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104년 전 아인슈타인의 예측과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이 맞았다

인류 최초의 블랙홀 촬영, 그 방법과 의미

  • 박명구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교수

    ooo@ooo.com

    입력2019-04-1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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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메시에87 중심부의 블랙홀을 촬영한 사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카를 슈바르츠실트 (왼쪽부터) [AP=뉴시스, 위키피디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으로 메시에87 중심부의 블랙홀을 촬영한 사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카를 슈바르츠실트 (왼쪽부터) [AP=뉴시스, 위키피디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15년 11월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질량과 에너지가 있으면 시공간이 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내용은 장방정식이라는 매우 복잡한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됐고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이 방정식의 정확한 해는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독일군 중위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러시아 전선의 포화 속에서 한 달 만에 이 낯선 장방정식의 정확한 해를 발견하고 그해 12월 22일 아인슈타인에게 알리지만 이듬해 병사하고 만다. 이 해가 바로 수학식으로 표현된 블랙홀이었다. 

    블랙홀은 지구 같은 행성이나 태양 같은 항성(별)과 매우 다르다. 지구는 액체나 고체로 된 표면을 가졌다. 별은 표면에 해당하는 대기가 있고 그 안쪽에는 기체 상태의 물질로 가득차 있다. 반면 블랙홀은 모든 질량이 특이점 상태로 중심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는 빈 공간이다. 별과 마찬가지로 멀리 있으면 중력이 약하고, 가까워질수록 중력이 강해진다. 하지만 별과 달리 블랙홀에 가까이 가면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너무 많이 휘어져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중력에 의해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 구멍인데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검게 보이는 구멍, 이것이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의 그림자’

    블랙홀 이론을 설명하는 도식. [shutterstock]

    블랙홀 이론을 설명하는 도식. [shutterstock]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경우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고 하는 반지름의 구면이 빛이 탈출할 수 있는 영역과 붙잡히는 영역을 나누는 경계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인 이 경계의 안쪽에서 일어난 사건은 절대로 바깥세계에 알려질 수 없기에 이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에 해당한다. 사건의 지평선 안쪽의 사건이나 물리적 상태는 관찰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지평선 바깥으로 전달될 수도 없다. 블랙홀 안이 어떻게 돼 있는지 절대로 직접 관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사건의 지평선이 존재하면 블랙홀이 있다고 한다. 사실은 선이 아니라 2차원의 면이므로 사건의 지평면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긴 하다. 이 지평면의 크기를 보통 블랙홀의 크기로 본다. 가끔 언론에 등장하는 싱크홀(지반이 함몰돼 생기는 구멍) 사진을 보면 바닥이 컴컴해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블랙홀은 우주적 싱크홀이고 한번 잘못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구멍의 입구가 사건의 지평선인 셈이다. 

    물론 블랙홀은 물리적인 표면이 없고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멍이므로 홀로 있는 블랙홀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블랙홀 뒤에 밝은 천체가 있거나 블랙홀 주변에 빛을 내는 물질이 있으면 관측 가능해진다. 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은 주변의 기체를 강한 중력으로 끌어모아 삼키는데 이 과정에서 기체가 압축되면서 온도가 올라가고 다양한 빛을 방출하게 된다. 이런 블랙홀은 관측할 수 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해 이런 경우 블랙홀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를 이미 계산했다. 빛이 블랙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지난다면 1919년 5월 일식 관측에서 확인된 것처럼 약간만 꺾이게 된다. 하지만 블랙홀에서 가까이 지날수록 더 많이 꺾이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블랙홀을 한 바퀴 또는 여러 바퀴 도는 빛도 있을 수 있다. 

    빛이 블랙홀에 붙잡혀 원운동을 하게 되는 ‘광자 고리’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의 1.5배 위치에 생긴다. 그런데 이 광자 고리 근처의 빛은 휘어져 빠져나오기 때문에 더 크게 보인다. 이로 인해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광자 고리가 사건의 지평선보다 2.6배 더 크게 보이고, 고리 안쪽 부분은 검게 보이게 된다. 고리 안쪽 방향은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가는 방향이고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서는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통 ‘블랙홀의 그림자’라고도 부르지만 사실은 깊은 싱크홀의 안쪽이 어둡게 보이는 것처럼 아무런 빛이 나오지 않는 블랙 싱크홀을 보는 것이다.

    블랙홀의 질량과 크기 계산법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이 공개한 블랙홀이 별을 삼키는 모습. [AP=NASA]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이 공개한 블랙홀이 별을 삼키는 모습. [AP=NASA]

    이렇게 예상되는 블랙홀의 모습을 직접 보려고 할 때 제일 큰 문제는 블랙홀의 크기다. 사건의 지평선 크기는 질량에 비례하는데 태양과 같은 질량을 블랙홀로 만들면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은 약 3km가 된다. 무거운 별들은 진화해 마지막에 초신성 폭발을 하면서 블랙홀이 만들어지는데 이런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수십 배에 달한다. 따라서 이런 블랙홀들의 사건의 지평선 반지름은 수십km가 된다.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우리은하 내 블랙홀까지 거리는 수천 광년 정도고, 1광년은 대략 10조km이므로 사건의 지평선 각지름은 30억 분의 1각초(1각초는 3600분의 1도)로 매우 작다. 멀리서 천체를 관찰할 때 천체의 상단과 하단이 이루는 각을 각지름이라고 한다. 천체가 멀리 있을수록 각지름은 작아진다. 

    천문학자들이 지상에서 망원경으로 관측할 때 제대로 형태를 구별할 수 있는 각크기는 약 1각초 내외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지구 대기의 아지랑이 효과를 겪지 않아 0.05각초까지 자세하게 관측할 수 있다. 이는 사람 시력 1.0보다 1200배 더 좋은 시력이다. 사건의 지평선을 직접 촬영하기 위해서는 더 큰 블랙홀과 시력이 더 좋은 망원경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다행히 우주에는 더 큰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지난 30여 년간 관측을 통해 여럿 확인됐다. 이런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까지 질량을 가져 ‘초대질량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로 불린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초대질량블랙홀은 궁수자리 방향에 있는 우리은하의 중심부에 위치한 궁수자리A*(*는 특별한 전파원이라는 표시)이다. 이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430만 배이며 지구에서 약 2만6000광년 떨어져 있다. 따라서 그 사건의 지평선 각지름은 약 20마이크로각초(1마이크로각초는 100만 분의 1각초)이며 광자 고리의 각지름은 53마이크로각초 정도로 보일 것이다. 

    처녀자리에 있는 거대한 타원은하 메시에87(M87)의 중심부에는 훨씬 더 무거운 블랙홀이 있다. 약 550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이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60억 배 정도로 추정됐다. 이에따라 사건의 지평선은 각지름 15마이크로각초, 광자 고리는 각지름 40마이크로각초 정도로 추정됐다. 허블우주망원경이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각보다 1300배 더 작다.

    ‘미러볼 효과’ 활용한 구경합성법

    거울의 지름이 2.4m인 허블우주망원경보다 1300배 더 큰 망원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천문학자들은 그 대신 지구 크기의 전파망원경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방법을 활용했다. 보통 접시 모양으로 생긴 전파망원경은 하늘의 특정 방향에서 오는 전파의 세기를 측정한다. 

    그런데 전파망원경이 두 개 있으면 두 전파망원경에 도착하는 전파의 시간 차이를 이용해 전파원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사람이 두 귀를 이용해 소리가 오른쪽에서 나는지 왼쪽에서 나는지 대충 소리 방향을 알아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주에서 온 전파 신호에 의해 한 전파망원경이 수신기를 통해 출력하는 전압의 변화와 다른 전파망원경이 출력하는 전압의 변화를 상관기를 이용해 처리하면 시간 차이를 결정할 수 있고 이로부터 전파가 오는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귀가 왼쪽, 오른쪽 방향은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위아래 방향은 잘 구별하지 못하듯, 두 전파망원경 역시 수직한 방향은 같은 시각에 전파 신호가 도착하므로 방향을 구별해낼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여러 개의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이들 전파망원경에 도착하는 신호의 시간 차이를 결정하게 되면 2차원 전체 방향 어디에서 오는 전파인지 알아낼 수 있다. 

    게다가 전파망원경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지구 자전에 의해 이들 망원경이 이동하므로 망원경을 여러 위치에 옮겨놓고 관측하는 것과 같은 ‘미러볼 효과’가 생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파 하늘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러한 방법을 구경합성법이라고 한다. 구경합성법을 고안한 마틴 라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는 197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런 방법으로 전파망원경이 지구의 여러 곳에 떨어져 있으면 지구 전체 크기와 비슷한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실제 지구면 전체를 전파망원경으로 채우는 것은 아니므로 이렇게 관측한 결과는 잡음과 가짜 신호도 포함하고 있어 복잡한 통계처리를 거쳐야 한다. 수신기의 전압을 기록한 자료 자체도 엄청난 양이지만 이런 복잡한 계산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자료처리에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게 된다. 

    4월 11일 발표된 블랙홀의 모습은 2017년 4월 네 개 대륙에 위치한 여덟 개 전파천문대의 전파망원경들로 구성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을 이용해 M87 중심부를 관측한 결과다. 파장 1.3mm(휴대전화에서 사용되는 전파 파장의 약 100분의 1)의 극고주파 영역에서 관측한 자료를 구경합성법으로 2년간 처리하고 분석해 얻어낸 전파지도를 색과 밝기로 표시해 사진처럼 만든 것이다.

    4월 11일 발표된 블랙홀 사진

    하와이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있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궁수자리 A* 초대질량블랙홀.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언론 콘퍼런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AP=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 AP=미국 컬럼비아대, AP=뉴시스]

    하와이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있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궁수자리 A* 초대질량블랙홀.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언론 콘퍼런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AP=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 AP=미국 컬럼비아대, AP=뉴시스]

    네 개 팀이 독립적으로 분석해 결과가 일치함을 확인한 후 발표한 전파 사진은 놀랍게도 가운데가 어두운 고리 모양으로 정확하게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된 모습이다. 사건의 지평선이 존재해 빛이 나오지 않는 부분이 가운데 존재하고 빛의 속도에 가깝게 블랙홀로 돌면서 끌려 들어가는 기체들의 운동에 의해 한쪽 부분이 더 밝게 보이는 상대론적 빛 집중 현상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상되는 그대로다. 광자 고리의 각지름 42마이크로각초는 사건의 지평선 각지름의 2.6배여야 하므로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65억 배임을 알 수 있다. 

    이 질량은 다른 관측 방법으로 추정한 M87 블랙홀의 질량(60억 배)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는 2015년 9월 중력파 발견에 이어 아인슈타인이 100여 년 전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 블랙홀처럼 중력이 극단적으로 강한 경우도 매우 잘 설명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해주는 놀라운 연구 결과다. 

    관측 기간 중 날씨가 도와준 것도 다행이지만 사실 고리 모양으로 보인 결과가 나온 것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관측한 전파 파장대에서 블랙홀 주위 기체가 불투명했다면 그냥 둥근 덩어리로 보였을 테고 이럴 경우 일반상대성이론의 효과보다 블랙홀 근처 기체의 천체물리학적 상태의 영향이 더 커져 블랙홀에 대한 일반상대성이론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블랙홀로 돌면서 끌려 들어가는 기체 원반이나 빛의 속도에 가깝게 뿜어져 나오는 제트의 흔적 등이 아직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후속 관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수백 명의 전 세계 천문학자가 다년간 협력해 매우 어려운 관측을 했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복잡한 과정을 통해 분석해 104년 전 수학적 해로 시작된 블랙홀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은 인류 전체의 성과라고 봐야 한다. 천체물리학자로서 이런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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