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6

2016.05.04

정치

버럭 속에 담긴 일관성, 더민주당은 전전긍긍

‘문제적 정치인’ 김종인 화법 탐구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5-03 09: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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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관성이 밥 먹여주느냐.”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영입 당시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며 반발이 심했을 때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던진 말이다. 이 말은 이제 김종인 대표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차르’로 불리기도 하는 김 대표에게는 불경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김 대표의 화법은 코모도왕도마뱀의 사냥법을 닮았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사냥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가까이 다가간 순간 왈칵 다리를 문다. 그것으로 끝이다. 또다시 어슬렁거리며 사냥감이 쓰러질 때까지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사이 침 속의 수많은 박테리아가 사냥감의 몸속으로 침투해 먹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일단 던진다

    김 대표는 툭 던지는 화법을 구사한다. 그것이 가끔 대박을 친다. 더민주당 영입 초기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를 수습할 자신이 없으면 오지도 않았다고 말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변화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 발언이다. 언젠가는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거라 확신한다는 북한궤멸론도 논쟁을 유발한 발언이다. 더민주당의 전통적인 햇볕정책에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정체성 논란이 일었지만 당 밖에서는 보수층의 눈길을 끈 발언이다.

    4·13 총선 직후에는 정부가 구조조정 청사진을 제시하면 협력하겠다고 말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더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대량해고를 수반하는 구조조정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해오던 김 대표가 성장론 쪽으로 한 발 내딛고 나오자 당황한 쪽은 새누리당이다. 총선 패배 책임론으로 내분에 빠져 있던 차에 허를 찔린 격이기 때문이다.



    더민주당 내에서도 다시 정체성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진보 색채가 강한 친노·친문(친문재인) 세력의 반발이 심했다. 그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김 대표가 추대론에 발동을 거는 시점이었다. 반대해야 하나 고민 끝에 구조조정 찬성론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추대론에 더 힘이 실려버린 것은 무시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 이행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언급해 또다시 논란을 유발했다. 재협상을 주장해온 당론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경제 분야를 넘어 전방위로 우향우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우향우를 반대만 할 수도 없는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 친문 세력으로서는 손쓸 방법이 별로 없어 보인다.



    밀리면 바꾼다

    툭 던진 발언에 반발이 거세면 주저 없이 바꾸는 것도 특징이다. 일관성이 밥 먹여주느냐는 평소 소신에 맞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친노 패권주의가 어디 있느냐는 반발에 부딪히자 김 대표는 곧바로 “나는 누가 친노이고 친노가 아닌지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며 물러섰다. 이후 “실질적으로 친노라는 정치가 무엇인지 뚜렷이 드러난 것도 없다”며 아예 친노 실체를 부인했다.

    이것을 놓칠 리 없는 새누리당은 총선 과정에서 ‘권력과 더불어 36년 김종인의 말 바꾸기’라는 사례집까지 발간했다. 이 사례집에는 김 대표가 2012년 발간한 저서에서 독일 사례를 들어 고용 유연성을 강조했지만 최근 독일과 우리는 여건이 다르다고 말을 바꾼 사례가 담겼다. 2002년 7월 건국 54주년이라는 표현을 썼고 2007년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지칭했지만, 정부 수립과 건국이라는 표현이 가진 의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쓴 것이라고 말을 바꾼 사례도 담겨 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김 대표는 말을 바꿨다. 첫 반응은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고 참여한 일에 후회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닷새 후 부가가치세 폐지를 막고자 참여했다고 해명하면서 사과까지 했다. 물론 부가가치세 폐지를 막으려고 참여했다는 말도 당시 국보위 내에서 부가가치세 폐지 논의 자체가 없었다는 반박에 부딪혀야 했다.

    김 대표의 말 바꾸기, 그 압권은 역시 비례대표 2번 셀프공천 논란이다. 더민주당에 영입된 직후 비례대표 순번을 받을 것이냐는 질문에 첫 대답은 이랬다. “내 나이가 77세다. 국회 와서 젊은이들 사이에 쪼그려 앉아 일하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후 “비례대표 욕심 추호도 없다”고 확인까지 해줬다. 하지만 결국 비례대표, 그것도 중앙위원회가 권고한 14번을 거부하고 당선이 확실한 2번을 받았다.



    계속 던진다

    말 바꾸기를 하면서 뒤로 물러서며 계속 던지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일단 물고 먹이가 반격해오면 뒤로 물러서는 척했다 한 번 더 무는 방식이다.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공격이 그렇다. 3월 16일 관훈토론회에서 김 대표는 문 전 대표를 이렇게 평가했다. “변호사를 했던 분이라 법률지식에 국한되지 말고 사회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건가 준비하면 대선(대통령선거)후보로 결함이 없다.” 칭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은 문 전 대표의 지식이 법률 분야에 한정됐다고 비판한 것이다. 2017년 대선 전까지 다른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미 역시 담긴 말이다.

    4월 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는 좀 더 명확하게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 상당히 오랜 기간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고 찾아봤는데, 아직까지 뚜렷하게 사람을 못 만났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1위로 나오지만, 자기가 보기에는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뜻이다.

    최근 김 대표의 차기 대표 추대론과 관련해 문 전 대표와 김 대표가 회동한 뒤 양측의 언론 해명이 다르게 나와 논란이 된 일이 있다. 이때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에 대해 작문(作文)하는 것이 무슨 버릇인 것 같다는 지적까지 내놓았다. 대권주자는커녕 인간으로서도 기본이 결여됐다는 인신공격성 발언이다. 이날 문 전 대표가 더민주당의 대주주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무슨 얼어 죽을 대주주냐”는 거친 반응을 보였다. 대주주 문 전 대표로서는 분개할 수준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잦은 말 매를 맞은 문 대표에게는 타격이 적잖을 것이다.



    지치면 먹는다

    던지고 바꾸고 또 던진 끝에 상대방이 지쳐 쓰러지면 먹는다. 비례대표 2번 셀프공천 당시 김 대표는 당무를 거부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결국 문 전 대표가 경남 양산에서 급거 상경해 방문하고 사과한 다음에야 칩거를 풀었다.

    김 대표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과 일할 당시에도 다섯 번이나 당무 거부를 선언한 바 있다. 물론 당시에도 박 대통령의 설득과 양보로 복귀를 반복했다. 특히 그해 11월 11일에는 결별설까지 돌며 당무 거부가 거의 한달 가까이 이뤄진 끝에 대선을 열흘 앞둔 12월 8일 복귀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 식으로 결국 어렵사리 대선까지 동행하긴 했지만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더는 김 대표를 찾지 않았다. 집권 초기 총리 하마평에 오르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 내내 김 대표가 얻은 것은 없다. 먹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때의 뼈아픈 경험을 생각해서인지 이번에는 일단 비례대표 2번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고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차기 당권을 차지하려 노력 중이다. 대표 추대론을 둘러싼 날선 공방 끝에 최근 문 전 대표 측에서 “언론이 사소한 진실 다툼으로 두 사람의 틈을 자꾸 벌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분란을 언론 탓으로 돌리면서 김 대표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이로써 차기 당권 문제는 ‘형식은 경선, 내용은 추대’로 결론 날 개연성이 높아졌다. 김 대표의 또 다른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차기 대표로 등극한 이후에도 문 전 대표에 대한 김 대표의 공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문 전 대표가 지쳐 나가떨어지면 직접 대권주자로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적잖다. 대권주자들에 대한 김 대표의 평가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김 대표 본인은 자기만큼 잘 준비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표에 오르지 못하고 토사구팽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혹시 대표에 오르더라도 문 전 대표 또는 대통령이 된 더민주당의 누군가로부터 토사구팽될 수도 있다.



    먹으며 나간다

    김 대표의 꿈 또는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정말 대통령일까. 김 대표가 비례대표 2번으로 야권에 1차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분명하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후 2기 비상대책위원회를 본인 주도로 구성한 것은 2차 교두보 확보다. 만약 차기 당대표에 오른다면 3차 교두보까지 확보하는 셈이다. 그 시점에 이르면 김 대표의 의중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직접 대권주자로 나서는 방법,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한 뒤 총리에 오르는 방법 두 가지가 유력하다.

    그래서일까, 부쩍 친노·친문 세력의 공세가 거세졌다. 김 대표 영입 당시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라며 반색하던 정청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은 최근 비리혐의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대표 자격 기준에서 원천 배제해야 한다며 김 대표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설훈 의원 역시 대선까지 1년 반이나 남았는데 김종인체제로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김 대표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 대표는 3차 교두보 확보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 대표 역시 한 발 더 나가는 중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구해놨더니 문 전 대표와 친문이라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엉뚱한 생각을 하려 한다며 “야당을 수권정당으로 만들려고 왔지, 대선에서 어느 특정인을 위해 하긴 뭐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당 내 다른 대권주자까지 끌어들여 문 전 대표와 친노·친문 세력에 반대하는 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김 대표는 버럭 화를 내곤 한다. 그때 그 발언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 대표 추대론이 불거졌을 때 역시 화를 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언제 추대해달라고 한 적 있느냐!” 비례대표 셀프공천 논란 당시에도 대단히 자존심이 상했고 모욕적으로 느꼈다며 비례대표 순번에서 “내 번호는 빼놓으라”고 버럭 화를 낸 김 대표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버럭 속에서 우리는 일관성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77세 노정객의 꿈일 수도 있지만 노욕일 수도 있는 바로 그 일관성 말이다. 그것이 더민주당이 정권교체 꿈을 이루는 데 호재로 작용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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