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8

2016.05.18

사회

성범죄자 10년 취업 제한 위헌 판결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의사단체 일부 찬성, 부모들은 불안…재범 가능성 따른 차등화 기준이 관건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5-17 13: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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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성범죄자의 취업을 10년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헌재) 판결이 나왔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제56조에 따르면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자는 형이나 치료감호의 집행을 종료하거나 집행이 유예·면제된 날부터 10년간 일부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일부 기관이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유치원과 학교, 아동복지시설 등), 의료기관, 체육시설,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으로 모든 성범죄자는 범죄 경중과 관계없이 이들 기관에 10년간 취직할 수 없다.  

    헌재는 4월 28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에게 일정 기간 관련 기관 등에 취업할 수 없게 한 조항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밝혔다. 범행 정도가 가볍거나 재범 가능성이 적은 가해자에게도 10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과하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3월 31일에도 성인 대상 성범죄자의 의료기관 취업을 10년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어 “성범죄자의 취업 제한 기간이 아예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누리꾼들 “억울한 성범죄자 이중처벌 부당”

    하지만 이번 위헌 판결로 법이 개정되더라도 성범죄자의 취업 제한 기간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헌재는 ‘10년의 제한 기간을 상한으로 두고 범죄 경중에 따라 제한 기간을 차등화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아청법을 소관하는 여성가족부는 사회 각계의 의견을 모아 취업 제한 기간을 차등화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헌재 판결을 가장 찬성하는 쪽은 의료계다. “성범죄자의 의료기관 취업 제한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이 의사였기 때문.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헌법소원을 제기한 의료인은 정식 의사가 되기 전인 대학생 때 성범죄자가 된 경우”라며 “진료행위 중 환자에게 가한 범죄가 아니라면 10년 취업 제한은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성범죄가 진료 중 일어난 것인지, 그리고 성인 또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에 따라 취업 제한 기간의 수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일부 누리꾼도 헌재 판결에 찬성하고 있다. 특히 의도치 않게 아청법을 위반해 ‘억울한 성범죄자’가 된 경우 10년 취업 제한은 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 이용자인 한모(36) 씨는 “누리꾼 중에는 아청법상 음란물 소지·유포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말 나쁜 마음을 먹고 아동·청소년이 나온 음란물을 본 것이 아니라, 동영상에 아동·청소년이 나온 줄 모르고 내려받거나 해킹으로 자신도 모르게 음란물이 저장 및 유포된 경우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의 연령을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아청법 자체가 모호한데 실수로 이를 위반한 사람까지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법 개정에 찬성했다. 한 파일공유 인터넷 카페에는 ‘한순간의 실수로 성범죄자가 되는 것도 억울한데, 10년 취업 제한은 이중처벌이다’ ‘헌재의 결정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헌재 판결을 반대 또는 우려하는 주장도 만만찮다. 초등학생 딸을 둔 김모(37·여) 씨는 “취업 제한을 10년이 아닌 무기한으로 해야 한다. 성범죄 전과자가 10년 후 재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 병원에서 일한다면 끔찍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생 딸을 둔 손모(40·여) 씨는 “성범죄자의 병원, 체육시설 취업만은 막아야 한다. 아이와 어른이 일대일로 접촉하는 곳인데 어떻게 안심이 되겠나. 이번 판결은 가해자 인권을 지나치게 배려했다”고 성토했다.

    특히 의료인의 취업 제한 기간 개선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병식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성범죄자에게 의사 면허를 주지 않는다. 환자의 안전을 생각하면 성범죄자는 아예 의사가 되지 못하게 조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10년 상한 폐지하고 종신형으로” 주장도

    “환자와 의사는 한쪽이 상대방 지시를 따라야 하는 ‘특수권력관계’와 유사하다. 만약 의사가 수술을 위해 마취를 권하면 환자는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매년 성범죄자로 적발되는 의사가 약 100명인데, 그런 의사에게 윤리성을 기대하고 환자의 몸을 맡기기엔 위험하다.”

    다만 박 교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성범죄자로부터 의사가 될 기회를 박탈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성범죄가 의료행위 중 발생했다면 면허를 취소하고, 의료행위가 아닌 상황 또는 의사가 되기 전 일어났다면 취업 제한 기간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취업 제한 기간 차등화뿐 아니라 10년 상한 기간을 종신(終身)으로 늘리자는 의견도 있다. 주로 성폭력 사건을 맡아온 천정아 법무법인 소헌 변호사는 “10년 징역형을 받은 범죄자와 200만 원 벌금형을 받은 범죄자의 취업 제한 기간이 같은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취업 제한 기간은 범죄 경중에 따라 차등화하고, 10년간 취업 제한을 평생으로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변호사는 “극악한 성범죄자는 10년이 아니라 평생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상담소) 측은 “성범죄자의 취업 제한 기간을 개선하기에 앞서 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담소 관계자는 “현재 재범 위험성 판단은 몇 가지의 기준을 통해 개량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성폭력 범죄자에게 처벌을 확실하게 가하는 방법이 논의돼야 한다. 성범죄 자는 대부분 초범으로, 이들을 포함해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간주되는 범죄자들에게도 알맞은 수위의 처벌이 내려지고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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