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1

2018.01.10

경제

지긋지긋한 은행 채용비리

금감원 압수수색급 검사, ‘터질 게 터졌다’ 은행권 긴장

  • 입력2018-01-09 13: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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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7일 검찰 직원들이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에서 채용비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7일 검찰 직원들이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에서 채용비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뉴스1]

    최근 은행권은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채용비리 검사’로 초비상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19일부터 금감원 검사역 30여 명을 투입해 11개 은행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를 시작했다. 검사 대상은 KB국민·신한·KEB하나·NH농협·Sh수협·부산·경남·DGB대구·광주·전북·제주은행이다. 

    금감원은 이번에 사실상 ‘압수수색’에 준하는 검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담당 임원과 부서장, 실무자로부터 동의서를 받고 이들의 개인용 컴퓨터(PC) 등을 현장에서 뒤진 것. 보통은 피검기관에 사무실을 두고 필요한 자료를 가져오도록 요구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채용비리를 캐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조사 수위를 높였다. 아울러 필요한 자료는 모두 가져와 분석 작업을 펼쳤다. 

    금감원이 고강도 검사를 벌인 이유는 은행이 자체 점검에서 단 한 건의 채용비리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 내에서도 인사 관련 자료는 일부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안을 유지하는 상황이라 공식 서류나 인사담당자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금감원은 ‘2차 검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1차 검사 때 확보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그중 살펴봐야 할 부분들에 대해 2차 검사를 진행 중이다. 기한이 따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1월 둘째 주까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검사에서 채용비리 정황이 여럿 발견됐고, 이 가운데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은 검찰에 의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발됐는지에 대해선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VIP 고객 자녀 ‘프리패스’

    금감원의 이번 조치로 자칫 시중은행 최고경영진이 ‘옷을 벗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입사원 채용비리 의혹을 받자 사퇴했다. 당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우리은행이 부정청탁을 받고 2016년 신입사원 공채에서 국가정보원 직원 자녀, 금감원 임원 자녀, VIP 고객 자녀 등 16명을 합격시켰다”고 폭로했다. 



    명단에 오른 A씨는 ‘여신 740억에 신규 여신 500억 추진’으로 기재돼 있어 ‘대가성 채용’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추천인 명단 16건 가운데 3건은 금고 선정 및 운영에 영향에 미치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에서 ‘금고 대가성 비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금융계 종사자는 대부분 이번 채용비리 사태와 관련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금융권 채용비리는 일종의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졌다. 심상정 의원이 국감에서 “우리은행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정도면 다른 시중은행은 어떻겠느냐”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권의 채용비리가 유독 심한 게 사실이다. 채용이나 인사철이 되면 휴대전화에 불이 날 지경으로 청탁 전화가 빗발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채용 인원이 많고, ‘VIP’라는 이유로 청탁 제의를 뿌리치기 힘든 기업이나 기관이 많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금융당국의 조사가 수사와 처벌에 그치지 않고 채용비리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시중은행은 노 스펙, 블라인드 채용 등을 확대하며 채용 공정성을 높이는 듯했지만, 그 이면에는 특혜성 채용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금감원은 은행의 채용시스템 개선을 위해 전국은행연합회 주도로 공동지침을 마련하게끔 유도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원 채용은 경영권과 관련된 일인 만큼 민간은행의 경우 정부에서 채용시스템을 규제할 수 없다. 다만 각 은행에 맞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찾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입직원 지원서에서 최종학력, 최종학교명, 전공, 학점, 성별 등 7개 인적사항을 제외하기로 하면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확대했다. IBK기업은행과 예금보험공사도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2차 임원면접 등 전 과정으로 확대했다. 이들 기관은 최종합격자에게만 졸업·성적증명서를 제출하게 할 계획이다.

    관치금융·시금고 독점 막아야

    은행권 채용비리를 근절하려면 ‘관치금융’이라는 근본 원인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히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일수록 정치권과 고위공무원 등 ‘관(官)’의 압력이 크다. 이번 금감원의 검사로 이러한 관행이 다소 줄어들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관치금융’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시금고 독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각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정부기관의 금고은행은 이들과 거래를 유지하거나 새로 유치하고자 취업청탁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일종의 리베이트와 같다”고 말했다. 

    채용비리로 합격한 부정입사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확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채용비리는 본인이 입사서류를 조작하는 등 직접 가담해야 합격 취소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부정입사는 보통 중간관계자 또는 고위관계자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일단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하고 보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렇기에 제재 수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대표는 “채용비리 의혹이 터지만 중간관리자만 수사하는 등 소수를 대상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채용에 개입한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 기준을 명확히 하고 제재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은행권 전수조사도 이번 한 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수시로, 불시에 이뤄져야 채용비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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