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0

2016.03.23

특집 | 알파고 쇼크

기계와 경쟁할 아이들 머리보다 몸과 마음 키워라

세상에 널린 정보 ‘구워 먹고 삶아 먹을’ 수 있는 역량 필요…‘웃는 동물’이 이긴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3-21 09: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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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
    미국 인터넷기업 구글 창업자 에릭 슈미트가 저서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통해 밝힌 ‘구글 정신’의 핵심이다. 그리고 대중은 2016년 3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의 실체를 봤다. 구글산(産)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인간 대표’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통해서다. 알파고가 선보인 초고속 학습능력과 흔들림 없는 판단력, 인간을 능가하는 집중력은 많은 이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특히 학부모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생 자녀를 키우는 주부 김혜원(42) 씨는 “요즘 아이 엄마들이 모이면 전부 ‘이제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라고 걱정한다. ‘영어, 수학학원 보낼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혀를 찼다.



    암기력은 기계 이길 수 있나

    학부모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하는 것은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된 보고서다. 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 등의 발전으로 2020년까지 약 5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미래창조과학부도 1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의료진단, 법률상담 등 일부 전문지식 서비스직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전망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면서 교육계 전반에 ‘알파고 후폭풍’이 부는 모양새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쪽은 사교육시장이다. 한 교육컨설턴트는 “그렇지 않아도 최근 대학 입시가 수시모집 위주로 흘러가면서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보다 아이의 스펙을 관리해주는 교육컨설팅 분야가 각광받는 참이었다. ‘알파고 대응책’을 고민하는 학부모가 상담하러 이들을 찾아가면서 관련 업계가 더욱 활황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이 요즘 강조하는 건 코딩 교육이라고 한다. 코딩은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지난해 정부가 ‘2018년부터 초·중학교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정책을 발표한 뒤 한 번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수업시수가 적고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사교육시장 팽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알파고 대국’ 이후 정보기술(IT) 관련 교육에 대중의 수요가 치솟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딩기술을 익힌다고 바로 미래 사회에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보다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작동방식을 익히고 논리력을 기르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얘기다(38쪽 기사 참조).
    김대식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대중 강연에서 ‘인공지능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질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스캔하는 넓은 시야 △평생 공부하는 자세 △변화할 준비 등을 꼽았다. 강홍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간다움’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기계는 사람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천문학적 단위의 계산을 눈 깜짝할 사이 해내는 반면, 개와 고양이조차 잘 구별하지 못한다. 사람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는 행위가 컴퓨터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라며 “바로 이 분야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 않을 인간 고유의 일이 있다”고 했다.



    인간다움을 찾아라

    걷고 달리고 움켜쥐며 소통, 발전하는 육체도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강점이라는 의견이 있다. 아동발달 전문가 질 코넬은 저서 ‘몸놀이가 아이 두뇌를 바꾼다’에서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면서 새로운 높이, 속도, 공간감각을 익힌다’며 숨찰 때까지 놀기, 자연에서 놀기, 거칠게 놀기 등이 모두 사람의 성장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런 몸놀림을 통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자존심, 도전정신도 기른다. 현 단계의 인공지능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한 컴퓨터공학자는 “로봇을 두 발로 제대로 걷게 만드는 것조차 현대과학 기술력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로봇이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움직이고 ‘몸의 감성’을 기르기까지는 앞으로도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현재 한국 학교에서 세상에 대한 관심, 인간다운 감성,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배우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주삼환 충남대 명예교수는 저서 ‘많이 가르치고도 실패하는 한국교육’에서 ‘정규수업의 질을 엉망으로 해놓고 야만스럽게 학생들을 학교, 책상 앞에 오래 잡아 놓으려는 정책으로는 우리의 귀여운 아이들과 한국 교육을 모두 망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우리 청소년들이 ‘인공지능시대’에 적응하려면 한국 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는 “정부가 지난해 교육과정 개편안을 발표하며 ‘창의력’을 가장 강조했지만, 여전히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를 통해 학생을 평가한다”면서 “이 세상에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는 없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수치화를 통해 한 줄 세우기를 하는 교육은 창의를 말살하는 교육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 두고 창의력을 얘기하는 것은 위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창의성은 협업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분석능력, 문제해결능력, 불확실한 것에 대한 도전정신 등을 잘 갖추면 저절로 발현되는 결과적 역량이다. 그는 “창의력에 관한 연구를 보면 창의력 발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실패에 관용적인 문화, 집단 지능의 활용, 창의력을 발휘해 혁신을 이뤘을 때 보상 등을 꼽는다. 우리는 먼저 이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한 하위징아는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웃는 동물’이라는 개념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확실하게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분해준다’고 했다. 인공지능시대에  ‘상상 이상의 것’을 상상하게 하는 속성은 창의력과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소양, 관용, 도전정신 등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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