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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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즐거움

켄 벤추리의 열사병 US오픈을 바꾸다

혹서와 경기 일정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nhy6294@gmail.com

    입력2016-06-27 15: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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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마무리된 US오픈은 전 세계에서 코스를 가장 어렵게 세팅하기로 유명하다. 요즘 골프대회는 대부분 하루 18홀씩 3~4일간 도는 게 관행이다. 원래는 대회 첫째 날과 둘째 날 18홀씩 돌고 마지막인 토요일에 2라운드, 즉 36홀을 한 번에 도는 방식으로 사흘간 열렸다. 그런데 1964년(72회) 미국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 콩그레셔널컨트리클럽에서 열린 US오픈의 우승자 켄 벤추리(Ken Venturi)가 마지막 날 열사병으로 쓰러지자 다음 해부터 하루를 늘려 나흘간 72홀 경기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대회 우승으로 벤추리는 지병과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회 마지막 날인 토요일 오전 18홀을 끝내고 오후에 다시 18번 홀을 걷는 건 고행(苦行) 자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지쳐갔다. 얼굴과 목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셔츠는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3m 거리 퍼트를 남겨두고 그는 몸을 쥐어짜듯 긴장하더니 드디어 스트로크를 했고 공은 결국 홀컵 안으로 들어갔다. “맙소사, 내가 오픈을 우승했어.” 벤추리는 절규하듯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외쳤다.

    벤추리의 US오픈 우승은 1960년대 가장 드라마틱한 스토리였다. 그는 56년 아마추어 자격으로 마스터스를 우승할 뻔해 유망주로 부상했지만 마지막 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재키 버크 주니어에게 1타 차로 석패했다. 벤추리는 이듬해 프로로 전향해 4년 동안 10승을 거뒀다. 하지만 61년 자동차 사고로 슬럼프를 겪었고, 62년 신경압박증까지 앓으면서 몸 오른쪽에 마비가 왔다. 2년 뒤인 64년 몸은 나았지만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US오픈은 지역 예선을 통과해 힘겹게 출전 자격을 얻은 대회였다.

    1964년 6월 18일 시작된 US오픈은 최대 핸디캡이 바로 무더위였다.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치른 대회 첫날, 벤추리는  2오버파 72타를 쳐 선두 아널드 파머에게 4타 뒤졌다. 둘째 날엔 70타를 쳤지만 선두인 토미 제이콥스보다 7타나 뒤져 있었다. 20일 토요일은 18홀을 두 번 도는 일정이었다. 이날은 특히 더웠다. 수은주가 37.7도를 가리켰다. 오전 라운드 첫 홀에서 벤추리의 3.2m 버디 퍼트가 홀컵에 붙었다. 그가 마무리하러 걸어가자 공이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홀인하면서 행운의 버디가 나왔다. 조짐이 좋았다.  

    벤추리는 전반에서만 5언더파를 쳤다. 후반에도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졌다. 17번 홀에 이르자 6언더파이던 벤추리는 너무 더운 나머지 골프백에 주저앉았다. 마지막 두 홀에서 연속 보기를 하며 66타로 3라운드를 마쳤다. 스코어를 접수하고 클럽하우스로 간신히 들어간 그는 라커룸에서 의사의 응급처방을 받아야 했다. 열사병 진단이 내려졌지만 벤추리는 “죽더라도 코스에서 죽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의사는 소금과 차를 줬고, 잠시 후 마지막 4라운드가 시작되자 젖은 수건을 벤추리에게 주고는 라운드를 따라나섰다.



    선두권 선수가 쓰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조이 디 미국골프협회(USGA) 사무총장도 벤추리를 따라 걸으면서 불가피한 슬로플레이 상황을 인정했다. 의외로 벤추리는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반면 동반자 제이콥스는 첫 홀부터 보기를 범했다. 벤추리는 13번 홀에서 6m 버디를 잡아내면서 고무됐다. 18번 티잉그라운드에 올랐을 때는 제이콥스에게  4타 앞서 있었다. 디 총장이 격려했다. “켄, 고개를 들게나. 자넨 이제 챔피언이야.” 벤추리는 결국 3m 파 퍼트를 넣으면서 최종 스코어 70타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USGA는 이듬해부터는 마지막 라운드를 하루 더 늘려 나흘간 72홀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벤추리는 이 우승 이후로, 그해 2승을 추가하며 마음의 부담을 떨쳤고 마침내 ‘올해의 선수상’을 탔다. 그리고 1967년 통산 14승 경력으로 은퇴했다. 이후에는 방송 진행자로 계속 필드를 지키다 2013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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