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獨 메르켈과 美 트럼프갈등의 진짜 이유

독 - 러 천연가스 파이프로 대립, F-35로 화해할 수도

  • 입력2018-07-2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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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NATO 정상회의 중 별도로 회담하고 있다. [독일총리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NATO 정상회의 중 별도로 회담하고 있다. [독일총리실]

    발트해에선 요즘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2’로 명명된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우스트루가에서부터 발트해 해저를 거쳐 독일 북부 그라이프스발트까지 1225km에 달하는데, 내년 여름 완공될 예정이다(지도 참조). 950억 유로(약 125조2700억 원)나 되는 공사비 중 절반은 러시아 최대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이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파이프라인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독일 빈터셸과 유니페르, 오스트리아 OMV,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사 로열더치셸, 프랑스 엔지 등 5개사가 각각 10분의 1인 95억 유로씩 부담한다. 

    이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러시아가 독일로 직송(直送)하는 천연가스 분량이 2배로 늘어난다. 2012년 먼저 완공돼 가동 중인 1222km 길이의 ‘노르트 스트림1’을 통해 연간 550억㎥의 천연가스를 운반 중인데, 노르트 스트림2의 수송량도 연간 550억㎥이다.

    러시아의 새로운 하이브리드 무기

    노르트 스트림2 노선도(왼쪽)와 노르트 스트림2 노선에 설치될 천연가스 운반용 파이프. [스푸트니크 뉴스]

    노르트 스트림2 노선도(왼쪽)와 노르트 스트림2 노선에 설치될 천연가스 운반용 파이프. [스푸트니크 뉴스]

    독일 정부가 러시아와 파이프라인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는 2022년까지 총 17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 소비의 6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50년까지 모두 재생에너지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지금도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노르트 스트림2가 완공될 경우 독일은 천연가스 수요의 7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게 된다. 독일 정부는 노르트 스트림2 건설을 통해 에너지 가격을 낮출 뿐 아니라 공급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 정부는 또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에도 가스를 재수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은 노르트 스트림2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노르트 스트림2가 완공되면 러시아가 자국을 거쳐 가스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을 조절해 자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디터 헬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파이프라인은 현재 러시아의 유럽 천연가스 수출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독일로 직송하는 파이프라인을 사용하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은 자칫 러시아의 에너지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2006년과 2009년 가스대금을 놓고 마찰을 빚은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 각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시 사태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한 대표적 사례였다. 러시아는 2014년에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가스를 통제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노르트 스트림2는 러시아의 새로운 하이브리드 무기”라며 “러시아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을 견제하기 위해 이 파이프라인을 악용할 속셈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독일 등 서유럽 국가와 가스 직거래를 하게 됨에 따라 NATO와 EU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EU 28개 회원국은 지금도 매년 가스 수요의 2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 슬로바키아 등 7개국은 가스 수요 100%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7월 11일 NATO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과 조찬회담을 갖고 “독일이 러시아에서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어 러시아 포로가 됐다”며 노르트 스트림2 건설을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미국의 안보 능력에 무임승차하며 미국과 유럽에게 위협이 되는 러시아 측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면서 “독일은 총체적으로 러시아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 정상회의에서도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증액하는 문제를 놓고 독일을 가장 많이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는 옛 소련의 통제를 받았던 동독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며 “오늘날 통일독일에선 독립적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또 결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독일은 2024년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올리기로 한 합의를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이유는 무엇보다 EU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유럽이 에너지 안보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자칫 유럽이 에너지라는 ‘인질’로 인해 미국 대신 러시아를 편들 수 있어서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산 셰일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셰일가스를 대대적으로 판매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량이 지난해에 비해 4배 이상 급증하고 수출국가도 28개국으로 크게 늘었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미국산 LNG를 수입하고 있으며 다른 유럽 국가도 구매 의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값싼 러시아산 가스가 노르트 스트림2를 통해 독일로 들어간다면 장거리 운송비 때문에 가격이 비싼 미국산 LNG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로파이터냐, F-35냐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와 독일 정부에 방위비 지출 증대 및 대미 무역적자 축소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최신예 전투기 F-35를 구매하게 하려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독일 정부는 2025년부터 퇴역하는 토네이도 전투기 대신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결정할 계획이다. F-35 제작업체인 미국 록히드와 유로파이터 생산 컨소시엄 업체인 에어버스가 수십억 유로(약 수조 원)로 예상되는 독일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따내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유로파이터를 선호하고 있지만, 독일 공군은 F-35A가 더 낫다는 의견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과 유럽의 항공방위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유로파이터를 선택해야 하지만, 미국산 전투기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메르켈 총리로선 미국이 독일에 제공하는 ‘핵우산’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이 없는 NATO 회원국은 자국에 배치된 미 핵무기를 전투기에 탑재하는, 이른바 ‘핵 공유’를 해왔다. 그런데 유로파이터는 핵무기 탑재에 대한 미국 측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F-35 경쟁 기종인 유로파이터에 인증을 해주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관계는 주요 7개국(G7)과 NATO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정책에서도 보호무역과 자유무역, 반난민과 친난민, 기후변화협약 반대와 찬성 등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 독의 안보협력은 불편한 양국관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독일 외교관계위원회의 크리스티안 묄링 조사연구소 부소장은 메르켈 총리가 F-35를 구매하기로 결정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의를 보이는 제스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가 과연 화해의 손을 내밀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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