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1

1999.12.02

이종찬, 남은 건 상처뿐…

‘언론문건’ 악재에 미운오리 취급, 주위서 냉대… 일부선 “그래도 이종찬” 목소리도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입력2007-03-12 13: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찬, 남은 건 상처뿐…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가 국정원의 ‘6·3 재선거 개입 의혹 문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던 11월19일, 이부총재의 한 핵심 측근은 “평화방송 이도준기자가 ‘훔쳐간’ 문건이 대략 8∼10건이 되는 듯하다”면서 “앞으로도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의 폭로성 정치 공세가 계속될 것 같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 출신으로 대권까지 꿈꾸고 있는 이부총재가 과거 정보기관 출신의 한 의원에게 ‘뒷덜미’를 잡혀 한없이 ‘허약’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부총재에 대한 자민련 한 의원의 소감. “이부총재가 국정원장에 있었던 때의 일이다. 이원장이 자신의 대권 구도를 위해 내 지역구의 경쟁자를 부추겨 자신의 지역 조직을 만들려 한다는 얘기가 들어왔다. 그래서 면담 신청을 하고 국정원에 들어가 만났다. 그런데 이원장의 태도가 참 실망스러웠다. 아니라면 아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유감이다, 혹은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은데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등등 뭔가 딱 부러진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는데도 그는 내가 그를 찾아간 것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으면서 어물쩍 시간만 보내다가 회의가 있다고 자리를 떠났다. 그 순간 느낀 내 솔직한 심정은 그가 대권 주자로서 가져야 할 자질 중 결여된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 예로써 이부총재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만년 야당’이었던 국민회의가 집권하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으며, 정권인수위 위원장으로서 원활한 정권 인수에 크게 기여했다. 또 우리 정치인 중 그만큼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도 드물다.

    ‘친 이종찬계’도 등돌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주 사이에 이부총재가 입은 상처는 ‘과거의 영광’을 무위로 돌릴 수 있을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정형근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언론장악의혹 문건을 터뜨린 것이 10월25일. 그로부터 불과 한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이부총재는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집중타를 맞고 대권 예비주자로서의 위상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한 마디로 먼 곳 쳐다보고 있다가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린 형국이라고나 할까.



    이부총재가 기자회견을 갖기 하루 전인 11월18일 국민회의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있었던 일은 그의 현주소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회의에서 이부총재는 “문건 보관과 관리를 부실하게 한 데 대해 당과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사과한 뒤 “오늘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영일대변인은 마치 청문회에서 증인 신문을 하듯 언제, 어떤 절차를 밟아서 문건을 만들었는지 답변하라고 요구하며 “기자회견 시점은 알아서 하되 충분히 사전에 준비한 뒤 구체적 내용을 밝히라”고 ‘충고’했다. 이대변인은 그나마 ‘친 이종찬계’로 분류되는 인물. 이대변인이 고 신기하의원의 죽음으로 치러진 광주 동구 보궐선거 공천을 받는 데에도 이부총재의 도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이대변인의 이러한 질타는 이부총재의 위상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당 주변에서는 김대중대통령이 이부총재에 대해 대노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심지어는 경기고 동문 사회에서도 이부총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유력한 대권주자로서의 앞을 내다보고 이부총재에게 줄선 동문들이 많았는데, 하루아침에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지 허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부총재측도 나름대로는 당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의 한 측근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청와대와 협의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을 잡아 놓으면, 당에서는 다른 소리를 한다. 청와대도 당도 다 중구난방이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는 또 “이번 기회에 (이부총재를) 흔들어 놓겠다는 생각들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부총재측의 이러한 항변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진앙지가 바로 이부총재 사무실이었다는 ‘원죄’에 묻힐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애초에 문건 관리를 정확하게 했다면 오늘날처럼 여권 전체가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추궁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럽지 못한 것이다. 또한 이부총재가 문건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몇번이나 말이 바뀐 것도 이부총재와 참모진의 종합적인 정치력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부총재는 현재 야권으로부터는 “사법처리하라”는 정치 공세에, 같은 당내에서는 “혼자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놓고 전혀 처리하지 못한 채 의혹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론에 시달리는 ‘안팎 곱사등이’ 형국이다. 국정원장 출신이라 딱 부러지게 일을 매듭지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실망이라는 평가들이다. 사건 초기만 해도 애써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던 이부총재였지만 지금은 표정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전도가 그만큼 불투명해졌다는 표시일까.

    그렇지만 “그래도 이종찬 빼놓으면 (대권주자로서) 당내에 누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당직자는 “지금이야 그동안 신주류에 밀리기만 했던 구주류들이 때를 만난 듯 ‘이종찬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지만, 앞으로 3년후를 내다보면 너무 얕은 생각들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이부총재나 이인제당무위원 등 내놓을 만한 ‘대권 상품’이 그만큼 적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부총재측은 “이제 대권 전략을 전면 재조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지 않고 기다리려 한다.” 한 핵심 측근의 말이다.

    “재산등록 36억 중 기념관 비용이 32억 부담감”

    이부총재, 2월에 매매계약-6월에 소유권 이전 밝혀져


    이종찬부총재가 친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우당기념관(서울 종로구 동숭동 192-10)을 올 2월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거주의 사업가 노모씨에게 매각해 6월3일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마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부총재는 대지 1093.9㎡의 대지를 지난 89년 8월 매입해 여기에 지하 1~지상 3층 건물을 지어 일부를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무실로 임대해왔다.

    이에 대해 이부총재측은 “고위공직자 재산 등록 당시 36억원을 신고했는데 이중 우당기념관이 차지하는 비용이 32억원이나 됐다”면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해 지구당 사무실로 쓰기도 어려운 건물을 괜히 갖고 있어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매각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기념관은 종로구의 도로 확충 계획에 따라 헐려서 새로 신축하는 신교동 집의 지하실에 마련하면 된다는 것. 이부총재는 최근 서울 종로5가 보령약국 인근에 새로 사무실을 얻고 계약을 마친 상태.

    한편 항간에서는 2월에 매매 계약이 이뤄졌는데 6월에야 소유권 이전등기가 된 배경에 대해 의문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이부총재측은 “매입자가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세 번에 걸쳐 나누어 내도록 했기 때문”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 내놓은 것이어서 현 시가보다 오히려 손해를 보고 팔았으며, 매입자도 인근 복덕방에서 소개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