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28

2020.02.28

이슈

코로나19에 ‘헛발질 정책’까지 소매꽃집들 뿔났다

화원업계 “편의점 꽃 판매 확대는 꽃집 두 번 죽이기” 투명한 가격 결정, 유통망 재정비 절실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0-02-23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한 꽃시장.[뉴스1]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한 꽃시장.[뉴스1]

    “꽃이 좋아서 버텨왔는데 더는 힘들 것 같아요.”(부산 A꽃집) 

    “새벽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해도 벌이가 법정 최저임금만도 못해요.”(경기 동탄시 B꽃집) 

    코로나19 확산으로 졸업식과 입학식 등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꽃집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소매꽃집연합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소매꽃집 매출은 평년 졸업 시즌 대비 70% 이상 줄어들었다.

    도매시장 꽃값 뛰어도 소매꽃집 정책은 뒷전

    경기 고양시청 꽃 소비 촉진 행사(왼쪽), 경남농협의 화훼 소비 촉진 캠페인.[고양시청 페이스북, 경남농협]

    경기 고양시청 꽃 소비 촉진 행사(왼쪽), 경남농협의 화훼 소비 촉진 캠페인.[고양시청 페이스북, 경남농협]

    꽃집 매출 급감에는 도매시장의 꽃값 인상도 한몫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야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도매시장 가격은 도리어 상승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화원업계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관할 도매경매시장인 한국화훼공판장에서 경매 유찰이 거듭돼 꽃값이 폭락하는 것을 막고자 농가에 도매시장 출하량을 줄이도록 요청해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꽃값이 뛰었다”고 전했다. 2월 20일 윤효선 한국소매꽃집연합회 회장은 “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며 “손님이 없어도 문을 닫을 수 없어 소매꽃집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 돈을 다 주고 사다 팔았다. 그러다 보니 꽃값이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항의는 고스란히 꽃집이 떠안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으로 다가온 2월 10일 편의점, 온라인, 홈쇼핑 판매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꽃 소비 촉진 방안을 발표했다. 밸런타인데이는 졸업식 특수를 놓친 꽃집들이 적자를 메울 수 있는 2월의 마지막 보루였다. 화원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한국소매꽃집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농가로부터 싼값에 수급한 꽃을 농식품부 소속 협동조합을 통해 대기업 유통체인인 편의점 등에 공급하겠다고 한다”며 “농가와 꽃집은 다 죽어가는데도 정부는 대기업과 제 식구 챙기기에 바쁘다”고 비판했다. 



    업계 반발이 거세지자 농식품부는 사흘 뒤인 2월 13일 좀 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놨다. ‘공공분야의 화훼 소비를 늘리기 위해 농식품부와 소속기관, 산하기관,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 21개 기관이 사무실 꽃 생활화(원 테이블-원 플라워), 화훼 장식, 특판 행사 등으로 꽃 270만 송이를 구매하기로 했으며, 농협은행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꽃다발 선물 행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대책에는 ‘화원(꽃집)과 상생을 위해 기관별로 인근 화원과 계약을 맺어 꽃 구매를 집중 추진할 계획이며, 편의점을 활용해 한 송이 꽃다발 월 1만1000개, 소형 공기정화식물 2만 개를 판매한다. 편의점 판매는 화원과 상생을 위해 화원과 경합이 되지 않는 지역 위주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편의점 판매 확대로 한국화훼농협만 수혜

    편의점 밖에 있는 시든 꽃다발.[사진=독자 제보]

    편의점 밖에 있는 시든 꽃다발.[사진=독자 제보]

    정부가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발표한 이 같은 대책은 화원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밸런타인데이는 졸업식 특수를 놓친 화원업계가 적자를 만회할 수 있는 2월의 마지막 보루였는데 그 기회마저 편의점이 선점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전후로 전국 각지 GS편의점에서 꽃 판매가 이뤄졌다. 꽃 공급업체는 농식품부가 다양한 지원을 하는 생산자단체이자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화훼농협이다. 소매꽃집은 팔리지 않는 꽃들을 스스로 폐기 처분해야 하지만, 한국화훼농협은 편의점에서 팔고 남은 꽃들을 반품할 수 있도록 해 재고 부담마저 덜어줬다. 편의점에 비해 악조건에서 영업하는 꽃집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꽃 판매 경위를 묻자 GS리테일 측은 “농식품부가 요청해왔다. 전 지점에서 꽃을 파는 것은 아니고 한국화훼농협이 희망 가맹점을 대상으로 꽃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화원과의 거리가 고려되지 않아 꽃집과 상권이 겹치는 가맹점이 적잖다는 점이다. 또한 농식품부의 꽃 소비 촉진 정책에 따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농협의 산지 대량 구매를 촉구해 도매시장의 꽃값 인상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2월 14일 부산 한 꽃집 주인은 “꽃 소비를 촉진하고자 지역 내에서 무상 나눔 이벤트와 초저가 판매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며 “트럭째 갖다 놓고 1단에 2000원에 파는 안개꽃을 도매시장에서 그 10배인 2만 원에 사 왔는데 무슨 경쟁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꽃집 주인들은 ‘꽃의 판로를 좀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편의점 판매를 하게 됐다’는 농식품부의 대책 발표를 두고 “정부의 헛발질 정책으로 소비 촉진은커녕 꽃값이 인상돼 꽃집들을 두 번 죽였다.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자 생색내기용 정책일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뿌리가 없는 꽃은 생명력이 길지 않고 찬바람을 맞으면 금세 시들어 세심한 관리는 물론, 냉장 보관 시설도 필요하다. 편의점처럼 전문인력과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상시 판매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꽃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파는 문화가 아니고 꽃을 자주, 많이 소비하지도 않는다. 서울 서대문구 한 편의점 주인은 “판매량이 연중 일정치 않은 꽃을 팔려고 새로 사람을 들이고, 시설을 확충할 수는 없다”며 “특별한 날 이벤트용이면 몰라도 상시 꽃 판매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화원협회와 대기업 9곳 ‘비밀 상생협약’, 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내 화훼공판장.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내 화훼공판장.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부가 매년 발간하는 ‘화훼재배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인당 연간 꽃 소비액은 1만2000원이었다. 2016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용역보고서에 의하면 네덜란드는 11만 원, 영국은 99만 원, 일본은 57만 원 정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국내 화초 및 식물 소매업 사업체 수는 2018년 기준 1만8106개. 2020년 현재 한국 인구수를 5178만 명으로 계산한 꽃집의 평균 연매출은 3431만7906원이다. 여기서 임대료와 꽃 구입비, 시설 운영비 등 모든 비용을 제하면 순수입이 단순 아르바이트보다 못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국에 약 1200개 회원사를 둔 한국화원협회는 지난해 2월 27일 ‘식물 및 화초 소매업’(꽃집)을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신청했다. 그때까지 6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던 꽃집이 그 기한을 하루 남겨둔 시점이었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신청 이후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의 실태조사와 의견수렴을 거쳐 추천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고 나서 중기부의 심의와 의결로 최종 승인된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는 업종은 대기업의 진출 또는 확장이 금지되고, 이를 위반하면 해당 매출액의 5% 이내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권기홍 동반위 위원장은 지난해 7월 23일 열린 제56회 동반성장위원회에서 “꽃집 등 4개 업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며 “진입장벽이 낮고 다수의 소상공인이 영세한 사업 형태로 그 업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추천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이후 한국화원협회가 생계형 적합업종 신청을 철회하고 꽃을 판매해오던 대기업들과 1월 중순 ‘비밀 상생협약’을 체결한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새롭게 포착했다. 상생협약을 맺은 대기업은 GS리테일 등 편의점체인업체 4개와 대형마트업체 5개 등 총 9개로 확인됐다. 

    협약 당사자들은 비밀 유지 조항을 두고 상생협약을 발설할 수 없게 했지만 업계에서는 이전의 진행 상황을 토대로 “편의점과 대형마트 내 화훼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또한 이 협약으로 소비자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장이 위축될 것을 걱정했던 생산자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비밀에 부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농식품부, 편의점 꽃 공급자 ‘화원’으로 선회

    최근 GS리테일 일부 가맹점에서 꽃 판매가 진행되며 전국 꽃집의 공분을 샀던 농식품부는 2월 19일 한국화원협회 운영진을 만나 달라진 입장을 밝혔다. 한 내부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판매 부진 해소를 위해 편의점 판매를 지속하되 GS편의점 공급자를 한국화훼농협이 아닌 화원으로 하겠다.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후에는 화훼 소비 촉진을 위한 어떤 정책 또는 행사에 편의점을 포함시키거나 활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화훼업계는 꽃 소비 촉진과 시장 안정화를 위해 판로망 확충보다 더 절실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업계 종사자들은 궁극적인 해결 방안으로 “사설 도매시장의 수수료 문제와 탈세 방지, 투명하고 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위한 원산지 및 출하 일시 표시 제도가 무엇보다 시급히 도입돼야 하고 공판장 확충, 화훼농가와 소매꽃집 간 직거래 활성화 등을 통해 중간 유통마진을 줄여 꽃값을 낮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