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광개토대왕함 사건은 일본의 기획도발?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8-12-28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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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를 지키는 1함대 사령함인 광개토대왕함. 한일 간 해군력 격차가 줄어들었기에 과거와 달리 요즘 우리 함정들은 일본 초계기가 지나치게 접근하면 경계 태세를 취한다. [동아DB]

    동해를 지키는 1함대 사령함인 광개토대왕함. 한일 간 해군력 격차가 줄어들었기에 과거와 달리 요즘 우리 함정들은 일본 초계기가 지나치게 접근하면 경계 태세를 취한다. [동아DB]

    한국과 일본은 동해, 남해에서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을 확정 짓지 않았다. 배타적 경제권 가운데 하나인 어로(漁撈)수역만 일부 확정했을 뿐이다. 

    폭이 좁은 남해와 동해 남부에서 마주한 나라는 둘뿐이니, 양국은 중간선을 찾아내 어로경계선을 그었다. 그러나 넓어지는 동해 중앙부에는 양국 어선이 모두 조업할 수 있는 중간수역을 뒀다. 

    이 중간수역 동북부에 고기가 많은 얕은 바다가 있다. 고대 일본을 ‘야마토(大和)’라고 하는데, 그곳을 발견한 일본은 ‘야마토타이(大和堆·야마토 언덕)’로 작명했다. 우리는 이것이 싫어, 한자 발음 그대로 ‘대화퇴’라 부르고 있다. 대화퇴 어장은 일본 쪽에 가까워 북부는 일본 어로수역이고, 중남부만 중간수역이 됐다. 

    그런데 일본과 어업협정을 맺지 않은 북한 어선도 여기에 나와 조업을 한다. 이 때문에 일본은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상시 배치해 자국이 생각하는 어로경계선을 넘어온 북한 어선들을 쫓아내고 있다. 한국도 해경 경비함을 투입해 한국 어선을 보호하고 있다. 

    북한 어선은 티가 난다. 색깔이 죄다 벗겨진 ‘고철 배’이기 때문이다. 겨울철 동해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황천(荒天)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12월 20일 대화퇴 어장에서 돌아가던 한국 어선이 북한 어선으로 보이는 배가 조난된 것을 발견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한국 해경을 불러 그 사실을 알렸다.



    황천 항해에 나선 광개토대왕함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P-1 초계기가 조우한 동해 한일 중간수역. 양국은 조우가 있었던 곳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신경전을 펼쳤다.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P-1 초계기가 조우한 동해 한일 중간수역. 양국은 조우가 있었던 곳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신경전을 펼쳤다.

    이를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광개토대왕함도 들었다. 조난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광개토대왕함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황천인지라 파도가 4~5m로 높았다. 파도가 바람에 날리는 ‘백파(白波)’ 현상도 심했다. 평시 광개토대왕함은 항해레이더만 켜고 운항한다. 그러나 백파까지 일어나는 악천후에서 파도 속에 숨은 작은 선박을 찾으려면 적을 전문으로 찾는 탐지레이더를 돌려야 한다. 높은 파고와 백파는 항해레이더 화면에 많은 ‘노이즈(雜像)’를 만들기 때문이다. 

    적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 탐지레이더는 360도로 돌아간다. 그러다 뭔가가 발견되면 피아(彼我)를 식별하고, 적으로 판단되면 격파를 위해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한다. 사격통제레이더는 표적을 정확히 봐야 하니 한 방향으로만 강력한 전파를 쏜다. 전투할 때는 격파 확인이 중요하기에 사격통제레이더에는 원거리 촬영용 광학카메라도 연결해놓았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P-1 대잠초계기. [뉴시스]

    일본 해상자위대의 P-1 대잠초계기. [뉴시스]

    탐지레이더가 조난 선박으로 보이는 것을 잡아주면 사격통제레이더나 광학카메라로 확인하고 구조작업을 하기도 한다. 조난 선박을 찾지 못해 탐지레이더로만 돌리고 있을 때 일본 해상자위대의 P-1 초계기가 날아왔다(P-3는 미국산이고, P-1은 일본이 제작한 것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동해 공해(公海)에서는 주인 행세를 해왔다. 러시아 군함이나 공군기가 들어오면 초계기를 띄워 100% 추격한다. 한국 군함의 북상은 이례적이니, 일본은 초계기를 보냈을 수도 있다. 

    모든 함정과 항공기는 레이더를 작동하는데, 그 레이더에 대한 기본 정보는 공개돼 있다. 군함은 인근 국가의 군이 사용하는 레이더 정보를 갖고 있기에 레이더파를 맞으면 바로 누가 어떤 레이더를 돌리는지 알 수 있다. P-1은 북상하는 한국 군함의 정체를 알았을 터인데, 조종사 눈으로 확인하려는 듯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는 ‘좋은 예절’이 아니다. 

    P-1이 너무 많이 내려왔기에 광개토대왕함은 광학카메라로 촬영했다. P-1 조종사는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사격통제레이더를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은 그때 P-1이 광개토대왕함이란 것까지 식별해 호출했다고 밝혔다. 한국 해군은 이를 인정한다. 그런데 P-1이 호출한 것은 광개토대왕함을 뜻하는 ‘코리아 네이비(한국 해군)’가 아니라 ‘코리아 코스트(한국 해경이라는 뜻)’였다고 밝히고 있다. 인근에 한국 해경함도 있었으니 그를 부르는 것으로 알고 계속 촬영했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함은 P-1이 돌아간 뒤 시신만 있는 북한 어선을 찾아냈다. 그런데 다음 날 일본 언론은 한국 군함이 P-1을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하며 사격 전 단계의 레이더파를 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탐지레이더는 가동하고 있었고 광학카메라 촬영은 했으나 사격통제레이더파는 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필요하다면 자료를 공개할 테니, 일본도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일본은 한국 군함이 사격통제레이더로 조준했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 일단락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현재 한일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군무관급 대화로 덮을 수 있는 사건이 국방당국까지 나설 정도로 커진 것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균형외교 대 가치관외교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상당히 거리를 둔 외교를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한 위안부합의도 부정할 정도로 반일(反日)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안보 측면에서 미국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북한 통제는 중국이 할 수 있다고 보기에 미·중 사이에서는 ‘균형외교’를 펼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반중(反中) 의사를 가진 나라와는 모두 협조한다는 ‘가치관외교’를 하고 있다. 이를 구체화하고자 ‘인도-태평양전략’을 만들어 2017년 11월 미국과 공동전략으로 삼는다는 합의도 했다. 한국은 미국의 권유에도 이 전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은 강제징용한 한국인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일본 외무성은 “그것은 한일 청구권 합의로 일괄 처리된 사안”이라며 강력 항의했다. 이렇게 한일관계가 나쁘니 일본은 광개토대왕함 사건을 빌미로 한국에 대해 ‘기획도발’을 했다는 관측이 군과 정보기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크게 문제 삼기 어려워 그냥 넘어갔지만 앞으로 꼬투리만 잡으면 사사건건 걸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명나라는 북쪽에서는 몽골로 대표되는 오랑캐와 싸우고 남쪽 해안에서는 왜구의 침입에 시달렸는데, 이를 북로남왜(北虜南倭)라 한다. 홍건적의 공격과 왜구의 침입을 모두 받은 고려 말에도 북로남왜에 시달렸다. 문재인 정부가 들인 공에 비해 지금의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그냥 덮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미봉’이 터져 나올 때 일본이 남쪽에서 흔든다면 한국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북로남왜를 의식하며 균형외교를 펼쳐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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