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3

2016.06.22

사회

안갯속 미술시장, 살까 말까

위조범이 노리는 건 명망가 작품…신진작가 작품 속에서 ‘보물’ 찾는 재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6-17 15: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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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1970년대 서울 성북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돈암동에는 소정 변관식 선생, 성북동에는 운보 김기창 선생이 살았다. 한국 화단의 거장들이다. 어느 비 내리는 날, 웬 남자(갑)가 운보 선생 집 대문을 두드렸다. “돈암동 소정 선생 댁에서 병풍 하나를 받아 인사동에 가져가는 길인데 비 때문에 그림이 상할 것 같습니다. 집 안에 잠시 뒀다 비 그치면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객의 질문에 운보 선생은 흔쾌히 “그러라” 했다. 얼마 후 비가 그치자 갑은 병풍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집 앞에는 또 다른 사내(을)가 기다리고 있었다. 갑은 을에게 “운보 선생 집에서 들고 나온 분명한 진품”이라며 이 병풍을 팔았다.



    시중 미술품 4점 중 1점은 가짜?

    이 사건은 을이 해당 병풍을 ‘운보 작품’이라고 미술시장에 내놨다 위작으로 판명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거꾸로 추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갑이 꾸민 사기극이었다. 미술계 내 친분관계와 집 위치 등까지 감안한 기상천외한 수(手)에 운보와 을 모두 꼼짝 없이 당한 것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이에 대해 “미술계에 전해오는 전설 같은 얘기”라며 “그래서 미술계 사람들은 ‘화가 집에서 나온 그림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고(故) 천경자 화백과 이우환 화백 작품의 위작 논란도 갈피를 잡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작가 본인의 의견과 감정 결과가 엇갈리면서 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한 전시기획자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근현대미술품에 위작이 많은 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의 영향이 있다. 많은 화가가 도일, 피란 등으로 근거지를 옮겨 다니느라 작품이 뿔뿔이 흩어졌다. 생계난 때문에 공들인 작품을 밥 한 끼, 술 한 잔과 바꾸는 일도 흔했다”고 밝혔다.

    혼란을 틈타 ‘공장’이라 불리는 전문 위작 제조업체도 번성했다. 십수 년 전 국내 유명 작가의 회고전을 기획했다는 한 미술계 인사는 “작가의 평생 업적을 집대성하려고 전국 각지 컬렉터들로부터 작품을 모았다. 그런데 도록에 들어갈 작품을 고를 때 작가가 몇 점을 별다른 설명 없이 빼버리더라. 생각해보니 분명 위작인데 이제 와서 문제 삼으면 소장자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조용히 넘어간 듯하다”고 전했다.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산하 한국미술감정평가원(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이전 10년간 감정 의뢰를 받은 5130점 가운데 1329점(26%)이 위작으로 결론 났다. 4점 중 1점꼴이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 이사)은 한 걸음 더 나아가 “2005년부터 올해 1월까지 국가기관으로부터 감정을 의뢰받은 3000점 가운데 진품은 한 점도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영남 씨 대작(代作) 관련 수사와 인문학 강사 최진기 씨의 미술 강의 오류 사건 등까지 이어지자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미술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탄식이 나온다. 한 갤러리스트는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미술품 감정 실태와 일부 작가의 작품 제작 관행, 검증 없이 유통되는 미술 관련 정보의 문제점 등 다양한 이슈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런 소동이 대중을 피로하게 만들고 미술에 대한 불신을 높여 결과적으로 미술시장이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무 뉴스가 없는 것보다 논란일지라도 미술 관련 소식이 쏟아지는 게 낫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미술에 관심을 보인 적이 최근 있었나”라는 반론도 나온다.

    2013년 특별전 ‘조영남 코카콜라프렌즈’를 열었던 서울 종로구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 최은주 대표는 “그 전시 이후 우리 갤러리에는 계속 조영남 작가 작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방문객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화투를 소재로 삼은 그림 앞에서 현대미술 제작 관행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갤러리 직원에게 조언을 청하는 이도 적잖다고 한다. 최 대표는 “본격적으로 거래가 진행 중인 건 아니지만, 조영남 작가를 둘러싼 논란이 대중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최근 사건들로 미술품 구매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를 알 경우 해법을 찾는 게 오히려 쉬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호경윤 아트 저널리스트는 “최근 논란이 된 작품이 모두 유명인의 것이라는 데 주목하라”고 했다. 위작이나 대작은 수요가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젊은 작가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나라 컬렉터들 사이에는 ‘유명 화가 작품을 사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재테크 차원에서 값이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사건에서 보듯 유명 작가의 작품이 오히려 위험한 경우도 많다”며 “정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름값에 기대지 말고 유망한 신진작가의 작품으로 눈을 돌리라”고 조언했다.



    왜 황학동에서 박수근 찾나

    초보 투자자가 신진작가의 작품을 구매할 때 세울 첫째 기준은 ‘내가 보기에 좋을 것’이다.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등을 다니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군을 압축하면 된다. 이 가운데 누구의 어떤 작품을 소장할 것인지 정할 때는 다소나마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게 좋다. ‘미술 투자 성공 전략’을 쓴 이호숙 아트 딜러는 “작가가 주로 전시를 한 화랑이 어디인지, 개인전과 그룹전은 몇 번씩 했는지, 그룹전에서 함께한 작가들은 누구였는지 등을 보면 작가의 작품 경향과 레벨을 짐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술품을 구매할 때 되도록 공신력 있는 화랑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지금 언론사들이 ‘한국 미술계에 위작이 판친다’며 찾아가는 장소는 서울 장한평, 황학동, 영등포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검증되지 않은 미술품 거래상에게 ‘박수근 작품 달라’고 해놓고 ‘위작이 나온다’고 정색하는 건 우습지 않나”라며 “진짜 롤렉스시계를 사려면 청계천 가판점이 아니라 백화점에 가야 한다. 미술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름 있는 화랑의 경우 위작 거래 사실이 알려지면 문을 닫게 된다. 이 때문에 몇 겹의 검증 장치를 두고, 판매한 그림이 위작으로 판명되면 보상도 한다”는 게 정 평론가의 설명이다.

    국내 미술계에는 ‘눈 있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 있는 사람은 눈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만큼 미술 투자자들이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이 이름값이나 유행에만 휘둘려 그림을 구매한다는 얘기다. 한 전시기획자는 “유명 작가 이름과 대략적인 금액대만 알고 미술 투자에 뛰어드는 ‘설 전문가’가 위작에 당하기 쉽다”며 “정말 미술을 즐기려는 사람이라면 걱정 없이 미술 투자에 뛰어들어도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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