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5

2018.04.25

사회

“출근 힘들어? 안 해도 돼”

자율근무제·절대평가로 ‘워라밸’ 누리는 MS 직원들

  • 입력2018-04-24 13:40:0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각 층마다 카페테리아가 있어 직원들이 오가다 만나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동아DB]

    각 층마다 카페테리아가 있어 직원들이 오가다 만나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동아DB]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재택근무를 해요. 매니저(팀장)에게 전날 e메일을 보내거나 급하면 당일 오전에 전화로 요청하죠. 눈치 안 보이느냐고요?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박현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마케팅앤드오퍼레이션 부장) 

    4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종로1길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사무실. 다른 회사라면 ‘집중 근무시간’이라는 명목 아래 직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법도 했지만 MS에는 빈자리가 대부분이었다. 

    그 많은 임직원은 다 어디에 있을까. 외근, 미팅은 당연한 얘기. 박 부장처럼 집에서 근무하거나, 집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아직 출근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출근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근무를 하니 사무실도 ‘썰렁’하다. 

    MS에는 지정 좌석이 없다. 출근하면 아무 데나 앉는다. 근태 확인이 어렵겠다고? MS는 근태 확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일하든 결과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주 52시간 시대.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임직원의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는 보장됐지만 기업 처지에서는 짧아진 근로시간 동안 더 높은 효율을 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야만 최소한 생산성 하락은 방어할 수 있다. 



    자율근무 도입은 임직원의 워라밸을 도우면서도 생산성 하락을 방어하는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자율근무 도입으로 임직원의 근무 만족도를 높임과 동시에 생산성을 끌어올린 MS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자율근무, 인사제도 개편에서 시작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직원들은 자율근무제로 편할 때 출근해 아무 데나 앉아서 일하면 된다.(왼쪽) 자율근무제 도입 전 바두판식 배열의 사무실 내부 모습. 현재는 유연한 동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동아DB]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직원들은 자율근무제로 편할 때 출근해 아무 데나 앉아서 일하면 된다.(왼쪽) 자율근무제 도입 전 바두판식 배열의 사무실 내부 모습. 현재는 유연한 동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동아DB]

    MS의 근무 방식은 하루아침에 정착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으리라는 ‘신뢰’ 문화가 필수다. 경영진이 직원들을 믿어야 한다는 말, 참 쉽다. 문제는 실행이다. 사내에 신뢰문화를 정착시키고자 MS는 2013년 11월 한국을 포함한 모든 글로벌 오피스의 ‘인사평가제도’를 개편한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거 상대평가제도(Stack Ranking·스택랭킹)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스택랭킹은 관리자가 구성원을 5등급 평점 시스템(1등급이 최고점수)을 기반으로 삼아 이른바 ‘종형 곡선’으로 분류하게 했다. 평가자들에게 평가지에 ‘전년 대비 판매 ◯ ◯% 초과 달성’ ‘전 분기 대비 ◯ ◯% 성과’ 등 숫자 중심으로 기입하게 한 뒤 관리자는 정해진 등급별 비율에 따라 성적을 매겼다. 소수는 1등급을, 또 다른 소수는 5등급을 주는 식이다. 점수가 높으면 높은 성과급을 받지만 반대의 경우는 적게 받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 모두가 일을 잘하는 조직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구성원들은 성과가 좋은 이른바 ‘스타 직원’과 일하는 것을 꺼리기까지 했다. 

    특히 이 제도에서는 여러 부서 관리자가 모여 부하 직원들의 최종 등급을 매겼다. 다른 부서 직원들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가해야만 해 결국 말 주변 없는 관리자를 둔 직원은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는 등 급기야 사내정치가 팀워크를 대체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글로벌 MS 오피스 직원들이 한데 모여 미팅했을 때 일이다. 한 사람이 발표를 마쳤는데 다른 한 사람이 ‘잘 들었다’고 운을 떼면서 USB 저장장치를 꽂으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지니어스(천재) 문화’가 만연했던 것이다. 반대로 표현하면 조직에서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은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다.”(한국 MS 한 직원) 

    MS는 강력한 성과는 구성원 혼자서만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절대평가제도(임팩트 평가·Impact Assessment)로 바꾼다. 숫자 중심의 ‘성과’가 아닌 추상적 의미의 ‘영향력’으로 인사평가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MS는 추상적인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커넥트’ 제도를 만든다. 커넥트는 직원이 자신의 성과와 비즈니스 영향 등에 대해 관리자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미팅 자리로, 연 2회 이상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관리자는 미팅 전 평가자와 협업을 수행한 팀 구성원, 다른 부서 동료 및 관리자 등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당 직원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한다. 대체로 평가자와 최근 몇 개월간 함께 일했던 동료 3~4명이 대상자가 된다. 

    피드백 질문지에는 ‘이 사람은 팀, 비즈니스 또는 고객 결과에 기여하는 주요 업적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업무, 아이디어 또는 경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기여도를 향상시킵니다’ ‘이 사람은 팀 및 회사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타인의 성공에 효과적으로 기여합니다’ 등으로 구성되며 객관식(5점 만점)으로 기재하게 돼 있다. 이 밖에 기타 주관식(개방형 질문)도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평가자도 관리자와 미팅하기 전 평가지를 작성한다. ‘좀 더 나은 비즈니스 영향을 달성하기 위해 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다가올 시기에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귀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을 서술하는 식이다. 이처럼 ‘나만의 성과’가 아닌 ‘우리의 성과’를 성과지표로 삼고,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인센티브 지급 요건이 되니 자연스럽게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태희 한국 MS 정책·협력·법무실 상무는 “(과거) 조직문화와 인사 시스템은 기업 내부에 심각한 갈등이나 비효율을 야기했다”며 “최근 수년에 걸쳐 진행된 조직문화 혁신과 성과 관리 시스템의 체계화로 분야별 최고 기술과 재능을 지닌 인재들이 서로 협업을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MS 사무실에는 지정석만 없는 게 아니다. 임원실도 없다. 책상에는 컴퓨터 모니터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모니터조차 없는 카페 같은 좌석도 많다. 그 흔한 전화기도 없다. 모두 어디에 숨겨둔 것일까.

    공간과 기술의 변화가 자율근무 안착하게 해

    [동아DB]

    [동아DB]

    MS는 자율근무제 도입 후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는 물론 생산성까지 향상됐다. [동아DB]

    MS는 자율근무제 도입 후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는 물론 생산성까지 향상됐다. [동아DB]

    MS에는 ‘좋은 직장 만들기 연구조직(Workplace Advantage Research)’이 있다. 일하는 방식만 연구하는 곳으로 2004년 설립됐다. 이 연구조직에서는 기존 엔지니어 중심의 사무 환경(1인 1실)을 지양하고, 넓은 복도 중심의 이웃 개념을 사무공간에 접목해 협업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가뜩이나 서로 마주하기도 어려운 직원들을 밀실(?)에 가둬두기라도 한다면 수 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회의라는 이름하에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율근무제인 만큼 좌석을 지정해놓으면 직원에 따라 공석 상태가 잦아 공간 이용 효율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좋은 직장 만들기 연구조직은 기존 바둑판식 배열의 오피스 구조를 뜯어고치고 유연한 동선의 새로운 오피스를 구상한다. 각 층마다 카페테리아를 만들어 사람들이 오가며 마주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울러 개인 사무실을 없애고 회의실을 대폭 늘려 협업이 용이하도록 했다. 한국 MS의 경우 2013년 11월을 기점으로 임원실이 사라졌고(기존 16개 공간), 임직원용 책상 자리는 735개(지정석)에서 554개(비지정석)로 대폭 줄었다. 동시에 협업 장소인 회의 공간은 543좌석에서 1128좌석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자율근무제가 정착되려면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MS에서는 사내 메신저 스카이프포비즈니스를 이용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컴퓨터 등 어떤 디바이스를 이용하든 화상 회의가 가능하다. 재택근무 중 스카이프포비즈니스를 통해 화상 회의를 하는데, 뒤에서 배우자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찍히는 경우도 왕왕 목격된다. 스카이프포비즈니스를 통해 상대방이 부재중인지, 회의 중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통화가 불가한 상황인데 전화를 걸어 애꿎은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경우를 막아주는 셈이다. 

    일정 관리, e메일 수·발신 등이 가능한 아웃룩 덕분에 실시간으로 상대방 일정을 확인하고 빈 시간대에 미팅 약속을 잡기 위한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일일이 전화를 걸고 메신저를 보내 약속을 잡는 비효율성을 막는 것이다.
     
    아울러 클라우드 기반의 문서 공유 서비스 원노트를 통해 디바이스와 관계없이 실시간으로 워드, 엑셀 등을 작업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문서를 작성하는 일도 가능하다. 

    “한국 MS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즈니스 결과물을 매달 본사에 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막중한 임무라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정작 저에게는 팀원이 없습니다. 이유는 원노트에 있죠. 양식을 만들어 모든 부서와 공유한 뒤 원노트에서 취합하고 이를 검토해 본사에 제출하면 되기에 품이 덜 듭니다.” (오유열 한국 MS 비즈니스프로그램 상무) 

    이 같은 똑똑한 도구들 덕분에 문서 공유 및 편집, 회의, 미팅 준비, 고객사 이동, 자료 검색 및 준비 등에 걸리던 6.5시간(2013년 11월)이 2시간(2014년 11월)으로 줄었다. 하루 일과 시간(8시간)의 25%가 감소된 셈이다(그림 참조). 제도 도입 후 직원 만족도는 89%에 달한다. 

    허찬 한국 MS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공간의 변화와 정보기술(IT)의 도입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컴퓨터 간 협업이 용이해져 불필요한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시간을 직원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워라밸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고순동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대표 인터뷰

    [동아DB]

    [동아DB]

    “한국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직원들이 공장라인에 앉아 있어야만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듯하다. 구성원들이 주중에 놀고 주말에 일하겠다 해도 결과만 낸다면 용인하겠다는 생각을 경영진이 갖는 것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출발점이다.” 

    고순동(60·사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 대표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자율근무제를 도입하면 구성원이 유연하고 즐겁게 일하게 되고, 그럼 자연스럽게 회사 생산성이 높아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MS는 2004년 ‘일하는 방식’만을 연구하는 ‘좋은 직장 만들기 연구조직’을 만들어 최적의 업무 환경을 조성하는 등 일찌감치 자율근무제를 도입했다. 그래서일까.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출퇴근하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 재택근무도 당일 팀장에게 구두 보고를 할 정도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늦게 출근하거나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불성실하다’ ‘논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율근무제는 회사 구성원들에게 확실한 목표량을 부여하는 데서 성패가 갈린다. 그래야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MS는 본사 인사팀에서 해당 직군에 업무 할당량을 제시하고, 팀장과 팀원이 1년에 2번 이상 세부 목표, 실행 과정에 대해 의무적으로 미팅하는 ‘커넥트 제도’를 두고 있다. 

    고 대표는 “결과(성과)에 대해 팀장과 팀원이 합의하고 구성원의 일하는 방식(과정)에 간섭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렇듯 회사에서 명확한 워크(일)를 주고 직원 스스로 밸런스(균형)를 맞추게 하는 것이 워라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MS는 자율근무를 통한 워라밸 실현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일하고 있으리라는 ‘신뢰문화’와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 쾌적하게 근무할 ‘업무 공간’이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대표는 “아이가 댄스파티에 가고 싶다고 하면 부모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하지만 믿음과 신뢰의 마음으로 보낸다”면서 “경영진도 직원들이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일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무실과 떨어진 곳에서 일하려면 업무용 협업툴이 필요하다”며 “MS에는 여러 명이 콘퍼런스콜을 하면서 자료를 동시에 공유하거나, 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화상 회의를 할 수 있는 등 소프트웨어가 마련돼 있다”고 덧붙였다. 

    MS에는 지정 좌석이 없어 애초부터 상사가 부하 직원의 출퇴근 같은 물리적인 근태를 확인할 수 없다.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셈이다. 아울러 고 대표는 “임직원의 워라밸을 위해 불필요한 회의를 과감하게 없앨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MS에 입사해 가장 놀랐던 점은 회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직원이 많다는 것”이라며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 서로 자르고 무조건 빨리 결론 내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