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맘이어도 괜찮아

찰라의 감동 긴~ 짜증, 그래도 나는 기쁘게 키운다

경험한 사람만 아는 육아의 ‘특별한 기쁨’을 통계가 어찌 알리오

  •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입력2020-01-20 15:33:4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GETTYIMAGES]

    [GETTYIMAGES]

    “푸우와 피글렛이 바람을 타고 부엉이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밤 9시,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깔깔 웃으며 내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재밌는 장면이라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를 만난 냥 즐거워했다. 아름다운 소리를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에 비유한 옛 표현이 생각났다. 신이 난 아이 웃음소리가 마치 투명한 구슬이 사방에 굴러다니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꼭 껴안으며 여섯 자녀를 둔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시 구절을 떠올렸다.

    어둠과 낮 사이 / 밤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하루의 일과가 잠시 멈추는 때 / 그 시간은 ‘아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

    “좋은데, 힘들어”

    이어지는 시에는 여섯 아이에 둘러싸여 정신없으면서도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롱펠로우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롱펠로우의 삶과 시를 나와 동일시하며 알차게 ‘아이들의 시간’을 보내고 평화롭게 잡든 아이와 함께 행복한 밤을 맞이했다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이후 아이는 언제나 그렇듯 쉽게 잠들려 하지 않았고, 아이를 재운 후 해야 하는 일과 하루의 피로에 짓눌린 나는 ‘계속 안자면 엄마가 화낼 것’이라는 약간의 위협을 가하고서야 아이를 재울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감동과 짜증 사이를 오간다. 방글거리며 뛰노는 모습이 한없이 귀엽다가도, 유치원 등원 시간이 촉박한데도 옷 입기를 거부할 때면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른다. 제법 엄마 경력이 쌓인 늦맘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오래하면서 웬만한 일에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육아는 다른 것 같다”며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지 몇 초 만에 ‘야, 이놈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게 육아”라고 말했다. 



    뉴욕 매거진의 필자 제니퍼 시니어(Jennifer Senior)는 2010년 한 칼럼에서 많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다시없는 기쁨(bliss)과 신경질(nerves) 간의 전환을 큰 진폭으로, 잦은 주기로 경험한다고 썼다. 실제로 많은 부모가 아이가 주는 기쁨과 육아의 고충이 ‘반반’이라고 말한다. 아빠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가수 이승철도 한 방송에서 아빠가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이는) 좋은데, (육아는) 힘들어”라고 두 단어로 정리했던 게 기억난다. 많은 부모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아이의 존재와 부모의 행복도 사이의 관계는 학계에서도 유명한 퍼즐이다. 아이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전통적이고 강력한 믿음과 달리 지난 수십 년 동안 선진국에서의 여러 연구는 자녀를 둔 커플의 행복도가 무자녀 커플과 큰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 덜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Hansen, 2012). 영국과 독일에서 동일한 커플을 추적한 패널 데이터에서도 출산 이후 행복도나 부부 생활 만족도는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다만 늦맘과 늦아빠는 예외로 이들의 행복도는 오히려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들은 관찰된 통계와 ‘자녀가 행복의 원천’이라는 믿음 사이의 모순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있다.

    ‘살기 좋은 사회’가 출산율 높아

    그런데 이러한 모순 중 일부는 대부분의 연구가 행복을 삶의 만족도와 스트레스 유무, 웰빙 차원에서 측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부모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이가 없었을 때 삶이 여러모로 편안했다.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할 부담이 없었고, 따라서 요리나 집안일을 지금의 절반도 하지 않았다. 마음껏 일할 수 있었기에 해외출장이나 새벽 출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녁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자유로웠고, 남편과도 자주 대화하며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양육비, 주거와 교육 문제도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누군가를 밤새 간호할 일도 없었다. 전반적으로 ‘웰빙 지수’가 지금과 비할 바가 없었다. 

    그러나 ‘충만함’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책 읽어줄 때 느꼈던 것 같은 충만한 행복을 내 삶의 어떤 순간에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음악도 아이의 웃음소리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16kg짜리 짐을 들어야 한다면 볼멘소리가 절로 나오겠지만, 같은 무게의 아이가 달려오면 나도 모르게 번쩍 안아 올린다. 이러한 삶의 반짝이는 순간은 금방 지나가고 육아의 피로와 삶의 온갖 걱정이 일상을 지배하기에, 일반적인 행복도를 묻는 설문에 아이에게서 얻는 충만한 행복이 반영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도 최근 이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자녀 자체는 부모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지만, 피로, 수면 부족, 일과 삶 사이의 불균형, 재정적 어려움 같은 육아와 관련된 여러 요인이 전반적인 행복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한 예로 10년간 유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미국 다트머스 칼리지의 브랜치플라워(Branchflower) 교수에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미치는 영향을 제외할 경우 자녀의 존재는 부모의 행복도를 확실히 높였다(2019). 

    특히 2016년 미국사회학저널(American Journal of Sociology)에 발표된 한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Glass, Simon, and Andersson). OECD 22개 회원국을 분석한 결과 유급돌봄휴가와 유연한 근무환경, 자녀돌봄 지원금 등 다양한 가족 정책이 잘 뒷받침된 사회에서는 유자녀 가정의 행복도가 무자녀 가정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양육과 관련한 뒷받침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경력단절의 기회비용, 재정적 부담 등으로 인해 자녀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한 노르웨이사회연구소의 얀센(Hansen) 박사는 2012년 논문에서 “출산을 강조하는 사회일수록 오히려 출산율이 낮고, 아이의 존재가 부모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 역시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출산의 중요성보다 개인의 선택과 행복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출산율도 높고 부모의 행복도 역시 더 높다는 것이다. 결국 살기 좋은 사회에서 출산율도 높고 부모도 행복하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한국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아이가 행복’이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출산 장려 정책에서 벗어나, 개인과 가족의 삶을 질을 존중하고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Happiness 말고 Bliss

    [GETTYIMAGES]

    [GETTYIMAGES]

    정책적 지원과 주위의 지원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편하게 살고 싶다면 ‘절대’ 들어서서는 안 될 길이다. 직장일, 집안일 등 일상생활의 난이도가 순식간에 몇 배 증가하고 만족도는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니퍼 시니어도 앞서 인용한 칼럼에서 “인류라는 종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실로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썼다. 

    그런데도 왜 늦맘들은 비혼과 저출산이 상식인 한국 사회에서 굳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힘들어 죽겠다고 매일 투덜대면서도 둘째, 셋째 아이를 더 낳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까? 아마도 삶은 편안함이 전부가 아니고 영어로는 ‘Bliss’라고 표현되는, 아이와 함께 하는 때에 느끼는 특별한 기쁨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마라톤 대회를 완주한 일반인 선수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땀에 절어 헐떡이는 이들에게 “이 힘든 걸 왜 하세요? 사서 고생 아닌가요?” 하고 묻고 말았다. 이에 선수들은 “이 행복감은 말씀드려도 모르실 거예요”라며 미소 지었다. 엄마의 행복도 이와 같지 않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