 이들 지역의 일부 국가, 특히 아르헨티나는 대내적인 거시경제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계층계급간 갈등을 해소하고 금융취약성을 방지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취하기보다는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대신 미국 달러를 자국의 공식 화폐로 설정하려고 하고 있다. 이른바 달러화(dollarization) 현상이다. 이제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로 화폐주권의 상실 내지 포기라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제3세계 중에서도 동아시아에 비해 금융자본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이 지역은 80년대 IMF의 구조조정계획과 90년대 중`-`후반 외환`-`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속한 금융화가 진행되었다.

    한편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모델에 기초하여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뤄왔던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때 다른 개발도상국의 모범국가, 또는 ‘기적’을 일으킨 나라로 칭송받아 왔다. 그러나 90년대 중`-`후반 재벌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완화되고 미국 헤게모니가 강화되면서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집중됨으로써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력은 이내 상실되고 만다.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외환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도 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라틴아메리카의 달러화 전략이 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처럼 자본 통제에 기초한 마하티르 모델도 나타났다. 한때 IMF 등은 마하티르 모델에 집중적 비판을 가했지만 말레이시아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도 나름대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IMF도 마하티르 모델이 성공적이었음을 뒤늦게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마하티르 모델이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공세 및 이에 기초한 구조조정을 일정 부분 거부하면서도 독자적인 나름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역사는 선진국에서든 개발도상국에서든 금융화(financiarisation)와 투기화가 방치될 경우, 성장과 발전 잠재력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와 심각한 정체기조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

    제3세계 중에서도 금융화가 상대적으로 일찍 뿌리내린 라틴아메리카는 이제 자국의 화폐주권을 내주면서까지 금융화와 투기화를 확산해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금융에 대한 규제를 다시 강화해 새로운 발전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라틴아메리카는 이미 너무 한쪽으로 기운 것처럼 보인다. 21세기에 진입한 제3세계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21세기 초반에 제3세계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걸맞은 다양한 발전 모델을 확립하려면 우선 신자유주의와 금융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기업에서나 사회에서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도 이런 조건 아래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미 자본주의에서처럼 극단적 배제와 차별이라는 방법보다는 전체적인 연대와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는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미국 헤게모니를 통제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 및 미`-`일 연합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간의 지역통합이나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역통합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50여년만에 다시 열린 시리아-이스라엘 평화회담에서 나타난 미국의 역할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아랍권과 중동의 국제질서, 그리고 지역 안전보장의 구도와 역학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미국의 지도력과 영향력이 쇠퇴할 때나 강력한 도전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중동의 ‘두 위기지대’, 즉 아랍-이스라엘간의 팔레스타인 분쟁지대와 산유국가들이 밀집한 걸프지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왔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해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간에는 네 차례에 걸친 전쟁이 일어났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제1차 전쟁’,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한‘예방전쟁’이었던 56년 ‘수에즈전쟁’과 67년 ‘6일전쟁’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집트에 의해 시작된 73년의 ‘10월전쟁’ 등이 그러한 사례다.

    또하나의 위기지대인 걸프지역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차례 전쟁이 발발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변을 계기로 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일어난‘아프가니스탄 전쟁’, 80년 9월 이라크의 이란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이란 전쟁’, 그리고 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인한 ‘걸프 전쟁’등이다.

    이처럼 두 위기지대에서 일어난 분쟁들은 소련의 강력한 도전으로 인한 미국의 세력 약화와 지도력 쇠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고 뒤를 이은 러시아마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역 내 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경찰’ 역할이나 ‘세력 균형자’로서의 입장은 강화되고 있다. 결국 21세기 초반의 아랍권과 중동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 놓일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은 아랍국가들의 석유 문제나 정치개혁, 안전보장 문제에까지 미칠 것으로 보인다. 90년의 걸프전쟁 이후 중동평화에 적극성을 띠게 된 미국은 영토와 평화를 교환하는 ‘평화를 위한 영토’ (land for peace) 원칙을 내세워, 93년 8월에‘팔레스타인 자치 잠정합의’를 성사시켰다. 이어 94년 5월부터 가자(GAZA)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와 이스라엘군 철수가 동시에 진행되기 시작했으며, 96년 1월20일 드디어 이 지역에 자치 행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요르단강 서안지역으로부터의 이스라엘 철수 문제, 예루살렘의 영유권 문제,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유태인 정착촌 철거 문제 등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사이의 난제로 남아 있다. ‘팔레스타인의 영구적인 지위’문제도 96년 5월부터 협상을 시작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 거론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진행중인 시리아-이스라엘간의 평화회담 역시 골란고원 반환, 양국간 평화구축 문제, 1만7000명에 이르는 유태인 정착민 문제 등이 남아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역할이다. 아랍권의 최대 강국인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70년대 말에 평화를 이루었을 때도 미국이 적극 개입한 바 있었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가장 많은 미국 원조를 받는 나라라는 점에서―두 나라는 평화협상 시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20억달러 규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이번에도 역시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제와 안보 분야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협상 실마리를 풀어주리라는 것이다. 물론 아랍 각국들에도 해빙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67년 6일전쟁 당시 영토를 이스라엘에 빼앗겼던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중 이집트 요르단은 이미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었고 이제 남은 것은 시리아뿐이다. 따라서 시리아 역시 이스라엘과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해도 아랍의 대의(大義)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아랍세계의 정치도 21세기를 맞아 안정과 개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요르단 모로코에서 젊은 국왕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지도세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며, 북아프리카의‘마그레브 아랍국가’들에도 선진 구미국가에서 교육받은 젊은 엘리트 계층이 국가의 주요 기관에 포진되어 있다. 또한 요르단 쿠웨이트 오만 등에서도 성문헌법이 제정되는 등 의회정치가 싹트기 시작했다. 또 이스라엘에서도 시온주의를 비판하며, 중동 모든 나라들의‘공동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새 역사학파’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진통과 쓰라린 경험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보지 못한 채 21세기로 안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한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평화 구축 및 지역 안전 보장 △정치적 안정을 위한 지도세력 재편과 정치개혁 △석유 생산과 ‘석유의존 경제’ 또는 ‘렌티어 경제’(rentier economy)의 탈피 등이다. 렌티어 경제란 자국 영토 내에서 유전 개발을 허용해주는 대가로 개발국으로부터 징수하는 ‘오일 로열티’(oil royalty)와 기타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경제를 말한다. 산유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노동력 등 각종 용역을 제공하거나 심지어 원유 파이프라인을 지나가게 해주는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인접국들도 ‘렌티어 경제’권에 포함된다.

    그러나 세계적인 개방경제 흐름에 따라 아랍 산유국가와 그 형제국가들도 결국 ‘렌티어 경제’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이상 자원민족주의나 ‘석유의 정치도구화’라는 정책에 얽매여 있을 수도 없고, 미국의 대외경제 정책과 석유정책을 외면할 수도 없다. 아랍권과 제3세계의 생존과 발전의 길은 자원의 수탈을 최소화하고, 대외개방을 통해 선진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의 군사-정치-경제적인 협력은, 아랍권에는 21세기의 운명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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