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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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필요한 절제의 원칙

독불장군은 이제 그만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gmail.com

    입력2015-11-02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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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절제의 원칙

    미국 야전교범 ‘작전(OPERATIONS)’(2008).

    지휘관이 군사작전의 계획, 준비, 실시, 평가 간에 끊임없이 적용해야 하는 사고의 기준을 짧게 정리한 것을 ‘전쟁의 원칙(Principles of War)’이라고 한다. 오늘날 동서양의 대다수 군대가 이 전쟁의 원칙을 자국 야전교범에 수록하고 있다. 미국 육군 전쟁의 원칙은 목표의 원칙부터 간명의 원칙까지 모두 9가지였다. 서술 방식을 약간 바꾼 것 말고는 처음 도입한 1921년부터 지난 80여 년간 거의 변화 없이 유지됐다.

    전쟁의 원칙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08년이다. 인내, 합법성, 절제의 원칙 3가지가 추가된 것이다. 당연히 원칙 추가 문제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그중 절제의 원칙은 ‘무력의 불사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컸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 같은 비전통적 전쟁 환경과 위협 하에서 군사작전을 할 때 절제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현재는 절제의 원칙이 변화된 안보환경과 위협 속에서 미래형 군대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절제의 원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군사작전 측면에서 절제일까.

    군사작전 관점에서 절제란 ‘경계나 군사작전에서 수행되는 활동과 요망되는 최종상태(desired End State) 간 신중하고 훈련된 균형 유지’다. ‘요망되는 최종상태’란 목표 달성, 임무 완수 후에 지속되길 바라는 특정한 상태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 필요한 것

    예를 들면 이렇다. 병사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어느 지방에서 경계근무 중 의심스러운 움직임을 발견하고 총을 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이때 이 병사에게 필요한 것이 훈련된 절제다. 병사의 핵심 임무는 경계 도중 위해를 가하거나 가할 것 같은 상대에게 발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대 지휘관이 요망하는 최종상태는 주민의 마음을 얻어 이 지역에서 더는 테러리스트 지원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병사가 절제의 필요성과 요망하는 최종상태를 학습했다면 지휘관과 유사한 수준의 고민을 한 후 발포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계적으로, 평소 훈련한 대로 즉각 발포할 것이다.



    미 야전교범 ‘작전(OPERATIONS)’(2008)은 다음과 같은 수칙이 장병의 절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첫째, 과도한 부대 운용을 피하라. 이는 ‘군대다운 언행’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패기 담긴 큰 목소리, 한번 마음먹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고야 마는 집념,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군용차량과 같이 과거 전통적으로 ‘군대답다’고 여겨지던 것들 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대규모 군사작전은 통상 타국과의 연합작전으로 수행됐다. 또한 작전 현장에선 군인뿐 아니라 정부기관 관료, 민간업체 전문가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비정부기구에서 파견한 감시단이 옆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러므로 과거 같은 과도한 부대 운용, 군대다운 그 무엇은 이들과의 갈등만 증폭한다는 것이다.

    둘째, 병사들에게까지 전략적 상황을 교육시켜라. 과거의 병사, 소규모 부대의 리더는 전술적 수준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만 똑바로 하면 됐다. 지정된 구역을 감시하고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움직임이 있으면 곧장 사격을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현대 병사는 자신이 감시하는 구역의 인종적 갈등, 정치적 대립이 어떤 수준이며 자신이 쏠 총 한 발이 그러한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현대 병사의 이상적인 모델을 ‘전략적 병사(Strategic Soldier)’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셋째, 천편일률적 기준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대표적인 예가 교전규칙(Rules of Engagement)이다. 과거 이 교전규칙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계율이었다. 그와 동시에 교전규칙은 군사작전 중 실시한 특정 행동에 대한 면죄부이기도 했다. 즉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OK)였다. 그러나 현대 군사작전에서 교전규칙은 하나의 중요한 참고사항일 뿐이다. 이전처럼 절대적 기준을 제공하는 바이블이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장에서 군인과 민간인, 적과 아군의 구분이 훨씬 불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 투입된 민간전투회사 용병, 현지 민병대, 자살테러에 투입된 민간인을 생각해보자. 이런 요소들이 뒤섞인 전장에서 사전에 미리 정해놓은 교전규칙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

    조직 경쟁력의 비밀, 다양성 인정

    지금까지 살펴본 절제의 원칙은 마초적 보스십이 은연중 권장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원칙이다. 책이나 언론에선 부드럽고 세심한 리더가 필요하다 하고,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주관하는 세미나에선 권위의식을 버리라고 하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절제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까.

    첫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 잭 웰치는 저서 ‘끝없는 도전과 용기’에서 ‘당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현실을 왜곡해 해석하지 말라’고 충고한 바 있다. 자신이 가진 강점과 약점의 현주소를 명확히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리더십은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리더의 모습이나 ‘리더라면 이렇게 해야 해’라고 이미지화해놓은 허상을 좇다 보면 무리를 하게 된다. 독불장군이 되는 것이다. 리더 개인이 가진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현대 사회의 조직은 리더 한 사람의 역량에 의해 성과가 좌지우지되지 않으며, 가능하다손 쳐도 장기적으로 볼 때 그 같은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더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인정할 때 조직원들에게 임무와 권한을 위임할 수 있고, 적재적소에 우수한 인원을 배치할 수 있다. 이것이 조직 효율성이다.

    둘째, 신입직원을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실천하라. 오늘날 수많은 조직과 단체가 있지만 업무 인수인계와 진행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요구되는 현장 교육 외에 ‘실질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물론, 두꺼운 바인더 분량의 지침과 매뉴얼은 구비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월 단위로 신입직원에게 무엇을 교육할 것인지 확인하고 수준 달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곳은 많지 않다.

    6·25전쟁 이후 한국군이 단기간에 성장한 주요인은 전쟁 기간임에도 장교단을 과감하게 미국으로 보내 군사교육을 받게 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미국은 개입이 불가피한 지상작전 임무를 한국군에 조기 인계할 수 있었다. 한반도 방위 관련 부담이 줄어든 것은 물론, 후일 문제가 됐을 과도한 간섭의 여지도 사전에 상당히 제거한 것이다. 전쟁 중에도 이 같은 사례가 있었으니 시간이 없다거나 일이 바쁘다는 말은 핑계다. 시간순이든 단계순이든 일정 목표를 기준으로 한 신입직원 육성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라. 이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리더로서 부하에게 일을 맡기고 위임함으로써 불필요한 참견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확실한 대안이다.

    셋째, 다양성을 인정하라. 우리 사회에는 아직 ‘다양성’과 관련한 이슈가 극적으로 대두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 자체가 다민족, 다문화 성향을 지니고 있는 미국 기업이나 세계를 무대로 하는 다국적기업은 이 다양성 문제를 인식 또는 인정의 차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 개성, 독창성, 창의력, 독립성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것이 발현되면 제약을 가하려는 습성이 있지는 않은가. 식당에 가면 눈치 보며 메뉴를 통일하고 신입사원이 자기소개를 할 때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과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통일된 문구를 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8년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연구는 인적자원의 다양성이 조직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지으면서 장차 글로벌 시대 경쟁 우위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 같은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됐다. 그러니 조직 내에서의 다양성 인정 문제는 리더의 취향이나 신념 문제가 아니다. 다양성은 조직의 성과와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할 장점이다. 내가 보기에 신경 쓰이고 거슬려 구성원의 언행을 지적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요즘 사람들은 정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치를 주는 건 아닌지 항상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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