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싸고 안전한 원전에 무슨 이념인가… 탈원전이야말로 국정농단”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1-0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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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위원은 많이 지쳐 보였다. 그는 한국형 원전 기술개발과 상업화 책임자를 지낸 원자력공학자로 지난해 10월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원안위원이 됐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지난해 12월 24일 원안위 회의에서 월성1호기 영구폐쇄가 결정된 뒤 “분노와 무력감 속에 회의장을 떠났다”고 했던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포자기 심정이 된 걸까. 인터뷰 내내 분노의 언어보다 옅은 한숨이 자주 새어나왔다. 

    국민 세금 7000여억 원을 들여 개보수해 1차 운영 허가 기간 30년을 40년으로 연장했던 월성1호기의 운명은 ‘기구하다’는 말이 모자라지 않는다. 월성1호기는 2018년 6월 영구폐쇄 의견을 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국회가 3개월여 뒤인 9월 30일 본회의를 열고 이사회 결정에 배임 혐의가 있다며 감사원 감사 요구를 의결함에 따라 감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원안위는 세밑에 쫓기듯 결정을 내렸을까.

    크리스마스이브에 무슨 일이?

    2019년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탈핵시민행동이 월성1호기 영구정지 의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월성원전 1호기. [뉴시스, 뉴시스]

    2019년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탈핵시민행동이 월성1호기 영구정지 의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왼쪽). 월성원전 1호기. [뉴시스, 뉴시스]

    지난해 12월 30일 이 위원을 만나 크리스마스이브 회의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물었다. 

    애초에는 안건에 없다 급하게 상정됐다고 들었다. 

    “보통 회의 일주일 전 e메일로 위원들에게 토의 안건을 보내온다. 12월 24일 회의 때 다뤄질 안건은 세 가지로 12월 17일에 공개됐다. 내용은 방사능을 다루는 회사들의 취급 부주의 등 법규 위반에 대한 행정 처분 같은 통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틀 뒤인 12월 19일 다시 e메일이 왔고 월성1호기 폐쇄 건이 끼어 있었다. 회의를 며칠 앞두고 중간에 안건이 추가 상정된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미 두 차례(10월과 11월)나 상정됐다 토론 끝에 보류된 사안을 갑자기 다시 논의하자는 것 자체가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토의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배경 설명도 없었다.” 

    보통 원안위 결정은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정해지는 게 관례라고 들었다. 

    “그렇다. 안건을 표결에 부치자는 결정 자체가 참석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그날 회의는 오전 10시 반에 시작돼 앞서 e메일로 보내온 안건 3개를 처리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속개돼 추가 안건이던 월성1호기 폐쇄 건을 다뤘다. 나는 엄재식 위원장에게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급하게 따로 상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다. 위원장은 ‘내 소관’이라고만 말했다.” 

    위원장에게 뭐라고 반박했나. 

    “이렇게 일을 처리하면 ‘위원장이 누구로부터 지시받은 걸로 오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라’며 화를 냈다. 회의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됐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개됐다. ‘월성1호기 폐쇄 건은 이미 세 번째 올라온 안건이며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감사는 국회의장 명의로 신청된 거다. 이보다 더 강력한 감사 청구가 있는가. 감사가 끝나기도 전 원안위에서 폐쇄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 국회와 감사원을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 정부기관이 이러면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국회가 배임을 의심한 사안에 대해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 원안위가 밀어붙인다면 나중에 배임 결정이 나올 경우 이를 도와준 꼴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나도 법률전문가가 아니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그렇게 보는 게 상식 아니겠나. 회의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결국 표결까지 갔고 찬성 5, 반대 2로 폐쇄 결정에 이르렀다.” 

    한편, 지난해 12월 19일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과학계 원로 13명은 대통령에게 탈원전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보냈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도 12월 24일 원안위 결정이 나오자마자 성명을 내고 “월성1호기 영구정지 의결은 법과 제도를 무시한 폭거”라고 비판했다.

    감사원 감사 무력화시킨 원안위

    탈원전 반대 여론이 70%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약간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원안위에서 왜 갑자기 속도를 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난들 어떻게 알겠나. 이유를 알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다. 나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까지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건 정말 추측이지만, 누군가가 위원장한테 ‘인풋’을 넣었다는 느낌은 있다. 굳이 그 이유를 상상해본다면 감사원 감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만약 감사원에서 배임으로 결정되면 책임져야 할 사람도 많아지고, 한마디로 매우 복잡해진다. 직권남용이라는 게 자기 직무 바깥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건데, 애초에 잘못된 한수원 결정에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 드러난다면 이거야말로 직권남용으로 책임질 사람이 생기는 거니까 말이다. 더구나 원안위는 법률적으로 독립성이 매우 강조돼야 하는 조직이라 여기에 개입한 건 정말 질이 나쁜 일이 된다.” 

    어떻든, 이번 결정으로 재가동을 위해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간 원전이 결국 폐기처분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잠이 안 온다.”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월성1호기 폐쇄는 왜 잘못됐나. 

    “국민 재산을 없앨 때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더도 덜도 아니다. 월성1호기 수명 문제는 그동안 두 번에 걸친 경제성 평가가 있었다. 2009년 9월 한전(한국전력공사)에서 경제성 분석을 심도 있게 한 결과 가동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5년 뒤 2014년 8월 국회예산처가 재분석했는데 역시 ‘돌리는 게 맞다’는 결론을 냈다. 이에 따라 2015년 6월 원안위가 최종적으로 계속 가동을 결정하면서 7000여억 원의 국민 세금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한 것이다. 

    월성1호기 개보수는 고장 우려가 있어 했던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파트 인테리어 리모델링처럼 모델이 너무 오래돼 낡았거나 새로운 첨단 모델이 나와 업그레이드를 위해 교체한 것을 의미한다. 

    어떻든 2018년 4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취임하고 두 달 만에 이사회가 폐쇄 결정을 내렸다. 당시 보도도 많이 나왔지만 이사회가 근거로 삼았다는 회계법인의 ‘경제성 없음’ 평가는 가동률과 발전 단가를 턱없이 낮게 잡은 거였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까지 간 거고 이사회 결정에 의문이 있다며 재석 국회의원 203명 중 162명이 찬성해 감사원 감사를 의뢰한 거다. 

    더 어이없는 일은 국회 의결 직후 한수원 경영진은 배임죄의 민사상 문책에 대비해 최대 500억 원까지 책임져주는 임원배상 책임보험에 가입했다는 점이다. 현재 한수원은 매년 3억3000만 원씩 보험료를 내고 있다. 국민재산을 없애는 결정을 한 것도 모자라 자기들 책임을 피하려고 세금으로 안전장치까지 마련했다는 게 이해가 되나.” 

    이사회 결정 후 원안위는 7개월간 전혀 안건 상정을 하지 않다 국회 의결이 되자마자 급하게 상정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다. 원안위는 국회가 2019년 9월 30일 감사 청구를 결정하고 10여 일이 지난 10월 11일 안건을 올려 영구처분 의결을 시도했지만 격론 끝에 보류됐다. 나는 10월 7일부터 원안위원으로 참여했는데, 회의가 열리면 거의 나 혼자 떠들어댄 기억밖에 없다. 어떻든 1차 회의 때는 보류결정이 났고 한 달 뒤인 11월 22일 또 안건 상정이 됐지만 다시 보류됐다가 이번에 최종 의결을 한 것이다.”

    가짜정보로 가득한 탈원전정책

    그는 최근 ‘한국형 원전 후쿠시마는 없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조영철 기자]

    그는 최근 ‘한국형 원전 후쿠시마는 없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조영철 기자]

    원전 안전성 문제가 자주 거론됐는데. 

    “안전? 나 같은 전문가 말을 듣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 말을 듣겠다는 건가. 한국 원전은 사고가 나도 사람이 다치거나 죽거나 환경 파괴가 전혀 없다. 내 개인 주장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실증(實證)과 이론으로 검증된 거다. 

    지금까지 일어난 세 번의 원전사고는 모두 핵연료가 녹은(멜트다운·melt-down) 중대 사고였다. 그런데 옛 소련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사고는 방사능이 대기로 방출돼 사람이 죽고 환경이 파괴된 반면,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TMI)사고에서는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도 상하지 않았다. 우연이나 사고 대처를 잘해서가 아니라 노형(盧型) 자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노형은 비등수형(沸騰水型)과 가압수형(加壓水型)이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은 전자, TMI는 후자였다. 비등수형은 수소 폭발로 격납용기가 파괴돼 방사능이 누출됐지만, 가압수형은 수소를 연소시키는 산소가 발생하지 않아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형은 가압수형이다. 

    우리를 포함해 지금 세계에서 300기가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도 체르노빌 사고 이후 비등수형 원전을 폐기하고 가압수형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 원전이 이렇게 안전한데도 가짜뉴스와 가짜정보 때문에 탈원전을 밀어붙인다면 그게 국정문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정말 대통령을 비난하고 싶지 않고 국정문란이니 농단 같은 험악한 말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탈원전정책의 이유로 내세운 국민 안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짜정보로 현재뿐 아니라 미래 에너지정책까지 망친다면 이거야말로 국정문란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는 문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탈원전 공약을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마라”고 다독였다고 한다. 

    왜인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에는 탈원전을 내걸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책을 바꿨다. 두 대통령 모두 재임 시절 각각 4기씩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따라서 우리 원전 6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원전 건설이 중단된 적은 없었다. 문 대통령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대선후보 시절엔 잘 몰랐다 해도 대통령이 되면 정확한 정보를 알게 돼 방향을 수정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어떤 전문가 그룹이 그 충격적인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원안위에서 토론하다 보면 탈원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있을 텐데. 뭐라고 하던가. 

    “기본적으로 말들을 잘 안 한다. 기껏 내놓는 논리도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번 폐쇄 결정에 찬성한 원안위원들이 사회복지학자, 행정학 교수 등 대부분 원자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안위라는 것 자체가 원자력의 안전한 사용을 감시하는 곳이다. 전문성보다 원전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 원자력의 안전한 사용을 감시하는 기구에 원전을 싫어하고 원전 자체가 필요 없다는 사람들을 앉힌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니겠나.”

    국제사회 원전 왕따, 한국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그는 “원전을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결정하는 일에 무슨 좌우 이념이 필요한가. 세계에서 가장 좌편향된 나라인 중국, 러시아, 북한이 핵을 제일 많이 갖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나. 에너지라는 것은 안정적이고 싸며 안전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위원은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은 글로벌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만 해도 원래 40년 쓰겠다며 원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나도 너무 멀쩡해 20년 더 쓰자고 결정해 60년으로 다시 늘렸다. 그러다 최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플로리다의 터키포인트 원전 3, 4호기 수명을 80년까지 연장했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가 원전을 80년씩이나 쓰는데 우리는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새것같이 개보수한 원전을 40년도 안 쓰고 버리고 있다.”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핵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들어가 한국형 원전기술 개발 책임을 맡았다. 기술개발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개발한 기술을 상업화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한국형 OPR-1000으로 이름 붙은 한국형 원전이 탄생했다. 이어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으로 진화된 원전은 국내는 물론, 아랍에미리트(UAE)에까지 수출돼 한국은 원전 강국이 됐다. 

    평생을 한국형 원전 개발에 매달려온 그는 “원전이 대세가 돼가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만 이탈해가고 있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도 했다. 

    “현 정부가 벤치마킹했던 영국, 프랑스, 스웨덴 같은 원조 탈원전 국가들은 속속 유턴 중이다. 전기차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이 4차 산업혁명기의 주력 산업인 데다, 탄소를 절감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원전만 한 대안이 없어서라는 판단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일본 원전 회사들이 망하거나 침체에 빠지면서 한국이 세계 최고 원전 경쟁력을 갖춘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온 상황이다. 그런데 탈원전으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차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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