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8

2015.10.12

청년의 육체 소년의 눈빛 유아인

대배우들과 시너지 효과 발휘하며 성장…단독 주연 없어, 홀로서기 성공해야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10-12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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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의 육체 소년의 눈빛 유아인

    영화 ‘베테랑’ ‘완득이’ ‘사도’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존재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 유아인(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소년이 배우가 됐다. 영화 ‘베테랑’과 ‘사도’에서 유아인은 완전히 대조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정말 마약 중독자인 것은 아닐까 싶던, 진짜 도덕성이 마비된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했던 재벌 3세(조태오)의 파렴치가 울분과 광기, 우울과 초조로 뒤범벅된 어린-어른 사도의 모습으로 바뀌기까지 관객으로서는 거의 체감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동시에 두 개의 다른 유아인이, 시간도 공간도 다른 곳의 유아인이 스크린에서 연기를 보여줬는데 관객들은 의아해하거나 낯설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엔 유아인이 아니라 조태오와 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백 년의 시간적 장애를 훌쩍 뛰어넘어 배우로 각인되는 남자, 유아인. 말하자면 그는 이제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배우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고백하자면 배우 유아인을 주목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본 기억이 언제일까. 아니, 기억에 남는 첫 작품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니 꽃미남이 잔뜩 출연했던 2008년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므로 대중적 기억을 소환해보자면, 많은 사람에게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기억을 남긴 것은 바로 2010년 KBS 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나 ‘성균관 스캔들’은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오롯한 존재감보다 여러 꽃미남이 어우러진 시너지가 더 주목받는 작품이었다. 마치 아이돌그룹이 인기를 끌듯 유아인 역시 동년배의 여러 젊은 배우와 함께 연상되고 기억됐다. 얼굴을 알려야 하는 연예인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배우로서는 아쉬운 대목이었을 것이다.

    순진한 열망과 순수한 욕정 사이

    유아인을 배우답게 인식하게 한 작품은 2011년 영화 ‘완득이’였다. 김서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완득이’에서 유아인은 완득이로 출연했다. 소설의 구심점이 다문화가정에서 복서를 꿈꾸며 자라는 완득이라는 청소년이었던 데 비해 영화에서는 무게중심이 나뉘었다. 담임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과 관심을 나눠 가진 것이다. 유아인이 이 영화에서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오랜만에 힘을 뺀 연기를 보여준 김윤석의 변화에도 눈길이 갔다.

    흥미로운 점은 배우 유아인이 배우로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 만만치 않은 내공과 개성을 지닌 큰 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설 때라는 사실이다. ‘완득이’에서 유아인은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연기로 김윤석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이 시너지 효과는 지난해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밀회’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로맨스, 즉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밀회’ 속 유아인은 리딩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두 배우가 일대일로 마주 서서 서로 다른 구심점을 가져야만 로맨스가 단단해지고 이야기가 긴밀해지기 때문이다.



    단정하지만 옥죄는 듯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혜원(김희애 분)과 달리 유아인이 연기한 선재는 모든 것이 적당히 풀어지고 매듭지어지지 않은 인물이다. 입는 옷에서부터 사는 곳까지 혜원과 선재는 완전히 대조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조금은 멍하니 초점을 놓은 듯한 유아인의 눈빛은 그런 선재의 자유를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뻔하고 속된 불륜 서사가 새롭게 거듭난 까닭도 여기 있다. 선재는 무언가를 바라서 일탈에 빠지는 인물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인물로 그려졌다. 바로 유아인에 의해서 말이다.

    ‘밀회’는 ‘완득이’ 이후 거의 굳어져가던 청소년 유아인과의 결별을 알리는 작품으로 그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영화 ‘깡철이’로 돌아왔을 때 우려가 컸던 이유도 여기 있다. 완득이와 이 작품의 유사성은 세 글자 이름 제목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미래에 대한 낙천적 기대를 버리지 않는, 게다가 따뜻하고 예의 바른 아들 이미지는 이미 ‘완득이’에서 충분히 보여준 유아인이었다. 다시 한 번 그런 유아인을 스크린에서 만났을 때 관객 반응은 무척 싸늘했다.

    그런 점에서 ‘밀회’는 유아인의 소년성을 남자의 육체성으로 전환하기에 알맞은 과도기적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순진한 열망과 순수한 욕정, 유아인은 아직은 어려 보이는 외모에 불륜이라는 ‘어른끼리의’ 사건을 곁들여 드디어 어른 세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소년 남자의 양가적 매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유아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선 언제나 소년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가령 천하의 파렴치한을 연기한 ‘베테랑’의 조태오만 해도 그렇다. 조태오는 막강한 재력과 대단한 권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시대 ‘왕’처럼 군림한다. 하지만 뜯어보면 그 왕노릇은 철부지 아이가 제멋대로 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약에 중독돼 쩔쩔맨다거나 자기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거짓 존경이라도 받고자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사춘기 이전, 자아가 발달하지 못한 아이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몸은 이미 건장한 어른이라 격투기 수련까지 할 정도지만 하는 짓이나 정신을 보자면 철부지, 고집쟁이 아이에 불과하다. 유아인은 그 이율배반적인 철부지를 매우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사도’의 사도세자 역시 다르지 않다. 이미 왕좌에 올라도 될 만큼 장성했지만 의복 입기를 두려워하고, 아버지 목소리에 떠는 사도는 영락없는 아이다. 몸은 컸고 아내와 아들까지 둔 어른이지만,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어찌할 줄 모르는 아이일 뿐이다. 활을 쏘며 당당한 삶을 추구하지만 상처와 두려움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불안한 영혼의 아이, 그런 아이를 유아인이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배우 하정우가 남성적인 이미지로 충만하다면 유아인의 매력은 이 애매성과 양가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른처럼 섹시하면서도 아이처럼 순수하고, 폭력적이면서도 연약하다. 그리고 이러한 유아인의 양가적 매력은 단단한 상대 배우를 만나면 훨씬 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조태오에겐 서도철(황정민 분)이 필요하고 사도에겐 영조(송강호 분)가 필요하다. 즉 유아인이 유아인으로 빛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황정민과 송강호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배우 유아인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될 만하다. 유아인은 아직 단독 주연으로 선보인 적도, 성공한 적도 없다. ‘올드보이’ 최민식이나 ‘살인의 추억’ 송강호처럼 다른 누군가의 짝이 아니라 그 자신으로 오롯이 서서 성공한 작품은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배우 유아인의 가능성이 배우 유아인의 색깔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유아인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30대 배우로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을 기대할 만하다. 유아인이 있기에, 유아인을 완성해주는 그런 배역,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감을 높이는 것은 아마도 늘 언제나 더 좋은 연기로 나아갔던 지난 시간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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