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국제

아베의 위안부 합의 이중플레이

정치적 절충 역이용해 우파 달래기 본격화…한국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

  • 배극인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입력2016-01-26 09: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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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국이 지난해 12월 28일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역풍이 거세다. 합의 자체에 대한 비판도 비판이지만 합의 이후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발언과 보도들이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례는 1월 18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날 그는 우토 다카시(宇都隆史) 자민당 의원이 “한일 합의 성명에 ‘군의 관여’라는 표현이 들어가 일본이 책임을 느끼는 내용이 됐다”고 지적하자 “이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가운데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 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베 1차 정권 때인) 2007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그 입장에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또 “일본 정부는 일한 간 청구권 문제가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법적으로 최종 해결됐다는 입장에서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밝힌 뒤 “이번 (위안부) 합의에 의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유형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자극성 발언이 이어지는 일차적 이유는 양국이 관계 복원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수정되지 않은 채 타결책이 도출됐기 때문이다. 조심은 하지만 기본 생각에 변화가 없으니 합의 정신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위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

    한일 외교장관이 12월 28일 발표한 합의 성명부터 뜯어보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이날 성명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핵심 키워드는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장이다. 아베 정권뿐 아니라 역대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완결됐다는 일본의 전후처리 틀을 허물어뜨릴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이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시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인도적 책임’이 일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상대적으로 친한(親韓) 노선을 견지했던 민주당 정권 때도 이는 다르지 않았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일본이 제시한 일명 ‘사사에 안(案)’이 틀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결국 양국 정부는 일본 측 책임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으로 절충해 법적 책임과 인도적 책임의 양자 해석이 가능하도록 반 발씩 물러선 것이다. 이는 1965년 한일협정 타결 당시 1910년 한일 강제병합조약의 무효 시기에 대해 ‘이미 무효’라는 표현을 사용해 한국은 병합 전부터 무효, 일본은 한일협정 체결 때부터 무효라고 해석하게 된 것과 같은 수법이다.
    합의 성명에 담긴 ‘군의 관여’라는 의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베 총리는 1월 18일 ‘군의 관여’가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합의문상 ‘군의 관여’라는 의미는 위안소가 당시 군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으로 위안소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 대해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종래부터 기술돼온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고노 담화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강제연행’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강제연행 논쟁은 까다로운 면이 있다. 조선인 위안부 강제연행의 핵심 증거로 통하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주에서 다수의 여성을 강제로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증언한 인물)의 발언을 보도했던 ‘아사히신문’이 지난해 8월 관련 기사를 취소하면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일본 우파들의 주장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은 이미 ‘광의의 강제성’ ‘동원의 강제성’이라는 용어로 반박해왔으나,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우파의 주장은 여전히 먹혀들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북한 핵실험 등으로 한미일 공조체제가 급속히 복원되면서 한국 정부도 어정쩡한 상태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외교부는 1월 18일 “강제동원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국제사회가 이미 명확하게 판정한 사안”이라고 반박했지만, 강제동원과 강제연행은 뉘앙스가 다르다.



    유도성 질문 의원들 주로 여당 소속

    물론 아베 총리가 합의 자체를 깨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월 14일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자민당 의원이 “위안부는 직업적 매춘부였다”고 망언을 하자 이튿날 “정부와 여당 관계자는 지난해 말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의 합의에 입각해 발언해야 한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아베 총리의 ‘자극성 발언’이 우익 달래기용이라는 시각도 적잖다. 실제로 합의 타결 직후 우파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1월 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 소속 나카야마 교코(中山恭子) 의원은 “합의문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는 바람에 여성의 성노예화에 일본군이 관여한 점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해외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인이 웃고 있지만 잔혹하고 짐승 같다는 이미지가 해외에 정착되고 있다”며 아베 총리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다만 의회에서 아베 총리의 자극성 발언을 유도하는 질문을 한 의원들이 대체로 집권 여당 소속이라는 점은 아베 총리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찜찜한 대목이다. 나카야마 의원 또한 지금은 당이 다르지만 2006년 아베 1차 정권 당시 총리 보좌관을 지낸 바 있다. 미국의 압력 및 정치적 이유로 한국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는 했으나 일본의 기존 주장을 국제사회에 꾸준히 발신하는 ‘이중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외교부 동북아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교수(일본연구센터 소장)는 기자와 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뭐라고 하든 아베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인식을 바꿀 생각이 없고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위반도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12·28 합의에서 일본은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이라고 밝혔을 뿐, 강제성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안부 합의 이후 아베 신조 총리 주요 발언
    2015년 12월 28일(합의 직후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에서)
    “일본 총리로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

    1월 5일(국회 외교보고)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 일한관계가 미래지향적 새 시대로 들어갈 것을 확신한다.”

    1월 7일(북한 4차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과 통화에서)
    “위안부 합의를 다시 환영한다.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일한 정상 간 한층 더 긴밀한 연계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1월 12일(중의원 예산위원회)
    (평화의 소녀상 이전에 대해) “합의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적절히 대처할 것으로 인식한다. 적절히 대처한다는 것은 이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월 15일(참의원 예산위원회)
    (사쿠라다 요시타카 의원의 망언에 대해) “다양한 발언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정부 및 여당 관계자는 이(합의)에 입각해 발언을 해주길 바란다.”

    1월 18일(참의원 예산위원회)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에 구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하지만)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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