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3

2019.04.05

유튜브연구소

“인생 자체가 콘텐츠”

시니어 크리에이터, 흥미보다 경험으로 빚어낸 콘텐츠로 승부

  • 배철순 개인방송분석연구소장

    howlaboratory@gmail.com

    입력2019-04-09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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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상무, 애주가TV참PD / 음식 관련 전문성이나 특별한 콘셉트로 레드오션인 먹방계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맛상무(위)와 애주가TV참PD.

    맛상무, 애주가TV참PD / 음식 관련 전문성이나 특별한 콘셉트로 레드오션인 먹방계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맛상무(위)와 애주가TV참PD.

    ‘유튜브의 신’을 발간한 1세대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크리에이터의 성공 요건으로 가장 먼저 ‘성실성’을 꼽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콘텐츠 2~3개를 꾸준히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초보 크리에이터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진입장벽은 성실성이다. 보통 100~150개 동영상을 게시하면 채널이 안정화됐다고 본다. 하지만 많은 초보 크리에이터가 ‘촬영’과 ‘편집’에 피곤함을 느끼고 중도 포기한다. 그런데 초보 딱지를 떼고 수만,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크리에이터는 대부분 ‘콘텐츠 기획’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천편일률화되는 유튜브 생태

    크리에이터의 아이디어는 분명 한계가 있다. ‘팀’으로 구성된 크리에이터는 조금 나을 수 있겠지만, 결국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시기가 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크리에이터 간 표절 시비가 잦은 편이다. 아직 저작권 분쟁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포맷을 베끼고, 유행하고 있는 유사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매우 흔해졌다. 이런 현상은 수만,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를 확보한 대형 크리에이터일수록 오히려 빈번하다. 독자적인 콘텐츠는 이미 소화한 상태고, 조금이라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콘텐츠라면 베껴서라도 높은 조회수를 얻겠다는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다루는 장르가 불분명한 경우도 종종 생긴다. 크리에이터 랭킹(순위)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콘텐츠의 ‘카테고리’ 분류다. 예를 들어 분명 ‘게임’이 주 콘텐츠인데, ‘노래’를 부르거나 ‘일상’을 노출하며 큰 웃음을 주는 예능적 성격이 포함된 채널이 종종 있다. 콘텐츠 수는 ‘게임’이 많지만 ‘일상’을 다룬 콘텐츠가 더 많은 조회수를 얻는 경우도 적잖다. 이때 ‘게임’과 ‘예능’ 가운데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까. 

    특히 활동 기간이 긴 대형 크리에이터일수록 주 콘텐츠의 방향성이 옅어지고, 예능에 가까운 주제에 도전해 높은 ‘인지도’와 ‘팬덤’을 바탕으로 조회수를 올린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논란이 되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양산되기도 한다.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의 유명 BJ(방송자키) ‘철구’는 인터넷 방송 초창기인 2009년에는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주 콘텐츠로 하는 게임 크리에이터였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인 그는 게임 실력으로 시청자를 모았다. 하지만 욕설과 수위 높은 농담에도 시청자가 몰리자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엽기적 콘셉트의 방송을 시작했다. 시청자 개개인의 요구에 부합하는 효용성과 유익함을 준다는 개인방송의 기본 취지에 어긋나는 대목이다.



    경쟁력은 경험에서 나온다

    Mr.아재 / DIY 전문 채널로 자극적 콘텐츠 없이 꾸준하게 구독자를 모으고 있다.

    Mr.아재 / DIY 전문 채널로 자극적 콘텐츠 없이 꾸준하게 구독자를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방송 취지에 맞는 방송은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보다 크리에이터 개인 역량이 중요하다. 화려한 화술과 잘생긴 외모만으로는 어렵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주 콘텐츠의 가치가 무엇보다 우선시된다. 이미 레드오션을 운운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유튜브 콘텐츠 시장에서 대도서관이 말한 성실성에 ‘콘텐츠의 깊이’가 더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콘텐츠의 깊이는 단숨에 이르기 힘든 영역이다. 크리에이터 카테고리 분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크리에이터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훈련받은 프로게이머 출신이 대부분이다. 아직은 대형 크리에이터가 탄생하지 않은 분야이긴 하지만 ‘금융정보’ ‘부동산경제’ ‘법률상식’ ‘의료정보’ 같은 전문영역은 어떨까. 책 몇 권 읽고 화려한 화술로 콘텐츠를 꾸미는 것도 잠시일 뿐 경쟁력 있는, 지속적인 조회수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콘텐츠 기획력 측면에서 실버 크리에이터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실제로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아재’를 표방하는 전문영역의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했고, 깊이 있고 체계적인 내용으로 점차 인기를 얻는 중이다. 특히 ‘맛상무’(40만 명·이하 구독자 수), ‘애주가TV참PD’(55만 명)처럼 세대 간 차이가 적은 주제인 ‘먹을거리’에 전문적으로 접근한 콘텐츠가 호응을 얻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게임 다음으로 규모가 큰 ‘먹방’ 카테고리에서 뒤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콘텐츠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 영원씨01seeTV / 
실버 크리에이터의 대표격인 박막례 할머니(위)와 영원씨.

    박막례 할머니, 영원씨01seeTV / 실버 크리에이터의 대표격인 박막례 할머니(위)와 영원씨.

    해외 인기 카테고리인 DIY(Do It Yourself)에서 국내 시니어 크리에이터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직업적 경험과 오랜 취미생활 투자가 ‘전문가’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시작한 것. 대표적 채널은 ‘Mr.아재’(20만 명). 3D프린팅, 프로그래밍, 목공, 금속설계 등 다양한 제작 역량을 선보이는 크리에이터다. 화려한 언변은 없지만 콘텐츠의 전문성을 무기로 구독자를 차츰 늘려왔다. ‘예능’ 카테고리도 마찬가지. 이미 유명인이 된 ‘박막례 할머니’(78만 명)는 물론, 최근 따뜻한 할머니 콘셉트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원씨01seeTV ’도 먹방, 여행 등 예능 콘텐츠를 선보이며 15만 명 넘는 구독자를 모으고 있다. 

    경험과 연륜이 쌓인 어른들은 콘텐츠가 확실하다는 강점이 있다. 기술의 ‘보편화’로 진입장벽이 점차 낮아지는 요즘 새로운 ‘어른’ 크리에이터의 탄생과 성공은 예외가 아닌 당연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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