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6

2016.05.04

국제

되살아나는 ‘마천루의 저주’

중동·중국 초고층빌딩 건설 붐, 경기 하강과 고스란히 겹쳐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5-03 09: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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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층빌딩을 뜻하는 마천루(摩天樓·skyscraper)가 세계 곳곳에 건설되고 있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높이가 수백m에 달하는 초고층빌딩을 건축하는 것이 붐이다. 어느 높이 이상을 마천루로 분류할지 공식적인 기준은 없지만 통상 300m 이상 초고층건물을 마천루라 부른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전 세계를 통틀어 300m 이상 빌딩은 101개. 그중 중국이 33개로 가장 많고, 중동지역도 27개다. 그러나 현재 신축 중인 초고층빌딩이 111개에 달하고 착공이 계획된 마천루는 169개에 이른다.

    일부 국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는 타이틀을 차지하고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빌딩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다. 2010년 완공된 부르즈 할리파는 828m(162층)다. ‘현세의 바벨탑’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 건물은, 그러나 2019년이면 세계 최고층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타워(일명 킹덤 타워)에 넘겨줄 것으로 보인다.


    끊임없는 ‘세계 1위’ 경쟁

    사우디 거부 알왈리드 빈 탈랄 알사우드 왕자가 소유한 킹덤홀딩스 계열사인 제다이코노믹컴퍼니(JEC)가 항구도시 제다에 건설 중인 킹덤 타워의 예상 높이는 1007m이다. 건물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지하 60m까지 땅을 파 기초공사를 했고, 철강 8만t과 콘크리트 16만㎥가 들어간다. 전체 200층에 총면적은 24만5000㎡. 내부에는 사무공간을 비롯해 200개 객실을 갖춘 호텔, 360가구 규모의 아파트 등이 들어선다. 킹덤 타워 역시 세계 최고층건물이라는 기록을 장기간 보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UAE의 부동산개발업체 이마르가 두바이에 건설하겠다고 나선 더 타워라는 빌딩이 이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마르는 주상복합지구인 두바이 크릭 하버에 공사비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를 투입해 6〜7월 더 타워를 착공, 두바이 엑스포가 열리는 2020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더 타워의 구체적인 높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하메드 알라바르 이마르 회장은 “더 타워의 높이는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더 타워는 백합꽃과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첨탑 모양으로 건설된다. 꼭대기에는 회전형 발코니와 공중정원도 들어선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을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사우디와 UAE는 그동안 세계 최고층빌딩 건설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왔다. 사우디는 부르즈 할리파 완공 2년 후에야 메카에 메카 로열 클락 타워호텔(601m)을 완공했다. 높이에서 세계 최고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사우디가 추진해온 프로젝트가 킹덤 타워였던 것. 그러나 UAE가 이번에 다시 더 타워로 사우디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그러나 초고층건물 건설이 가장 활발한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건설 중인 초고층빌딩만 62개다. 이 가운데 장쑤성 쑤저우에 건설되고 있는 중난센터(中南中心)는 높이 729m로, 2020년 완공되면 세계 3위이자 중국 최고 마천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3월 7일 완공된 높이 632m의 상하이 타워다. 현 시점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상하이 푸둥신구 루자쭈이 금융가에 위치한 상하이 타워는 지상 127층, 지하 5층 건물이다. 승천하는 용을 형상화한 건물 옆에는 420m의 진마오 타워와 492m의 상하이 세계금융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세 건물 덕분에 상하이의 스카이라인이 바뀌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건설 중인 KL118 타워가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말레이시아 국영 투자기관(PNB)의 자회사가 발주한 이 빌딩의 높이는 644m로 2019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지하 5층, 지상 118층에 총면적 67만3862㎡ 규모인 이 빌딩은 오피스와 호텔 등 복합시설로 구성된다.



    바벨탑이 남긴 교훈

    마천루는 국가나 기업이 부와 힘을 과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급성장하는 국력을 과시하려는 중국과 중동에서 유독 건설 붐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마천루의 저주’라는 속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초고층건물을 짓는 나라는 그 직후 최악의 경제불황을 맞는다’는 이 가설은 독일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가 1999년 100년간 사례를 통해 상관관계를 분석해 내놓은 것이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건물 건설은 돈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 시점에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러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불황을 맞는다는 게 그 골자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속설은 상당 부분 맞아떨어졌다. 1930년대 미국 뉴욕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381m)과 크라이슬러 빌딩(77층·319m)이 완공됐을 때 대공황이 시작된 게 대표적이다. 73년 미국 시카고 시어스 타워(108층·443m·현 윌리스 타워)가 세계 최고층 빌딩이 됐을 때 미국과 세계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452m)가 시어스 타워의 기록을 경신했을 때 아시아는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3년 대만 타이베이에 101빌딩(101층·508m)이 준공됐을 때 대만 가권지수는 폭락했다. 부르즈 할리파가 완공되기 직전인 2009년 두바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 건물 이름도 버즈 두바이에서 구제자금을 지원한 아부다비의 통치자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의 이름을 붙여야 했다.

    초고층빌딩 건설 붐을 반드시 경제파멸의 징조로 볼 필요는 없지만 최근 둔화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적은 마천루의 저주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세계 최초 마천루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일 것이다. 당시 90m 높이로 추정되는 바벨탑이 무너진 건 하늘에 도달하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을 신이 벌했기 때문이다. 초고층빌딩 건설 붐과 마천루의 저주가 거론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신화 속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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