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2015.12.16

의사·변호사 정년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국가고시 한 번이면 죽을 때까지 영업…전문직 면허관리 강화 방안 시급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12-15 14: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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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변호사 정년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12월 초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 환자 1055명 가운데 78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다나의원으로 11월 19일부터 폐쇄됐다. 지호영 기자

    “3년 전 교통사고로 뇌내출혈을 겪은 뒤 거동이 어려워졌고, 손도 많이 떨렸다.”
    11월 말 ‘C형 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확인된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 A(52)원장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서 털어놓은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A원장은 스스로 몸이 불편하다는 점을 고백하며 “주사기를 써야 할 때마다 새 주사기를 가져오고 포장 상태에서 꺼내는 게 번거로워 주사기 재사용을 반복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한 개의 주사기를 하루 이상 반복해 사용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도 밝혔다.

    현행법상 면허 취소 후 복권 가능

    더 충격적인 사실은 A원장이 진료에 차질을 빚자 그의 부인 B씨가 원장 대신 간호사들에게 환자 채혈을 지시하는 등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것. 보건당국은 다나의원에 대해 의료기관 업무 정지와 의료인 자격 정지를 결정했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부인 B씨에 대해서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다나의원 A원장은 2012년 교통사고를 당한 그해 뇌병변장애 3급, 언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진료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거동이 불편해 누군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A원장의 의료행위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무리하게 의료업을 강행한 끝에 환자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현행 의료법은 A원장과 같이 결함이 있는 의사를 미리 걸러내지 못한다.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경우는 의료법 제65조에 따라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의료법·형법 등 관련법에 따라 금고 이상 형이 선고된 자 △자격 정지 기간 중 의료행위를 한 자 △면허증을 빌려준 자 등으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이에 해당하는 의사라 해도 관련성을 은폐할 경우 적발하기 힘들다. 환자나 병원 직원 등 해당 의사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사람이 경찰에 고발하지 않는 이상 의사면허 취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면허가 취소된다고 의사 자격을 영원히 잃는 것도 아니다. 의료법 제65조 2항에는 ‘제1항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 자라도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면허 취소 사유가 된 사안을 의사가 스스로 개선하고, 면허 취소 후 관련법 집행 기간인 2~3년이 지나면 다시 의사로 활동할 수 있다.
    국가에서 의사면허를 관리하지만 이는 매우 수동적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대한민국 의료인은 의료법 제25조에 따라 최초로 면허를 받은 후 3년마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실태와 취업 상황 등을 신고해야 하고, 연간 8시간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어 업종에 따라 미신고자 비율이 5~8.8%에 이르는 실정이고(표1 참조),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의사를 걸러내는 기능은 전혀 없다.
    의사·변호사 정년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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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명 중 1명 고령자, 70대까지 거뜬?

    이러한 문제는 다른 전문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변호사법을 보면 제5조에 따라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거나 탄핵 혹은 징계처분에 의해 파면, 해임, 면직된 자 등에 대해 변호사면허를 취소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에서 규정한 집행 기간 2~5년이 지나면 자격은 복권된다. 강신업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겸 변호사는 “법무부에서 형이 확정되면 변호사 등록 취소 명령을 협회에 보내주는데, 그 건도 한 해 손꼽을 정도로 매우 드물뿐더러 일정 기간 이후 복권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영구적으로 변호사 자격을 잃는 일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말했다.
    회계사도 마찬가지로 회계사법 제4조에 결격 사유를 명시하고 있는데,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거나 탄핵 또는 징계처분에 의해 파면, 해임된 경우 등이다. 이 역시 조항에 따라 2~5년 뒤 집행이 종료되면 다시 회계사로 활동할 수 있다. 박영철 한국공인회계사회 홍보팀장은 “회계사는 직업 특성상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자발적으로 은퇴한다.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여건만 갖춰진다면 정년 없이 활동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평생에 한 번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웬만해서는 죽기 전까지 업을 영위할 수 있는 셈이다.
    다나의원 사건을 계기로 전문직의 면허를 갱신하는 ‘면허 재등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학회, 의료윤리학회, 의료인단체 등 협의체를 구성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건강 상태에 대한 판단 기준과 증빙 방안, 면허신고제 개선 방안 등을 총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개선 방안이 마련되면 의료법 개정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환자 진료에서 고도의 판단능력과 인지력은 의사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중요한 요소다. 판단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부 치매, 정신질환, 뇌질환 등 심신미약 상태 회원에 대해 전문가적 소견을 바탕으로 자율 식별과 정화를 할 수 있는 권한이 협회에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논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전문직 종사자의 고령화가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사국가고시는 1952년 1월 대통령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실시됐는데, 74년 다시 의사면허등록을 갱신해 1번부터 면허번호를 부여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연령별 의료인 면허신고 통계’를 보면 신고한 의사 가운데 60대 이상이 9200명으로 전체 신고자의 9.8%에 달한다(표2 참조). 현역 의사 10명 가운데 1명은 60대 이상 고령자다.
    1980년대 개업해 현역으로 활동 중인 한 60대 내과의사는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70대까지는 정정하게 진료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많다. 특히 무리한 수술이 필요 없는 내과, 가정의학과, 피부과, 소아청소년과 등 비수술과의 경우 더욱 그렇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의사의 퇴직 시기는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40~60대 현역시절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한 의사의 경우 60대에 조기 퇴직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경우 본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진료에 나서기도 한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소한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내부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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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심각한 시한폭탄 전문직 ‘면허증 대여’

    이는 다른 전문직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강신업 변호사는 “고령화 사회가 심화하면서 정년 없이 활동하는 변호사들의 퇴직 시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동감한다. 변호사도 사람이기에 고령화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와 달리 변호사는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변호행위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사와 동일선상에서 면허 갱신제 도입을 논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치매라든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무리하게 사건을 맡아 의뢰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공인회계사회는 “고령화로 문제를 겪는 회계사는 고객에게 외면받는 등 현역으로 활동할 수 없어 의사, 변호사와는 맥락이 다르다”며 “면허 갱신제 도입 논의는 아직까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변호사 정년에 브레이크를 달아라!

    의사뿐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을 대상으로 면허 재등록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빌딩으로,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박해윤 기자

    전문직의 고령화보다 더 우려되는 사안은 이들이 면허증을 대여해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료업의 경우 자격증을 대여해줬다 적발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3월 발간한 ‘소중한 내 면허, 잘 관리하자-자격정지 및 면허취소 처분 사례집’을 보면 의료인 A가 면허알선업체 측 소개로 비의료인 B에게 면허를 대여해주고 그 대가로 매월 700만 원을 지급받은 경우, 이미 자신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한 의료인 C가 다른 의료인 D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그 대가로 매월 100만 원을 지급받은 경우 등 면허증 대여로 인한 면허 취소 처분 사례가 등장한다.
    면허증을 대여해주는 것만으로도 의사는 일정액의 수입을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의사면허증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 특히 고령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의사의 면허증은 의료업에 뜻이 있는 비의료인의 표적이 되기 쉽다. 또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며 ‘대가’ 반열에 오른 의사의 경우 환자들에게 무한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면허증의 가치는 더 높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면허증 대여로 적발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12월 초 인천지방검찰청은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해 525억 원을 챙긴 법조브로커 76명을 기소하고, 명의를 빌려준 뒤 대가를 받은 변호사 57명도 불구속기소했다. 명의 대여 변호사 가운데는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도 있었는데, 일부 변호사는 대여료로 매월 500만 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여 기간인 2년 동안 5억 원 가까이 챙긴 변호사도 있었다.
    변호사가 직접 법정에 나설 필요가 없는 개인파산·회생 등의 경우 사무장이나 법조브로커가 변호사의 면허증을 빌려 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적발되고 있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50대 변호사는 “고령으로 은퇴한 변호사의 면허를 빌려 서류 업무만 진행하는 ‘사무장 로펌’이 버젓이 운영되는 것은 업계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의사면허 대여는 환자 목숨과 직결되지만 변호사면허 대여는 그런 위험성이 낮아 업계에서 그러려니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문직 가운데 면허 재등록 제도가 갖춰진 분야는 없다. 변호사나 회계사 면허 재등록 제도는 차치하더라도 환자 목숨이 달린 의사면허의 경우 한시 바삐 재등록 제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의사면허 재등록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1~4년마다 의사면허를 갱신해야 하고, 연간 최고 50시간까지 보수교육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5년마다, 프랑스·독일·캐나다·호주도 1~3년마다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외국 경우처럼 우리나라도 의료인의 면허 재등록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겸 전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내과 교수는 2011년 ‘의료윤리와 의사의 자정 노력’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의료인의 면허를 관리하는 기구를 신설하고, 의료인은 면허를 재등록하면 된다. 면허 취득을 위한 시험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마다 등록을 새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의료계가 문제를 스스로 공개하고 자율적으로 징계하는 방안을 확보해야 한다. 의사가 나서지 않으면 언론 등 외부에서 나서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침해 논란 여지 있어 신중해야  

    전문직의 면허 재등록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이유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기도 한다. 이준상 전 한국의료법학회 회장 겸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면허 재등록 제도가 생긴다고 해도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면허를 반납하지 않겠다고 하면 강제하기 어렵다. 또 요즘은 의사가 많다 보니 견제를 위해 ‘건강상 의심이 간다’는 등의 신고로 영업을 방해하는 등 제도를 악용할 여지도 있다. 이 때문에 본인이 쉬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 면허를 반납하고 의료업을 그만두라고 강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는 의사가 많다”고 말했다.
    또 면허 재등록 심사 기준을 놓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원현 대한의사협회 홍보팀장은 “신체적으로 장애등급을 판정받았다고 의료업을 못 하게 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인권침해가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사실 거동이 불편한 의사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들 가운데 성심성의껏 진료하는 분도 많다. 이들에게 제재를 가하면 반발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심신미약 상태인 의사를 걸러내는 것은 현행 의료법만으로도 가능하다. 면허 취소 사유에 ‘정신질환’ 등 매우 명확한 근거가 있다. 신생 면허 재등록 심사에 관한 기준은 보건당국이 구성한 협의체가 총체적으로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현재 면허 재등록 제도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외국의 의사면허 재등록 제도는?▼
    미국은 주별로 면허 갱신, 캐나다는 동료평가


    미국은 각 주별 면허원(State Medical Board)에서 의사면허 취득 후 정기적(대개 2년)으로 면허 갱신을 주관한다. 이때 면허원은 무작위로 의사를 선택해 자격 적격성 여부를 확인한다. 의사들은 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의료윤리에 입각한 의료행위 여부와 건강 상태, 질병 유무, 그리고 보수교육 수료 여부 등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 텍사스 주의 의사면허 재등록 제도를 보면 의사는 2년마다 면허를 신청하고 재발급받는데 이 경우 첫째 보수교육을 24시간 받아야 하고, 둘째 법적·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하며, 셋째 연회비 납부 등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한 면허 재등록을 위해 제출해야 할 신청서에는 의료업 장소, 의료업 기관, 전문 분야, 의료행위 형태, 법적 문제의 유무, 질병 유무, 근무 형태 등 항목을 세분화해 작성하게 돼 있다.
    텍사스 주 면허원은 이를 토대로 면허 재등록을 허가한다. 면허원 위원은 총 19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12명이 의사고 나머지는 사업가, 은행원, 교사, 법학자 등 다른 직업 종사자다. 임기는 6년이며, 바뀔 때마다 주지사가 임명한 뒤 주 상원의원으로부터 인준받아야 한다. 또한 2개월마다 회의를 하고, 면허신청자 면담 등의 활동도 해야 하며,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캐나다 퀘벡 주에서는 전문직법에 따라 의사 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동료평가(peer review)를 실시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병원과 협력활동(hospital privilege)이 없는 의사, 의사사회에서 격리된 의사(professionally isolated doctor; more competence problem), 5년간 3회 이상 소원수리가 접수된 의사 등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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