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발행어음 사업권, 간절하진 않다?!

4호 사업자 선정 앞두고 분위기 변화 조짐…“저금리가 기회이자 위기”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9-23 09: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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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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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어음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발행어음 사업권을 가진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이 올해 상반기까지 거둔 수신 잔액이 각각 5조5000억 원, 3조5000억 원, 9600억 원(그래프1 참조). 후발주자 KB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두 증권사는 올해 목표 잔액에 근접하는 성과를 이미 거둔 상태다. 

    발행어음이란 증권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약정된 수익률을 제시하고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말한다. 발행어음 사업 인가 조건이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초대형 증권사(IB)’이기 때문에 발행사 신용도가 우수하고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 대비 수익률도 높아 여유 자금이 빠르게 발행어음으로 쏠린 것이다. 예금자보호법 적용을 받지 않는 금융상품이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신용이 우량한 초대형 증권사가 발행하는 만큼 위험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증권사는 발행어음으로 모은 자금을 기업금융(수탁금의 50% 이상), 부동산 투자(수탁금의 30% 이하) 등에 운용한다. 

    2016년 8월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일정 조건을 갖춘 증권사에 발행어음 사업을 허용하기로 결정하자 은행들이 적극 반발했을 정도로 각 증권사는 발행어음 사업을 큰 호재로 여겼다. 그간 은행이 독점해온 ‘기업 대출’을 직접 할 수 있고, 은행의 예·적금을 선호하는 고객을 일부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4조 원’ 요건을 충족하고자 몸집을 불려갔고, 2017년 11월 한국투자증권, 2018년 5월 NH투자증권, 그리고 올해 4월 KB증권이 차례로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취득했다. 

    개시 2년이 채 안 돼 10조 원 규모로 커진 발행어음 시장은 ‘4호’ 사업자 인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미래에셋대우와 신한투자금융이 꼽힌다. 

    미래에셋대우는 2017년 11월 일찌감치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금융위에 신청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받으면서 심사가 보류됐다. 하지만 올해 6월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공정위와 국세청의 조사 착수 6개월 이내에 검찰 고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인가·등록 심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올해 하반기에 미래에셋대우에 대한 심사가 재개되리라는 게 시장의 기대다.



    “인가에 조바심 낼 정도는 아냐”

    신한투자증권은 7월 6600억 원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4조500억 원까지 키워 발행어음 사업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신한투자증권은 이 사실이 공시되는 3분기 보고서가 나오는 11월 이후부터 발행어음 사업 인가 절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우선 12월에 금융위로부터 초대형 IB로 지정받고, 내년 초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발행어음 사업권에 대한 증권업계 시각이 다소 달라진 분위기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일부 증권사가 발행어음 사업권을 간절하게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할 정도였지만, 저금리 기조가 강화되면서 발행어음 사업성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간절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발행어음 사업권 취득 수순에 나선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어음 사업을 위한 조직과 시스템을 이미 다 갖춰놨지만, 조바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증권업계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저금리와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로 고객의 수익 기대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고, 운용 수익을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0.25%p 내리자 발행어음을 판매하는 3개 증권사는 일제히 수익률을 인하했다. 만기 1년 거치식 발행어음의 금리(세전, 개인 고객 기준)는 한국투자증권이 2.10%로 가장 높고 KB증권 2.05%, NH농협증권 1.85%이다(그래프2 참조). 카카오뱅크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1.80%와 거의 차이가 없거나 조금 높을 뿐이다. 정기적금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납입하는 정액적립식 금리는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편이다. 한국투자증권 3%, KB증권 2.75%, NH투자증권 2.50%로 카카오뱅크 정기적금 금리(1.80%)와 비교해 0.7~1.2%p 더 높다. 

    발행어음 수익률이 하락하자 실제 발행어음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 증가폭이 지난해보다 감소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평균 잔액 증가액이 2000억 원에 달했으나, 7월에는 전월 대비 400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역마진이 날 수 있기 때문에 고객 기대에 맞춰 발행어음 금리를 높게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연일 하락하고 있고,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것도 증권사 발목을 붙잡는다. 한 증권사 임원은 “요즘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좀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경기 불황으로 기업 및 부동산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 발행어음으로 끌어모은 자금이 자칫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발행어음 사업을 하는 3개 증권사는 발행어음으로 끌어모은 자금의 10~20%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부동산 투자의 성과가 좋은 편이지만, 앞으로 부동산 경기가 둔화해 발행어음 운용 성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모험자본 투자 기대는 ‘시기상조’

    발행어음으로 끌어모은 자금을 혁신기업 투자에 활용하라는 정부의 의지도 증권사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초대형 IB의 기업금융 역량을 강화하려면 이들이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금융위가 발행어음 사업을 허용한 배경에는 이러한 목적과 더불어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을 육성하려는 취지가 있었다. 3월 금융위가 발표한 ‘혁신금융 추진방향’에는 발행어음 조달한도(자기자본의 200%)를 산정할 때 혁신·벤처기업 투자 금액은 제외하기로 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시장에 등장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발행어음 자본’에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혁신기업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많다. NH투자증권의 한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의 고객으로부터 받은 단기 자금을 높은 리스크를 안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증권사들이 서서히 혁신기업 투자에 나서고 있는데, 그러한 경험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혁신기업 투자를 늘려가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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