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손태승 회장 무책임한 버티기로 금융권 검찰과 날 세우는 우리은행

DLF, 라임 사태에 이어 ‘비번 변경’ 사고 겹쳐도 이례적 무책임 행보, “금융권 레임덕” 말 나와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0-02-13 13:11:1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생결합펀드 손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고객 비밀번호 무단 변경…. 정부가 최대주주로 있는 우리은행이 일으킨 연쇄 사고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손태승 회장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버티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권의 검찰’로 통하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의 말도 듣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권력기관의 경고도 무시하는 시중은행의 무책임한 행보는 레임덕의 단면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시중은행이 그 감독기관인 금감원과 이례적으로 날을 세우며 다퉈도 이를 조정하지 않고 방치하는 모습은 정권 말기에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우리은행과 금융당국 간 갈등은 이미 ‘레드라인’을 넘긴 상태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가 지난해 원금 전액 손실을 낸 사건을 두고 2월 3일 금감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문책 경고’를 확정한 것이 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이 DLF 상품은 총 86억 원 규모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0.3% 아래로 내려가면 손실이 시작되고, -0.6%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을 모두 잃게 된다. 우리은행 측은 “독일 국채 금리가 그렇게까지 급락한 적이 없어 상품을 만든 곳도, 판매한 곳도 예측하지 못했다”며 “미국과 중국 간 분쟁이 있고 세계경기가 안 좋다 보니 그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금감원이 진행한 검사는 판매 과정에서 고객에게 충분한 위험 고지를 했는지, 위법성이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금감원 측은 검사 결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을 위반한 불완전 판매 비중이 33%에 달하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서 규정한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손실액의 40~80%를 고객에게 배상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불완전 판매 여부와 상관없이 손실 난 고객 전부를 대상으로 가이드라인 이상을 배상하고 있으며 이미 80% 넘게 보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을 둘러싼 금융사태를 전면적으로 검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동아일보DB]

    우리은행을 둘러싼 금융사태를 전면적으로 검사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동아일보DB]

    금감원 제재심에서 의결한 손태승 회장 문책 경고는 금감원장이 그대로 확정했다. 손 회장은 앞으로 남은 금융위원회의 결정과 상관없이 중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중징계 가운데 문책경고는 ‘은행법’에 따라 금감원장에게 전결권이 있다. 금융위원회는 우리은행 일부 지점 영업 정지 등 기관제재에 대한 의결을 마친 후 우리은행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3월 초 손 회장 제재를 최종 통보할 계획이다. 문책경고를 통보받으면 연임이 불가할 뿐 아니라 통보 시점부터 3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 회장이 문책경고를 통보받더라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이은 행정소송으로 손 회장의 연임을 3월 24일 주주총회 이전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부 통제가 미흡하거나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을 때 CEO에 중징계를 내릴 수 있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며 “현재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는 불완전 판매를 두고 CEO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CEO를 중징계하는 건 과한 제재”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지배구조법’ 제24조에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 시행령을 보면 소비자 보호와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내부 통제 기준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기 위해서는 업무 절차별, 내용별로 어떤 걸 넣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가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또 ‘지배구조법’ 제35조에 따르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할 경우 CEO에 대해 해임 권고, 직무 정지, 문책경고 등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내부 통제 기준 ‘마련’이 아닌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한 것이다.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준수하지 않으면 CEO에게 관리 책임을 묻겠다는 조항”이라며 “만약 계류 중인 법안이 통과됐다면 더 강하게 조치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DLF의 불완전 판매 외에도 상품선정위원회를 개최한 것처럼 서류상으로 꾸미고, 리스크 관리 부서의 위험하다는 의견을 배제하는 등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사례가 다수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재심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기관 제재를 영업 정지 3개월에서 6개월로 상향 의결한 것도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객에 비밀번호 무단 변경 알리지 않아

    우리은행은 2월 5일 또 다른 ‘일탈’로 도마에 올랐다.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2018년 5~8월 고객 2만3000명의 인터넷·모바일뱅킹 비밀번호를 무단으로 변경한 것. 이들은 인터넷·모바일뱅킹을 1년 이상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은 고객이 임시비밀번호로 접속하면 실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악용, 고객의 동의 없이 임시 비밀번호를 부여해 로그인했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 ‘전자금융거래법’ ‘지배구조법’ 등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은행의 일부 영업점 직원들은 고객의 동의 없이 임시비밀번호를 발부해 실적 채우기에 이용했다. 우리은행 스마트뱅킹.[사진=게티 이미지, 우리은행 제공]

    우리은행의 일부 영업점 직원들은 고객의 동의 없이 임시비밀번호를 발부해 실적 채우기에 이용했다. 우리은행 스마트뱅킹.[사진=게티 이미지, 우리은행 제공]

    우리은행 관계자는 “2018년 8월 자체 감사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발견해 바로 예방 조치를 마련했다. 실적에서 제외한 것은 물론이고 임시비밀번호로 접속하더라도 ARS(자동응답시스템)나 공인인증서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발 방지 교육도 실시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금감원에서 경영실태평가를 실시할 때 보고서에 그 내용을 넣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밀번호 도용 사실을 고객 당사자에게는 알리지 않고 있다. 네이버나 구글 등 포털사이트가 등록되지 않은 기기의 로그인 접속을 빛의 속도로 알려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이유를 묻자 우리은행 측은 “어떤 보상을 하려면 실질적 피해가 있어야 하는데 금전적 피해가 있었던 건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고객 비밀번호를 도용한 직원에 대한 제재도 아직 하지 않았다. 금감원이 2018년 10월부터 진행한 우리은행 경영실태평가의 정보기술(IT) 부문에 대한 검사 결과 조치를 통보받은 이후 해당 직원을 제재할 계획이라고 관계자는 전했다. 금감원은 조만간 검사 결과 조치안을 제재심에 상정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뒷북 제재’ 혹은 ‘꼼수제재’라고 꼬집는다. 금감원 측은 “일제 점검을 통해 법규 위반 여부 검토와 추가 사실관계 조사 등을 면밀히 진행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검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고객 안내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태승’호, 행정소송 돛달고 출격?

    지난해 하반기에 불거진 라임의 1조6000억 원대 환매 중단 사태도 우리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은행은 라임의 사모펀드에 판매사로 참여한 30곳 가운데 하나다. 라임은 이 사태가 있기 전까지 국내 1위 자산운용사로 내놓는 상품마다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폰지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 이모 전 부사장의 배임 의혹이 불거져 다른 사모펀드의 금융 유동성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뉴시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진=뉴시스]

    피해자 3명은 1월 10일 라임과 판매사들이 펀드의 환매 중단 사유를 예상했거나, 발생한 사실을 알면서도 정상적으로 운용하는 것처럼 속여 판매했다고 주장하면서 라임과 이를 판매한 우리은행,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2월 11일 고소인 중 1명을 처음으로 불러 조사한 검찰은 펀드 가입 과정에서 판매사로부터 펀드 투자처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들었는지, 투자된 자산의 부실 여부를 언제 처음으로 통보받았는지 등을 조사했다. 금감원도 2월 5일 라임과 신한금융투자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우리은행 등 16개 판매사로 구성된 판매공동단은 삼일회계법인의 실사를 거쳐 펀드의 기준 가격을 조정한다. 이에 따라 펀드 자산이 수천억 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환매는 운용사에 1차적 책임이 있다지만 라임이 혼자 배상할 능력이 없을 테니 판매사들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 당국의 스탠스”라며 “우리은행은 이번 사태를 막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걸 다 뜯어고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고 문제 해결과 예방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은행은 2월 11일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사업 대표를 신임 행장으로 내정하면서 손 회장 체제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 회장의 연임이 확정되면 그에게 중징계를 내린 금감원과 마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