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5

2018.04.25

국제

트럼프 VS 푸틴 파워게임 개봉박두

냉전 종식 이후 미·러 최악의 관계, 시리아 사태가 불쏘시개

  • 입력2018-04-24 13: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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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하는 모습. [러시아 크렘린궁 온라인 사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하는 모습. [러시아 크렘린궁 온라인 사이트]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를 놓고 치열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와 함께 4월 14일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시설을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과 전투기 등으로 공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공습 사실을 밝히고 러시아 측에 의미심장한 경고 메시지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원해온 러시아를 겨냥해 “러시아가 앞으로 어두운 길을 계속 갈지, 평화를 지지하는 세력으로서 문명화된 국가에 합류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연설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3년 옛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지칭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군에 화학무기 공격을 자행한 알아사드 대통령과 시리아 정부를 비호해온 러시아를 ‘악의 제국’으로 간주한 것이다. 

    러시아도 강력하게 반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 행위”라면서 “미국의 군사 행동으로 시리아의 인도적 재앙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미국을 ‘무법자’라고 지칭한 것과 마찬가지다. 냉전 시절 소련이 미국을 비난할 때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다.

    ‘악의 제국’과 ‘무법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시리아 내 흐메이님 러시아 공군기지에서 양국 군을 사열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 온라인 사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시리아 내 흐메이님 러시아 공군기지에서 양국 군을 사열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 온라인 사이트]

    양국은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거친 외교전까지 벌였다.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한 증거가 없다면서 유엔 안보리에 미국 등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지금까지 양국은 유엔 안보리에 상정된 시리아 사태 결의안들에 대한 거부권을 경쟁적으로 행사해왔다. 냉전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유엔 무대에서 종종 연출됐다. 양국은 냉전시대처럼 군사행동에 대한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번 시리아 공습을 러시아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시리아 정부군에 제공한 자국의 방공 시스템이 미국 미사일을 요격했다고 자랑했다. 

    양국 간 대결은 또한 냉전시대처럼 지정학적으로 우군을 끌어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동지역의 경우 러시아는 시리아, 이란,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등과 연대 중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온건 아랍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러시아는 중국, 북한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즉 중국과는 군사 및 에너지 분야에서 사실상 동맹처럼 밀월관계를 맺고, 북한과는 교류 및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심지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도 러시아는 북한과 석탄, 석유 등을 밀거래 중이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북제재 준수를 압박하지만, 러시아는 북한과 교역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반박한다. 미국이 일본을 비롯해 한국, 대만 등과 군사협력 및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실제로 화학무기 시설을 제한적으로 타격한 시리아 공습 작전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거론되던,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의미하는 ‘코피 터뜨리기 작전’과 비슷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진정성 있게 밝히지 않거나 합의를 거부한다면 대북 군사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그동안 시리아와 화학무기는 물론, 미사일 분야에서도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게 시리아처럼 무력으로 응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또 알아사드 대통령과 시리아를 비호해온 러시아가 북한의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발트 3국, 폴란드 놓고도 티격태격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이미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3월 영국 거주 전직 러시아 스파이의 암살 기도 사건과 외교관 상호 추방, 최신예 핵무기 개발 등으로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게다가 시리아 사태는 양국의 충돌 가능성에 ‘불쏘시개’ 구실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옛 소련이 1983년 러시아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를 격추한 사건 이후 미국과 러시아가 이처럼 갈등 및 대립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4월 16일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냉전시대에는 그 나름의 규칙과 준수된 품위가 있었고 연락 채널도 존재했지만 지금 같은 반(反)러시아 강박증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양국은 발트 3국과 폴란드를 놓고도 티격태격하고 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보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발트 3국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하고자 군사행동도 감행할 수 있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발트 3국 정상들은 4월 3일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패트리엇-3 요격미사일을 더 많이 순환 배치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리투아니아에 패트리엇-3 요격미사일 1개 포대를 배치 중이고, 라트비아에 육군 제1기병사단 일부를 주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트 3국 정상들에게 안보 협력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폴란드도 러시아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미국으로부터 47억5000만 달러(약 5조 원) 규모의 패트리엇-3 개량형(MSE) 8개 포대를 구매하기로 했다. 옛 소련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폴란드는 미국과 군사협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러시아는 미국과 발트 3국, 폴란드의 군사협력 강화에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 해군은 4월 4~6일 함정들을 대거 동원해 발트해역에서 미사일 및 포격 훈련을 실시했다. 냉전 종식 이후 서방 측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벌인 훈련이었다. 

    시리아 사태처럼 지정학적으로 양국 이익이 충돌할 경우 힘으로 대결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발트 3국과 폴란드, 북한 등이 양국 간 갈등이 폭발하는 ‘제2의 시리아’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에는 푸틴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맺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선 이후 러시아와 유착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를 의식한 탓인지 러시아를 상대로 강경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도 집권 4기를 맞아 강력한 통치력을 보여주고자 미국에 단호히 맞서고 있다. 두 지도자의 대결이 양국 간 신냉전구도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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