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0

2015.10.26

삶의 마지막 보루, 자살예방센터 24시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다”

자살위험자 전화에 응급출동 하루 평균 5회…성희롱, 살해협박 시달리는 극단의 감정노동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10-26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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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마지막 보루, 자살예방센터 24시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다”

    자살예방센터에서 한 정신보건전문요원이 자살 위기에 빠진 시민과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정모(30·여) 씨는 오늘도 우울하다. 정씨는 자살상담 경력 5년 차로 자살예방센터에서 근무한다. 자살을 막는 일을 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상담요원)는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하지만 정씨는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면 새벽 내내 ‘자살위험자’가 묘사한 자살법이 떠올라 죽고 싶어진다. ‘내가 사람을 살리는 건지, 사람을 살리려다 내가 죽는 건지 모르겠다’는 회의감마저 든다.

    자살 방지에 앞장서는 상담요원들도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이 직업을 선택한 이상 당연히 겪어야 할 고충’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남의 생명을 구하는 한편 남몰래 자신의 눈물을 닦아야 하는 사람들. 한 자살예방센터 종사자의 24시간을 취재했다.

    화를 내거나 전화를 끊을 수 없어

    오전 8시 50분, 정신건강증진센터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자살예방센터를 포함한 조직으로 전체 직원 15명. 자살예방센터 직원은 5명이다. 적은 인력이지만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도시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진다. 특히 주말엔 군·구 단위의 지역 자살예방센터가 문을 닫기 때문에 이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진다.

    지난밤 당직근무자 2명은 바로 퇴근할 수 없었다. 오전 9시 반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이 실시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관리했던 자살시도자의 사례에 대한 연구 발표였다. 교육이 끝난 후 각자 자리로 돌아와 자살예방사업 현황 및 유가족 면담 내용과 일정을 확인했다. 지역별 자살예방 캠페인 진행 상황과 성과, 지난달 사업비 지출 등을 분석하느라 시간이 빠듯하다.



    그동안에도 상담전화 벨소리는 쉬지 않고 울렸다. 하루 최소 30~40건, 많으면 50~60건까지 상담전화가 온다. 그중에서 자살 위기 상담은 절반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장난전화, 성희롱 전화다. “인터넷 검색 좀 해달라”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에서 찾아달라” “축구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고 문의하는 것은 농담으로 넘길 수 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을 경우 성(性)적 고민을 이야기하다 “아가씨가 지금 우리 집으로 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거나 전화를 먼저 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전화를 걸어 자살 시도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방법을 시도했는데 안 돼서 다른 방법을 해봤더니 그래도 살았다. 어떻게 해야 죽느냐”고 묻는 식이다. 임신한 상담요원은 이런 고민을 듣는 것이 더더욱 고통스럽다. 생명을 품고 있는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직업상 고충이다. 하지만 임신부라고 전화상담 업무가 면제되진 않는다.

    삶의 마지막 보루, 자살예방센터 24시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다”

    자살예방센터 직원들. 전화상담과 응급구조 외 각종 사업 검토로 하루 일정이 빠듯하다.

    오후 12시,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다. 하지만 24시간 전화상담과 출동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밥을 절반 정도 먹었을 때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 ○○동 ○○번지 옥상인데 출동해주세요.” 과거 몇 차례 자살시도를 했던 고교생 A(17)군이다. 숟가락을 놓고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갔다. 자살예방센터 출동 인원은 2명이다.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A군의 눈빛은 이미 정상이 아니다. 예전에 자살상담을 한 적이 있어 얼굴은 알았지만, 전보다 상태가 더욱 나빠 보였다. 초교생 때부터 성적에 대한 고민, 부모와 갈등 때문에 ‘내가 세상에 없는 것이 모두에게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다. A군은 자살을 시도하기 전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친구가 경찰에 신고해 옥상에서 막 투신하려는 A군을 붙잡을 수 있었다. 경찰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안 하던 A군이 전에 상담했던 자살예방센터 직원이 오자 고개를 들었다. “너를 알고 있다”는 말에 마음을 조금 연 느낌이었다.

    A군이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하자 경찰은 자리를 뜨려 했다.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이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이 떠나면 자살위험자가 위협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살 시도 현장에서 경찰이 자리를 뜨자마자 자살시도자가 센터 직원의 목을 조르는 위험한 상황도 벌어진 적이 있다.

    ‘내가 조금만 잘했어도 죽지 않았을 텐데’

    오후 2시, 자살예방센터로 복귀하려는 찰나 경찰의 출동 요청이 또 왔다. 집에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한 이모(42) 씨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정신건강 관련 상담이 필요하다”는 경찰의 말에 바로 출동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과 연락이 끊긴 이씨는 보호자도, 친구도 없었다. 자살고위험자로 판단돼 바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씨의 입원 수속이 끝나고 센터에 상황을 보고하자마자 또 인근에서 출동 요청이 왔다. 이렇게 출동이 3번 연속으로 이어졌다.

    자살예방센터 직원이 출동하는 이유는 자살위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다. 경찰은 자살위험자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지만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일 때 전문적으로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때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인 센터 직원이 출동해 자살위험자를 설득한다. 하지만 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20, 30대 여성이기 때문에 옆에 경찰이 없으면 자살위험자가 폭언을 퍼붓거나 살해협박을 하기도 한다. 상담요원 김모(31) 씨는 “경찰과 업무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자살위험자가 치료를 안 받겠다고 우기거나 직원에게 신변의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후 5시 반, 자살예방센터로 복귀하자 업무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루의 상담 및 출동 사례를 기록하고 병원 입원자에 대한 치료비 지원 요청서를 작성했다. 오늘 일어난 자살 시도 사례는 발생지에 따라 군·구에 있는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로 전달했다.

    점심식사가 소화될 겨를도 없었는데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당직근무자에겐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고난의 시간’이다. 밤사이 잠시도 쉴 틈 없이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출동을 나가서도 계속 전화상담을 해야 한다. 군·구에 있는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야간에 문을 닫기 때문에 당직근무자 2명이 200만 시민의 자살예방을 책임진다.

    오후 7시, 저녁을 먹고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사무실에 있다 보면 상념이 밀려온다. ‘이 일이 내게 맞는 것일까,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직장인의 고민 같지만 ‘나의 실수 하나 때문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엄청나게 큰 부담이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상담한 자살위험자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경우 그 충격은 엄청나다. 특히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던 사람이 자살을 택했을 경우 상담요원은 큰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상담요원 박모(30) 씨는 “자살위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경우 상담요원은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그 사람이 죽지 않았을 텐데’라며 괴로워하게 된다. 그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면 ‘나는 이 업무에 소질이 없다’며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20대 상담요원일수록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받는다”고 말했다.

    삶의 마지막 보루, 자살예방센터 24시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다”

    2014년 2월 서울 영등포소방서 소방대원이 마포대교 위에서 사람을 구출하고 있다(왼쪽). 2014년 7월 119특수구조단이 선유도 다리 밑에서 수난구조를 하고 있다.

    ‘업무방해’ 신고할 수 없어 답답

    고용 불안정성도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에게는 스트레스다. 계약직의 경우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불안감이 크고, 강도 높은 업무는 직원들의 이직을 부추긴다. 상담요원이자 간호사인 김모(30) 씨는 “계약직원은 1년 남짓한 고용 기간에 정규직이 되려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인건비 예산이 한정돼 있어 추가로 정규직 고용이 어려운 데다, 임금을 많이 줄 수 없어 상대적으로 경력이 적은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중반까지 여성을 계속 고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2~3년 일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젊은 여성직원이 채우고, 그들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9시가 지나자 상담전화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살시도를 하는데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상담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하자 상담요원은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어머니가 위험해진 이유가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엔 다른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통화는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상담요원은 “가끔 전화를 하는 분인데 통화 초기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밤이 되면 폭언을 퍼붓거나 자살상담과 관련 없는 전화도 많아진다. 목소리가 잠긴 상태로 전화를 받으면 “내가 죽게 생겼는데 잠이 오느냐”고 악을 쓰거나 단순 진로, 연애 고민을 늘어놓는 식이다. 매일 밤 전화해 여직원들의 목소리를 파악하고 “오늘은 ○○○ 씨가 전화를 받느냐”고 음흉한 말을 늘어놓거나 여직원 혼자 당직근무를 하는데 상담자가 살해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예방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는 발신번호가 뜨기 때문에 이러한 상습범의 전화번호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전화를 안 받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다. 상담요원 김씨는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시민을 신고할 수 없고, 관련 규정이나 법률도 전무하다”며 “다만 시민이 사무실에 침입해 난동을 부렸을 때 경찰이 접근금지 조치를 취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밤사이 당직근무자가 한두 명에 불과해 수많은 자살위험자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담요원 박씨는 “당직자가 모두 전화를 받고 있으면 그사이 걸려오는 전화는 받을 수 없다. 누군가 죽음의 고비 앞에서 우리의 도움을 기대했다 절망할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상담과 응급구조를 모두 지원하기엔 자살예방센터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신 목격 후 악몽 꾸기도

    자정이 되자 잠이 밀려왔다. 사무실 한쪽에 침대가 있지만 취침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컵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다. 라면을 먹는 도중 상담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장난전화가 아닌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돼 경찰을 부르고 출동에 나섰다. 알코올 중독자 박모(63) 씨였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박씨는 이미 깨진 소주병으로 손목을 몇 차례 그은 뒤였다. 병원에 데려가 응급조치를 했다.

    상담요원 박씨는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 구조해서 천만다행”이라며 “상담요원들이 출동했는데 시신을 발견하면 정말 괴롭다. 시신을 목격한 현장이 잊히지 않아 악몽을 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후 노인 자살시도 현장 출동이 한 건 더 있었다. 박씨는 “하루에 5건이면 평균”이라면서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는 10번이나 출동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상담요원들은 사회복지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자격증을 갖춘 전문직업인이다. 이들은 “직업 자체가 남을 돌보는 일이다 보니 우리 직업의 고충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상담요원 김씨는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은 ‘최악의 감정노동자’”라며 “종사자는 대부분 20, 30대로 업무 중 겪는 정신적 충격에 약하다. 우리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판인데 직업의식이 약하다는 비판을 들을까 봐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기 안위보다 자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담요원 박씨는 “생명을 구할 때는 보람도 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힘든 형편에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 자살위험자도 줄어들고 세상도 살기 좋아지겠지”라고 말했다. 박씨가 고개를 젖히며 졸린 눈을 처음으로 감았다. 어느새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사람 구하려다 물에 빠져 죽기도…119 소방·수난구조대원

    길이 500km 넘는 한강에 수난구조대 단 3곳뿐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면 응급구조 인력이 달려간다. 119 소방대원은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강에 몸을 던지거나 불을 피워 자살을 시도한 현장에는 어김없이 119 소방대원들이 나타난다. 특히 최근에는 서울 마포대교가 자살 시도 건수가 가장 많은 장소로 꼽히면서 이곳을 관할하는 소방대원들도 바빠졌다.

    서울 영등포소방서는 마포대교, 성산대교, 원효대교 등 ‘다리 위 안전’을 책임진다. 다리 위에서 누군가 몸을 던지려 하면 달려가 막는 것이다. 만약 강으로 몸을 던지게 되면 수난구조대가 배를 타고 사람을 구출한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에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먼저 한강 수난구조대의 경우 서울 광진·반포·여의도 등 3곳에 설치돼 있다. 강동대교에서 신행주대교까지 41.5km 구간의 응급 수난구조는 3곳이 전부 책임진다. 생명을 구하는 ‘골든타임’이 5분인데 그 시간 내 도착해 구조하기란 쉽지 않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겨울에는 잠수 장비가 얼기 때문에 강 속으로 바로 잠수할 수 없다.

    구조선 사고로 대원들이 목숨을 잃는 일도 있다. 서형근(51) 119특수구조단 여의도수난구조대장은 “한강 주변에 산업폐기물이 꽤 많다. 그것에 걸려 배가 전복돼 구출활동은커녕 대원들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2010년에도 구조대원 2명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서 대장은 “2014년에만 1400건 넘게 출동했다. 자살이 늘어가는 상황인 만큼 구조대원들이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소방대원들도 “인력이 부족해 갈수록 일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남기범(52) 영등포소방서 소방대원은 “소방서가 조당 7인, 총 3조 21인 체제로 운영된다. 중고교 수학여행에 소방대원 2명이 의무 동반하는 규정 때문에 인원이 그만큼 줄면 집에서 쉬고 있는 대원들이 나와서 일한다. 최선을 다해 구조하려고 하지만 늘 휴식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같은 소방서에서 일하는 이규민(30) 소방대원도 “구조하려는 순간 한강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도 보고, 사람 몸이 얼마나 끔찍하게 변할 수 있는지 매일 실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에서 스스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택한 직업이니까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하지만 수시로 생각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우리 같은 직업인이 좀 더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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