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화웨이 생존의 최대 변수는 대만의 TSMC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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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의 신주시 본사 건물. [TSMC]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의 신주시 본사 건물. [TSMC]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Foundry)업체인 TSMC(臺積電)의 창업자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88) 전 회장은 대만 반도체업계의 대부라는 말을 들어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석사학위와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장 전 회장은 1955년 미국 실바니아전자에 들어가 반도체업계에 입문한 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5년간 일하며 부사장까지 지냈다. 1985년 대만 정부 산하 공업기술연구원(ITRI)의 책임자로 영입돼 대만으로 귀국한 장 전 회장은 2년 뒤인 1987년 56세 나이에 TSMC를 설립해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다 지난해 6월 은퇴했다. 

    TSMC는 파운드리업계에서 48% 시장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22억 달러(약 34조4000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파운드리는 설계를 하지 않고 팹(Fab·Fabrication의 줄임말)을 통한 반도체만 생산하는 업체로, 팹리스(Fabless)업체와 반대된다. 반도체업계에서 팹은 공장을 의미하는데,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은 팹리스로 구분한다. 장 전 회장은 미국 반도체업체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을 키웠으며 중국 반도체업체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비상용 타이어 사용할 때가 왔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중국 화웨이(왼쪽)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의 로고 [Gizbot]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중국 화웨이(왼쪽)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의 로고 [Gizbot]

    미국 상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이자 5세대(5G) 이동통신의 글로벌 선두주자인 중국 화웨이(華爲)와 68개 계열사를 수출제한 대상 기업 명단(entity list)에 올리면서 TSMC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5일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국 정보통신기업과 서비스망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자국 기업의 외국 통신장비와 서비스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상무부 명단에 오른 외국 기업은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다. 그러자 미국 반도체업체인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과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은 잇달아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는데도 화웨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한 핵심 반도체 부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화웨이 창업자이자 CEO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중국 언론들과 기자회견에서 “화웨이는 미국 반도체와 똑같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런 회장이 이처럼 호언장담하는 이유는 화웨이가 하이실리콘(海思半導體)이라는 반도체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연구개발(R&D) 중시 정책 덕에 하이실리콘은 AP 등 일부 반도체 제품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허팅보(何庭波) 하이실리콘 CEO도 “수년 전부터 미국의 칩과 기술을 얻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가정해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준비해왔다”며 “미국 상무부의 이번 조치로 우리가 준비한 비상용 타이어를 사용할 때가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파운드리 산업의 특성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총통부에서 장중머우 전 TSMC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총통부에서 장중머우 전 TSMC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정보기술(IT) 전문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하이실리콘은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1%나 늘어나면서 1년 만에 매출액 기준 세계 반도체업체 순위가 25위에서 14위로 급상승했다. 하이실리콘의 지난해 매출액은 55억 달러(약 6조5600억 원)로 5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화웨이가 2004년 세운 하이실리콘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만 하는 팹리스업체다.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곳은 TSMC다. 화웨이에 적용된 수출제한 대상에는 미국 기업의 제품뿐 아니라 미국의 원천 기술이 일정 부분 이상 포함된 다른 나라의 제품도 포함돼 있다. TSMC 역시 미국 원천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TSMC는 미국의 제재조치 위반 여부를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해당 사항이 없어 일단 하이실리콘과 거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가 이런 입장을 보이는 것은 반도체 주요 시장인 스마트폰과 자동차 전장 부문에서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파운드리 산업의 특성을 들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은 기밀 유지와 품질 완성도 등을 고려해야 하기에 자국 정부의 제재조치에 동참하지 않은 TSMC 대신 다른 파운드리업체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TSMC가 앞으로 화웨이와 관계를 장기간 유지할지는 불확실하다. TSMC 지분의 6.68%는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보유하고 있고 JP모건체이스, 뱅가드 등 미국 투자은행들을 비롯해 외국인 지분이 77%나 된다. 대만 정부는 현재 TSMC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차이잉원 총통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라며 자신을 압박해온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을 견제하기 위해 TSMC에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장 전 회장은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는 등 친미 성향을 보여왔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경우 5~6개월분, 5G 장비는 9~12개월분의 재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CLSA의 투자분석가 서배스천 호우는 “하이실리콘이 아무리 반도체 설계를 잘하더라도 TSMC가 생산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화웨이 생존의 최대 변수는 TSMC와의 거래 유지 여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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