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 프로젝트

‘6백만 달러의 사나이’를 닮은 건축

옛 공장에 둥지 튼 복합문화공간 코스모40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9-12-20 1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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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도시재생의 모범적 건축 사례로 주목받는 ‘코스모40’은 6백만 달러의 사나이를 닮았다. 튼튼한 몸을 타고났지만 기능이 손상된 두 다리와 한 팔, 눈 하나를 사이보그화한 우주비행사 출신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 분) 말이다. 

    코스모40도 우주와 살짝 관련 있다. 우주선부터 전투기, 타이어, 공구, 신발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는 기초소재인 이산화티타늄 정제공장이었기 때문이다. 코스모40이 위치한 인천 서구 가좌동 산업단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코스모 화학단지’로 불렸다. 국내 유일의 이산화티타늄 제조공장이던 코스모화학의 보금자리로 7만6000㎡(약 2만3000평) 면적에 45개 동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6년 본사와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공장 부지와 건물이 한꺼번에 매물로 나왔다. 

    이 매물은 대부분 다른 산업체가 분할 인수했는데 코스모40만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주택단지와 가장 인접한 데다 층고가 가장 높아 주변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건축이라는 점이 주효했다. 가루 상태인 이산화티타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내면서 정제하다 보니 층고가 높았다. 게다가 건물의 기초체력이 엄청 탄탄했다. 이산화티타늄 가루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튼튼한 철골기둥이 설치됐다. 천장에 각각 10t과 3t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2개의 호이스트가 장착돼 있어 내구성만큼은 뛰어났다. 튼튼한 몸을 타고난 스티브 오스틴처럼 말이다.

    버려진 공장 부활 프로젝트

    개축되기 전 공장일 때 코스모40의 풍모. [사진 제공 · 코스모40]

    개축되기 전 공장일 때 코스모40의 풍모. [사진 제공 · 코스모40]

    사실상 사망 판정을 받고 인체 해부를 눈앞에 둔 이 ‘스티브 오스틴’의 진가를 발견한 사람은 가좌동 고깃집 ‘신진말’의 심기보(39) 대표와 그 인근에서 커피전문점 빈브라더스와 로스팅공장을 운영하는 에이블커피그룹의 성훈식(34) 공동대표였다. 심 대표는 가좌동에서 3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룬 청송 심씨 집안 출신으로 ‘신진말’은 간척지였던 가좌동 일대를 일컫는 옛 지명이다. 

    “가좌동 일대는 서울에선 가깝지만 인천 중심지 외곽에 위치한 데다 바닷물이 들어오던 동네라 ‘개 건너’로 불리며 푸대접을 받았죠. 지금도 제대로 된 공연장은 물론, 영화관조차 없어요. 2007년 이 동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안의 토지를 처분하려고 들어왔다 식당을 하게 되면서 우연히 코스모40 내부를 둘러보고는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가좌동에 빈브라더스 2호점을 낸 에이블커피그룹에 공동투자 제안을 했습니다.”(심기보) 



    “에이블커피그룹은 커피를 다양한 문화행사와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스모40을 보고 우리 매장과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면 시너지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뮤직비디오나 영화촬영장으로 유료 대관하고 크래프트 비어, 베이커리, 피자를 제공하는 커피숍에 서점도 함께 운용하면 인천 서구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성훈식) 


    화학공장을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코스모40’(왼쪽)과 1, 2층 공간에서 펼쳐진 미디어아트 공연. [사진 제공 · 코스모40]

    화학공장을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코스모40’(왼쪽)과 1, 2층 공간에서 펼쳐진 미디어아트 공연. [사진 제공 · 코스모40]

    자, 그렇다면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다 죽어가는 산업공간을 펄펄 뛰는 문화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코스모40의 외관만 보면 공장 왼편 날개 부위에 증축한 철골·유리구조에 서비스공간이 들어가고 그로 둘러싸인 옛 공장 건물이 문화공간으로 활용됐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6백만 달러의 사나이로 개조하는 수술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옛 건축과 새 건축의 합성

    커피숍, 식음료 공간으로 탈바꿈한 지상 3, 4층. 왼쪽 새 건축이 옛 공장의 내부로 깊숙이 관입돼 있다. [사진 제공 · 코스모40]

    커피숍, 식음료 공간으로 탈바꿈한 지상 3, 4층. 왼쪽 새 건축이 옛 공장의 내부로 깊숙이 관입돼 있다. [사진 제공 · 코스모40]

    설계를 맡은 양수인 삶것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옛 건축과 새 건축을 ‘따로 또 같이’ 합성했다. ‘따로’라는 것은 새 건축과 옛 건축을 서로 분리한 점에서 그렇다. 이는 옛 건축의 내부 기둥에서 확인된다. 옛 건축의 둥근 철골기둥을 새 건축의 각기둥 4개가 둘러싸고 있다. 그렇게 각기둥에서 출발한 새 건축은 옛 건축과 겹쳐 있긴 하지만 이격된 별개의 건축이다. 

    ‘같이’라는 것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커피숍이 위치한 지상 3층은 옛 건축 안으로 새 건축이 끼워 넣어져 있다. 그래서 자세히 관찰해보면 커피, 맥주, 빵, 피자를 판매하는 매장 바닥이 옛 공장 바닥 위로 살짝 떠 있다. 

    “공장을 개축, 증축하다 보면 내벽에 단열재를 대야 하고, 페인트를 벗겨낸 뒤 새로 칠도 해야 해 거칠고 투박한 공간의 고유 매력을 보존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민 끝에 공장시설 기준이 적용되는 공장은 그대로 두고, 근린 생활시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공간을 끼워 넣는 식으로 설계하게 됐습니다. 최근 산업시설 재생이 유행인데, 우리 모델을 적용하면 안전기준을 충족하면서 건축비용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양수인) 


    1 지상 1, 2층의 전시·공연 공간. 2 지상 2층의 서점.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서비스공간에 위치한다. 3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서비스공간이 공장 공간까지 깊숙이 침투한 지상 3층. 4 지상 3층 커피숍 공간이 공장 바닥 위로 살짝 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호영 기자]

    1 지상 1, 2층의 전시·공연 공간. 2 지상 2층의 서점.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서비스공간에 위치한다. 3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서비스공간이 공장 공간까지 깊숙이 침투한 지상 3층. 4 지상 3층 커피숍 공간이 공장 바닥 위로 살짝 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호영 기자]

    옛 공장 건축은 1, 2층과 3, 4층이 한 덩어리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가운데 천장이 뚫려 있는 구조인데 1, 2층(최대 천장고 10m)과 3, 4층(최대 천장고 14m)이 천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코스모40으로 변신하면서 1, 2층은 전시·공연공간으로 활용되고 3, 4층은 3층 커피숍 중심의 서비스공간으로 운용된다. 방문객의 접근이 용이한 1, 2층이 아니라 3, 4층을 서비스공간으로 설계한 이유가 궁금했다. 

    “옛 건축과 새 건축이 하나로 융합됐듯이, 예술공간과 서비스공간도 서로 뒤섞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술공간을 찾는 분들은 1, 2층 전시·공연을 둘러보고 3층 커피숍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자연스럽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직행하는 식음료 고객은 호기심으로 1, 2층의 전시·공연을 둘러볼 수 있게 설계한 겁니다.”(양수인)

    연리지인 줄 알았는데 사이보그였다

    1 지상 3층 커피숍 공간에 위치한 중정. 2 지상 2층 전시·공연공간에 자리한 기계장비 받침대. 널빤지를 걸쳐놓아 테이블이나 의자로도 활용한다.
3 지상 1층 전시·공연공간의 기둥. 안의 까만 철기둥이 옛 공장의 기둥이고 그것을 둘러싼 각기둥 4개가 새 건축의 기둥이다. 4 지하 1층 벙커의 건축 기초구조물. [지호영 기자]

    1 지상 3층 커피숍 공간에 위치한 중정. 2 지상 2층 전시·공연공간에 자리한 기계장비 받침대. 널빤지를 걸쳐놓아 테이블이나 의자로도 활용한다. 3 지상 1층 전시·공연공간의 기둥. 안의 까만 철기둥이 옛 공장의 기둥이고 그것을 둘러싼 각기둥 4개가 새 건축의 기둥이다. 4 지하 1층 벙커의 건축 기초구조물. [지호영 기자]

    3층 카페공간의 일부에는 중정(中庭)도 설치돼 있다. 커피 잔을 들고 실내정원에 앉아 갈대밭에 심긴 나무들을 보노라니 연리지(連理枝)가 떠올랐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엉겨 한 그루처럼 자라는 나무. 30년 된 옛 공장 건축과 현대적 건축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공간을 이뤘으니 연리지를 닮았다고 할 만했다. 또 두 건축의 신경망이 얽히는 곳을 3층으로 설정해 예술공간과 서비스공간이 서로 얽혀 돌아가도록 했으니 또 다른 의미에서도 연리지를 닮은 건축이라 생각했다. 


     호이스트 1호에 매달려 있는 정찬이 작가의 ‘1000년의 기억’(왼쪽). 호이스트 2호에 매달려 있는 박천욱 작가의 ‘주체롭게 자라나다 4’. [©타별사진관 조재무]

    호이스트 1호에 매달려 있는 정찬이 작가의 ‘1000년의 기억’(왼쪽). 호이스트 2호에 매달려 있는 박천욱 작가의 ‘주체롭게 자라나다 4’. [©타별사진관 조재무]

    그러다 1, 2층 예술공간의 일부로 활용되는 지하 1층 벙커를 자세히 살펴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1, 2층과 야트막한 계단으로 연결되는 벙커에는 기존 공장 건축의 기초 구조물 중 일부가 세월의 층위를 보여주는 독립된 전시물처럼 공개돼 있다. 단단한 콘크리트로 이뤄진 그 기초를 옛 건축과 새 건축이 공유하고 있음을 거기서 발견했다. 연리지가 되려면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가지로 연결돼야 한다. 하지만 코스모40의 옛 건축과 새 건축은 뿌리가 같았다. 다만 두 건축의 공통 뿌리가 돼야 했기에 콘크리트 보강이 새로 돼 있었다. 

    지상 4층의 커튼홀. 커튼을 치면 세미나공간, 커튼을 젖히면 전시·공연공간으로 변신한다(위). 지상 4층에서 내려다본 3, 4층 공간. 천장 부위에 설치된 노란색 호이스트 레인과 미끄럼틀 형태로 개조한 계단이 인상적이다. [지호영 기자]

    지상 4층의 커튼홀. 커튼을 치면 세미나공간, 커튼을 젖히면 전시·공연공간으로 변신한다(위). 지상 4층에서 내려다본 3, 4층 공간. 천장 부위에 설치된 노란색 호이스트 레인과 미끄럼틀 형태로 개조한 계단이 인상적이다. [지호영 기자]

    바로 그 순간 6백만 달러의 사나이가 떠올랐다. 두 다리와 왼팔이 사이보그화한 스티브 오스틴. 두 다리가 강화된 기초라면, 한 팔은 옛 건축 한쪽 측면으로 관입된 새 건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6백만 달의 사나이에겐 사이보그화한 것이 더 있다. 한 개의 전자눈. 코스모40에서 그 눈에 해당하는 것이 뭘까. 4층 천장 부위에 설치된 2개의 호이스트가 떠올랐다. 과거 산업용 부자재를 옮기던 그 호이스트에는 2개의 설치미술 작품이 매달려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느티나무 고목을 통째로 작품화한 정찬이 작가의 ‘1000년의 기억’, 그리고 목재와 금속 구조물에 여러 조명장치가 달린 박천욱 작가의 ‘주체롭게 자라나다 4’이다. 한때 산업기술의 첨병이던 코스모40은 그렇게 문화예술화된 두 개의 전자 눈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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