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인터뷰

위안부 넋 불러낸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증오 아닌 화해의 메시지 되길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3-04 15: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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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의 흥행 속도가 무섭다. 2016년 2월 24일 개봉 이후 8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80만 명을 넘겼고 3·1절에는 전국 관객 42만 명을 동원했다. ‘귀향’은 1943년 열네 살 소녀 정민(강하나 분)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잔혹한 대우를 받으며 위안부 생활을 한다는 줄거리다. 실제 위안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개봉 직후부터 영화 예매율 1위를 지키고 있다(3월 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박스오피스 기준).
    영화 제작부터 개봉까지 14년을 기다려온 조정래 감독은 요즘 매일이 꿈만 같다. 처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2001년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씨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봤을 때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국악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나눔의 집’에 국악 연주 봉사활동을 갔다 위안부 피해자의 실상과 마주했다. 그 후 숱한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귀향’은 그에게 기적과도 같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조 감독을 만났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으며 가끔씩 떨렸다. ‘귀향’의 관객몰이에 감격한 듯 살짝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14년간 숱하게 겪은 난항

    ‘귀향’의 한자 ‘귀’는 귀신 귀(鬼) 자다. 위안부들의 넋을 고향으로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많은 위안부가 끔찍한 고초를 겪었다.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과 성관계를 강요받고 무자비한 폭행, 질병에 시달리다 타지에서 죽어갔다.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그분들의 영혼이 고향에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이 말을 하기까지 조 감독은 무수한 고비를 넘겼다. 예산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영화 ‘귀향’의 역사는 구걸의 역사”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편영화인데 제작 일주일 만에 예산이 바닥났다. 투자자를 물색했지만 대부분 “왜 인기 없는 주제를 선택했느냐” “이것 찍고 감독 그만둘 거냐”며 등을 돌렸다. 심지어 “위안부 이야기는 거짓”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독은 전셋집을 월세로 바꿔가며 제작비에 보탰다. 스태프들도 재산을 팔거나 장모님 이름으로 대출까지 받는 등 의기투합했다. 한 번은 중국에서 40억 원 투자 제의가 들어와 기쁜 마음으로 중국에 갔다. 하지만 중국 측 투자 조건은 “위안부 역 여주인공을 중국 배우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감독은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감독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늘 만들고 싶으면서도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예산 부족보다 더 큰 한계에도 부딪쳤다. 한 지인이 감독에게 “당신은 남자여서 위안부 영화를 만들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그 말을 차마 부정할 수 없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내가 가해자는 아니지만 남성으로서 죄의식을 떨칠 수 없었다. 위안부는 남성에 의해 성을 착취당한 여성이니까. 내가 남성이기에 여성의 아픔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고민도 했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증언을 듣고 사료를 연구했다.”
    배우가 연기를 포기할 뻔한 적도 있다. 극 중 가장 포악한 일본군 기노시타 역을 맡은 재일교포 배우 정무성 씨와 나눔의 집에 갔을 때다. 한 할머니가 정씨를 붙잡고 일본어로 “우리들이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걸 세상에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정씨는 감독에게 “할머니들을 짓밟는 악독한 일본군 역을 더는 연기하지 못하겠다”며 울먹였다고 한다. 정씨는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많은 배우가 연기와 심리치료를 병행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컸다고 한다.


    반일 아닌 반전 영화로 기억되길

    영화를 살려준 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뉴스펀딩이었다. 영화의 제작 배경과 진행 상황을 알리는 기사를 다음에 게재하자 누리꾼의 성원이 이어졌다. 2016년 1월까지 시민 7만5720명이 약 12억 원을 모았다. 총제작비의 약 절반이었다. ‘10년간 모은 용돈을 기부한다’는 초등학생부터 ‘역사에 투자하겠다’는 주부까지 다양한 시민의 기부금이 쌓였다. 그 밖에 ‘일본에서도 꼭 영화를 상영하길 바란다’며 기부한 일본인들도 있었다.  
    배우들도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재일교포 배우들은 자비로 항공비를 치르며 연기했다. 배우 손숙과 씻김굿 장면에 등장하는 국악인들은 개런티 없이 출연했다. 조 감독은 “투자계약서엔 ‘영화 개봉이 안 되면 무료로 유튜브에 올린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런 조건까지 감당하고 투자해준 분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영화 ‘귀향’이 완벽한 호평만 듣는 것은 아니다. 일부 관객은 극 중 무속신앙이 나오는 장면이 어색하다며 ‘무리한 설정’이라고 비판한다. 과거 위안부였던 영옥(손숙 분)과 함께 위안소 생활을 겪은 친구의 영혼을 은경(최리 분)이 불러내는 장면이다. 조 감독은 “개인적으로 판소리 고법 이수자일 만큼 국악을 좋아하고, 위안부들의 한을 풀어내는 데 국악과 살풀이춤이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다”며 “미신적 행위로 보기보다 영혼을 불러내는 음악적 장치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끔찍하고 잔혹하다’는 세간의 평가도 있다. 조 감독은 “우리가 그동안 역사를 너무 몰랐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며 “이 영화는 반일이 아닌 반전 영화다. 영화를 본 관객이 일본군을 증오하기보다 우리 자신을 반성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상을 알고 전쟁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영화 ‘귀향’은 손익분기점(관객 수 6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수익 일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조 감독은 이미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가족애를 그린 영화로 형식은 ‘판소리 뮤지컬’에 가깝다고 한다. 감독은 “‘또 마이너(비주류) 장르냐’는 핀잔을 듣는다. 하지만 14년 동안 끌어온 숙제도 해냈는데 뭘 못 하겠나. 다행히 ‘귀향’이 성공해 다음 영화는 좀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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