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9

2015.12.30

美 메이저리그 한국인 전성시대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 이름 올려…류현진 부활투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5-12-29 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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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메이저리그 한국인 전성시대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왼쪽)과 201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한 강정호. 뉴스1

    미국 메이저리그와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 축구 프로리그다. 국내에서 관심이 뜨거운 것은 한국 선수들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위와 흥미가 높은 리그라도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뜸해지는 순간 흥미는 반감한다.
    또 다른 의미는 한국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이 주는 쾌감이다. 특히 야구는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 출신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신인 선수들이 대거 미국 무대에 도전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박찬호 등 메이저리그 진출 1세대가 야구 원석으로 태평양을 건너가 미국에서 다듬어져 빛을 발했다면 류현진(LA 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한국에서 출발해 성장했다. 그만큼 꿈의 무대로 꼽히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이 KBO 리그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류현진, 강정호에 이어 2015년 겨울 순수 KBO 리그 출신 메이저리그 진출 3, 4호 주인공이 탄생했다.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는 이승엽(삼성 라이온즈)도 하지 못한 KBO 리그 홈런왕의 빅리그 입성을 이뤘다.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포스팅(비공개입찰)이 아닌 자유계약선수(FA)로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한 최초의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1968년 시작된 메이저리그 도전

    많은 이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도전의 주인공으로 박찬호를 기억하지만 그 역사는 50여 년 전인 1960년대 이미 시작됐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최초의 한국인인 것은 맞지만 첫 번째 도전자, 첫 개척자는 아니었다.
    이원국은 원로 야구인이자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로 꼽히는 인물이다. 워낙 기량이 뛰어나 1966년 중앙고 3학년 때 국내 실업팀이 아닌 일본 프로야구로 스카우트됐다. 도쿄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했지만 외국인선수 보유 제한 규정에 걸려 미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직 한국에는 프로리그가 없었고 일본 리그도 높은 평가를 받던 시절이 아니었다. 대단한 개척정신이 아니었다면 선택하기 힘든 도전이었다.
    이원국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몬트리올 엑스포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던지며 트리플A까지 올랐지만 빅리그 마운드에는 서지 못했다. 그러나 멕시칸리그에서 150승85패를 기록하며 이름을 날렸고, 1983년 MBC 청룡에 입단해 국내 팬과 만나기도 했다.
    이재우 전 OB 베어스 감독은 1972년 제일은행에서 뛰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입단해 트리플A까지 올랐다. 박철순은 80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계약금 1만 달러를 받고 입단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더블A까지 올라섰지만 KBO가 출범한 82년 OB가 3만 달러의 이적료를 지급해 한국으로 돌아와 원년 우승의 주역이 됐다.
    이후 14년 만인 1994년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했고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첫 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그 시대의 문이 열렸다. 이후 한국 아마추어 유망주들에게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구애가 집중됐다. 1994년 박찬호부터 2010년 김진영까지 53명이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정상급 유망주가 대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KBO 리그 인기가 급속히 추락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4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프로야구 팀과 계약한 58명 가운데 메이저리그 무대를 한 번이라도 밟아본 선수는 13명뿐이었다.

    명맥 끊겨가던 한국인 빅리거, 그리고 KBO

    美 메이저리그 한국인 전성시대

    2016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박병호, 김현수(왼쪽부터). 스포츠동아

    58명의 도전, 그리고 13명의 빅리그 입성. 그러나 박찬호를 뛰어넘는 한국인 메이저리그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구대성과 이상훈은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빅리그 마운드에 오른 경우였다.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최희섭 정도가 족적을 남겼을 뿐 2000년대 중·후반 추신수를 제외하면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힘겨워졌다. 그러나 2013년 류현진이 KBO 리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며 새로운 한국인 빅리그 시대가 시작됐다.
    류현진이 2013~2014년 2년 연속 14승을 거두며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을 높였고, 2015년 강정호가 피츠버그에 입단해 투수가 아닌 KBO 리그 출신 야수도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5년 겨울 박병호와 김현수가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했다.
    박병호는 2015년 12월 2일 미네소타와 공식계약을 체결했다. 조건은 5년 총액 1800만 달러(약 208억 원). 그러나 보장액수는 4년 1200만 달러(약 140억 원)다. 5년째는 구단 옵션으로 연봉 6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KBO 리그 박석민이 NC 다이노스와 4년 최대 96억 원에 계약한 것과 비교하면 기대치보다 연봉은 낮다. 그러나 미네소타는 박병호를 위해 포스팅 이적료 1285만 달러(약 149억 원)를 포함해 3085만 달러(약 357억 원)를 투자했다. 박병호는 계약 다음 날 미네소타 타깃 필드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팀이 충분한 금액을 제시했다고 생각하고 기분 좋게 서명했다”며 돈보다 꿈의 가치를 더 높이 생각한 진심을 표현했다. 미네소타는 팀 프랜차이즈 스타 조 마워가 클럽하우스에서 박병호를 직접 환영하며 예우했고, 박병호가 넥센 히어로즈에서 달던 52번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도 마련해뒀다.
    KBO 리그에서 9년을 뛰고 만 27세에 FA 자격을 획득한 김현수는 박병호, 강정호처럼 포스팅 시스템 없이 완전히 자유로운 위치에서 직접 팀을 선택했다. 볼티모어가 제시한 조건은 2년, 700만 달러(약 82억6000만 원)다. 연평균 약 40억 원으로 KBO 리그 초대형 FA 계약 수준을 뛰어넘는다. 메이저리그 프런트 및 스카우터 출신인 대니얼 김 SPOTV 해설위원은 “볼티모어에게 2년 700만 달러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추가 옵션도 예상되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고 본다. 2년 계약도 FA였기에 가능한 큰 성과”라며 “선수 기용이 매우 공정한 벅 쇼월터 감독 밑에서 활약한다면 여전히 20대인 2년 뒤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대형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볼티모어의 현 전력상 김현수의 주 포지션인 좌익수가 가장 취약하다. 2015시즌 볼티모어 전체 경기에서 좌익수들이 기록한 타율은 0.210, 출루율은 0.287이다.
    야구장도 김현수 편이다. 박병호의 타깃 필드와 반대로 김현수의 오리올파크는 대표적인 타자 친화적인 야구장이다. 우측 담장 97m, 좌측 101m, 중앙 125m로 서울 잠실야구장보다 작은 편이다. 파울 지역이 좁고 펜스도 짧아 잠실에서 9년을 뛴 김현수에게는 두려울 것이 전혀 없는 빅리그 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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