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시네똑똑

총 대신 춤, 전쟁 대신 평화, 그 단순한 이치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

  •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입력2018-12-14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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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인류애와 사랑이 피어오르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작정한 이가 있다면, 어느 누가 그 어둡고 무겁고 진지한 소재를 재미 본위의 대중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까.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났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북한군 포로를 수용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또 하나의 치열한 전쟁터였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춤을 추고 사랑까지 피어오른다면 이건 너무 나간 판타지다. 그런데도 그 판타지는 공감이 가고, 결국 전쟁보다 평화를 향해가는 길밖에 없음을 확인하면서 웃음과 눈물, 그 모두를 안고 극장 문을 나서게 한다.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과속스캔들’과 ‘써니’처럼 진부할 것 같은 소재를 기가 막힌 기획력으로 버무려 제대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강형철 감독이 이번엔 더 큰 도전에 나섰다.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장면을 과감히 보여주고, 신파로 억지 감동을 만들어내지 않으며, 그렇다고 의미를 퇴색시키지도 않으면서 보는 내내 푹 빠져들도록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내는 그의 용기와 재능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만다. 

    1951년 유엔군은 조선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를 거제도에 수용했다.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포로 교환 문제도 논의되는데, 이곳에서는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와 송환을 원하는 공산 포로 간 유혈사태가 빈번히 발생했다. 바로 이 공간은 냉전시대 이념 갈등의 축소판이었다는 사실이 ‘대한늬우스’ 형식의 흑백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소개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수용소에 새로 부임한 미군 소장은 제네바협정에 따라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한다는 대외홍보를 위해 전쟁 포로들로 댄스단을 결성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그는 혼란과 대결이 폭력 양상으로 바뀌곤 하는 살벌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춤과 음악만 한 것이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이에 브로드웨이 실력파 탭댄서 출신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따돌림의 대상이던 미군 잭슨(재러드 그라임스 분)이 그 일을 떠맡는데 영어도 안 돼, 재즈음악도 몰라, 스윙 춤은 더더욱 안 되는 이들로 어떻게 댄스단을 구성한다는 얘기인지 막막할 뿐이다. 이때 잭슨 상병의 눈에 들어온 이들이 있다. 



    조선인민군 공산 포로 로기수(도경수 분), 무허가 양민 통역사 양판래(박혜수 분), 반공 포로 강병삼(오정세 분), 중공군 샤오팡(김민호 분)은 잭슨의 가르침 아래 5인조 오합지졸 댄스단이 된다. 이념 투쟁과 먹고사는 문제에 종일 시달리던 그들에게 스윙이란 듣도 보도 못 한 미제(美製)는 먹지도 못하는 것인데, 안 하면 안달이 나니 이 무슨 조화인지. 

    북한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영어, 중국어가 뒤섞이며 대화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오직 춤이라는 보디랭귀지로만 통하는 이들 각자에게는 춤을 춰야 하는 이유가 있다. 강성 공산주의자 로기수는 미제 춤 탭댄스를 추면서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난생처음 느낀다. 전쟁고아로 소녀가장이 된 양판래는 돈을 벌고자 댄스단에 합류한다. 아내와 이별한 강병삼은 유명해져 순회공연을 떠나면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춤을 배운다. 샤오팡은 간식을 준다는 말에 유연한 몸놀림을 뽐내며 춤을 춘다.  

    동막골과 웨스트 사이드의 만남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사진 제공 · 안나푸르나필름]

    영화는 ‘웰컴 투 동막골’의 천진난만한 평화, ‘고지전’의 공허한 살육 뒤 남은 남북 병사들의 혼돈, 만화영화 ‘똘이장군’의 그로테스크한 이념전,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죽음과 코미디의 역설적 해학, 할리우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대립을 표현하는 춤 배틀의 폭발력을 장면 곳곳에서 떠올리게 한다. 전쟁과 춤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에 웃음, 눈물, 고통, 희망 등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총과 칼, 몽둥이가 오가는 전장의 금속성 사운드가 음악 비트처럼 들리면서 탭댄스 구두의 금속성 있는 박자로 전환되는 신기한 경험은 전쟁이 평화로 이어져야 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전쟁과 춤이 이렇게 연결되며 어울리다니 희한한 일이다. 

    그리고 대화가 서로 통하지 않는 이들은 그냥 막춤으로 소통한다. 이념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며, 처지도 다른 그들이 이성으로는 서로 통하지 않아도 감성으로 충만한 순간인 춤으로 통할 수 있는, 한 인류라는 사실에서 가슴 뜨거운 뭉클한 것이 전해진다. 

    베트남전 반대 행진을 했던 히피들이 진압 경찰의 총부리에 한 송이 꽃을 꽂았듯, 촛불을 들고 평화와 웃음으로 변화를 일궈낸 지난날의 우리 기억이 남아 있듯 영화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만이 전쟁을 이길 수 있다는 거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 아름다운 메시지가 영화가 끝난 후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이건 어차피 상업적 대중영화니까. 결국 공간 전체를 휘어잡던 음악과 탭댄스를 추던 강렬한 발놀림, 그리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하게 춤추던 배우들의 얼굴만 기억에 선명하게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음악과 춤이 절실한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영화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음악과 춤의 흥겨운 향연에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가 지워지지 않은 채 끝까지 그려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머리가 텅 빈 ‘고예산 오락영화’로 치부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영화의 새로운 도전이며, 이 도전이 통할지는 이제 관객의 심장이 결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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