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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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생존 무전사망의 잔인한 진실

1년 치 약값 1억여 원 초고가 의약품 급증, 건보 지원이 정답일까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5-10-05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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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생존 무전사망의 잔인한 진실

    2008년 10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공급을 거부하는 제약사 로슈 건물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특발성폐섬유화증 치료제 ‘피레스파’의 건강보험급여를 요구하는 민원이 다수 올라와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인터넷 홈페이지.

    ‘폐가 굳어진다는 무서운 병 폐섬유증. 더는 진행을 막아주는 약이 있다는데, 돈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 살려주세요. 희귀난치병 국가 지원 신문에서 봤는데 왜 피레스파는 예외인가요? 우리도 살고 싶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인터넷 홈페이지 민원방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피레스파’는 일본 시오노기제약이 개발한 특발성폐섬유화증 치료제다. 2012년 국내 판매가 허가됐지만 하루 약값이 3만5580원, 1년 치는 1295만 원에 달해 논란이 일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은 2007년부터 의학적, 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만 골라 건강보험급여 대상으로 삼는 선별등재제도를 운영 중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는 목적에서다. 특정 약품이 건강보험급여 대상이 되면 환자는 약값의 5%만 낸다. 반면 비급여 약값은 전액 환자 몫이다. 피레스파는 비용효과성 등을 검토하는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평가위) 심사에서 두 차례 떨어졌고, 그 결과 투약 비용을 환자가 고스란히 부담하게 됐다. 환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치료약이 있는데 돈이 없어 죽게 생겼다’는 불만이 나온 이유다. 폐섬유화증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난해 12월 피레스파의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고, 심평원 홈페이지에도 줄줄이 민원을 올렸다. 이 약은 이후 7월 평가위를 통과한 상태. 10월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치면 건강보험급여가 시작될 전망이다.

    글로벌제약사들 신약 개발 총력전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잴코리’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잴코리는 2012년 국내 판매가 시작된 뒤 변변한 치료제가 없던 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약’으로 불렸다. 문제는 한 알에 16만7500원, 한 해 1억2000만 원에 이르는 약값. 잴코리가 두 차례 건강보험급여 평가 심사에서 탈락하자 피레스파와 마찬가지로 ‘살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고, 이 약은 5월부터 급여가 시작됐다. 현재는 잴코리를 2차 치료제로 사용하는 환자의 경우 한 달 37만 원만 내면 약을 복용할 수 있다.



    피레스파와 잴코리만이 아니다. 최근 △가격이 비싸고 △적용 환자가 많지 않으며 △비용효과성에 논란이 있는 약품에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할 것인지를 놓고 유사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심평원은 해당 약품 등재에 소극적인 반면, 환자단체 등에서는 생명권을 주장하며 급여를 강력히 요구한다.

    눈에 띄는 것은 요즘 글로벌제약사들이 바로 이 분야의 약을 개발하는 데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의 경우 상대적으로 환자의 절박함이 적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되는 질병은 일단 치료약이 나오면 효과가 확실하지 않아도 수요가 발생하고,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판매가 보장되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인체의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특정 암종에만 작용해 항암치료 부작용을 줄인 표적항암제가 대표적 사례다.

    심평원에 따르면 2001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건강보험급여 대상이 된 표적항암제는 20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저렴한 로슈사의 유방암·위암 치료제 ‘허셉틴’의 경우 한 달 약값이 128만2293원이다. 연간 1500만 원이 넘는 셈이다. 한 달 복약비가 441만224원에 이르는 화이자의 신장암 치료제 ‘수텐’처럼 약값이 매달 300만 원 이상인 약도 현재 7종이 건강보험급여 대상에 포함돼 있다. 환자는 이 가운데 5%를, 나머지는 건보공단이 각각 부담하는 방식이다. 신현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이에 대해 “제약 기술이 발달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국민 건강보장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모두 약제비 급증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1980년대 말 전 국민 건강보험시스템을 구축한 우리나라의 경우 이 고민이 더욱 크다. 보험 재정을 유지하면서 국민 생명권을 지키고 가입자 간 형평성까지 보장할 방법을 찾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대 교수는 “고가 신약에까지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되면 그 여파로 다른 질환에 대한 지원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항암제 신약 급여에 1억 원이 추가로 투입되면 천식환자 1000명이 손해를 보는 식”이라며 “현재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정책’을 펴면서 고가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을 사실상 특별대우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4대 중증질환은 암, 심장병, 뇌질환, 희귀난치성질환을 일컫는 용어. 이들 질환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것은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의 핵심 공약이었다. 이에 따라 4대 중증질환자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면서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셈이다.

    비용 대비 효능 논란

    고가 치료제의 효능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표적항암제의 경우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생존기간을 수주~수개월 연장한다는 결과를 냈다. 약값을 감안하면 효과에 의문이 생길 수 있는 수준이다. 잴코리도 폐암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환자 생명을 평균 8개월 늘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원 고려대 의대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이에 대해 “생명이 단 하루 연장될지라도 새로운 항암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해당 약의 건강보험급여를 요구하는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치료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가 항암제 투여로 환자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고 공공재정도 손실되는 일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 교수는 “때로는 완화의료를 통해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면서 좀 더 평화로운 죽음을 맞도록 돕는 게 올바른 의학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결정을 치료 실패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고가 치료제가 계속 쏟아져 나올 게 분명한 상황에서, 이제는 개별 약을 건강보험급여 대상으로 삼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차원을 넘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부회장은 다른 이유에서 정부가 고가 신약의 건강보험급여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효용성이 불분명한 약제에 공공재정을 투입하는 건 글로벌제약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황 부회장은 “일부 글로벌제약사의 경우 우리나라 약가를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환자들을 내세워 건강보험급여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문제”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많은 나라가 의약품 리베이트를 인정한다. 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약값이 해당 약품의 진짜 가격이 아닌 경우가 많다. 글로벌제약사가 이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약값을 책정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초과 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 황 부회장은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정부가 약품의 효용성을 꼼꼼히 따지고, 제조사와 협상을 통해 약값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부에 ‘보수적 자세’를 주문했다. “막 출시돼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약을 급여 대상으로 삼는 건 진정 환자를 위하는 길이 아닐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 교수는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정말 그 약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한 뒤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치료제가 개발, 판매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재정 지원을 주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박도 나온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약품의 비용 대비 효과는 일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한 폐암 환자의 경우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잴코리를 먹은 뒤 사흘 만에 퇴원했고, 곧 아이들과 소풍을 갔다”고 했다.

    협상력 없는 정부, 당당한 제약사

    유전생존 무전사망의 잔인한 진실

    2001년 7월 제약회사 한국 노바티스 건물 앞에서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의 가격인하를 요구하며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적을 바라는 암환자들에게 이런 사례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런데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잴코리가 건강보험급여 심사에서 연달아 탈락하고, 많은 환자가 돈이 없어 이 약을 먹지 못하게 됐으니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내온 사람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안 대표의 얘기다. 그는 “생명과 직결되는 약이 개발되면 정부는 최대한 빨리 환자가 그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대학병원의 종양내과 전문의는 “개인적으로는 생명 연장 효과가 3개월 미만일 경우 굳이 고가 치료제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환자들 앞에서 이런 의견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며 “이 문제는 안락사처럼 철학적, 사회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고가 치료약에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해도 과제는 남는다.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제약사와 약값 협상을 통해 좋은 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고가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의 경우 대부분 국가 경계를 넘어선 글로벌기업으로, 정부의 협상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특정 약품의 건강보험급여 등재를 놓고 논란이 시작된 건 2001년 글리벡 도입 때부터. 하루에 6알씩 먹어야 하는 글리벡의 한 알 가격은 당시 2만5000원으로, 한 달 약값이 450만 원에 달했다. 정부는 해당 약값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보전해주면서 개당 가격을 1만7862원으로 조정하려 했지만, 제조사 노바티스는 약품 공급을 거부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또 다른 글로벌제약사 로슈도 우리 정부와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건강보험급여 등재 가격을 협상하다 약품 공급을 거부해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약품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적이 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약이 필요한 환자에게 돌아갔다. 국민의 목숨을 걸고 벌이는 담판에서 정부가 힘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특정 제약사가 고가 필수 의약품 공급을 거부할 경우 특허법의 ‘강제실시’ 규정을 이용해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의약품을 제조하자고 주장한다. 특허법 제106조의 2는 ‘정부는 특허 발명이 국가 비상사태, 극도의 긴급상황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비상업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 특허 발명을 실시하거나 정부 외의 자에게 실시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통상마찰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정부의 낮은 협상력과 의약품 수급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공공제약사 설립을 제안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2013년 연구보고서 ‘의약품 생산 및 공공성 강화방안’에서 △공공제약사가 저렴한 의약품(제네릭)을 생산할 경우 민간제약사를 자극할 수 있지만 공공제약사에서 생산한 제네릭의 가격이 반드시 민간제약사보다 저렴하리란 보장이 없고 △공공제약사에서 고가 희귀 필수 의약품을 생산 및 공급하면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통상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한계로 지적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도 “공공제약사가 만드는 의약품은 대상 환자 수가 매우 적은 고가 희귀 필수 의약품이거나, 개당 가격이 매우 낮아 꼭 필요하지만 제약사들이 생산을 외면하는 저가 의약품일 텐데, 그 제품들만 생산해서는 적자를 면할 수 없다”며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라고 말했다.

    위험 분담 등 대안 모색해야

    이런 상황에서 2013년 도입된 위험분담계약제는 공공재정 부담을 줄이면서 고가 신약을 건강보험급여 대상에 포함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제도는 약품의 안전성은 검증됐지만 비용 대비 효과 등은 입증되지 않은 약에 먼저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하고, 그 대신 제약사가 건보공단에 판매 금액의 일부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담’하는 계약을 뜻한다. 예를 들어 매출이 100만 원 이상 발생할 경우 차액을 건보공단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게 가능하다. 이 경우 제약사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 아래 신약을 좀 더 많은 환자에게 선보일 수 있고,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일정 부분 보전할 수 있으며, 환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신약을 복용할 수 있다.

    2013년 사노피사의 소아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 ‘에볼트라’가 처음 위험분담계약을 맺고 건강보험급여 대상이 됐으며, 이후 세엘진사의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 머크사의 전이성직결장암 치료제 ‘얼비툭스’, 아스텔라스사의 거세저항성전립샘암 치료제 ‘엑스탄디’, 그리고 잴코리 등의 표적항암제가 이 제도를 이용했다. 얼비툭스는 2004년 허가 후 10년, 레블리미드는 2009년 허가 후 5년 만에 각각 건강보험급여 대상이 된 것이다. 피레스파 역시 환급형 위험분담계약을 맺은 상태다. 허대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10개국의 건강보험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고가 항암제 건강보험급여 정책이 일관성과 투명성 면에서 매우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된 상황에서 왜 어떤 의약품은 급여 대상이 되고 다른 의약품은 안 되는지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밝히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25명 가운데 의료 전문가가 2~3명에 불과하고, 이들이 소비자·농어업인·자영업자 등 다른 위원들과 어떤 논의를 거쳐 급여 여부를 결정했는지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강보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고가 약제 급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의 해법을 찾으려면 이제라도 원칙과 철학을 세우고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게 허 교수의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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