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오후 판문점에서 일어난 북한군 병사의 귀순과 그를 향한 북한군의 집중 사격은 한반도가 여전히 화약고임을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8일 안개 탓에 무산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DMZ(비무장지대) 방문 시도 비화의 일단도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한(離韓)한 뒤에도 DMZ를 방문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으니, 그는 이 사건 뒤에 있는 ‘북한의 진실’에 집중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문 대통령 제의로 DMZ 가려 한 것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 무산에는 미·북 대립은 물론, 어색한 한미관계와 그 불편함을 덮으려는 또 다른 노력들이 뒤엉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떠난 직후인 11월 8일 오후 청와대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공개한 대화록을 근거로 방문 관련 뒷얘기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먼저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DMZ를 방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지 않아도 (참모진 사이에서) 그런 일정 제안이 있어서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가시죠. 가시면 저도 동행하겠습니다”라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 함께 가신다면 저도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이 먼저 DMZ 방문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박수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은 “기상이 나빠 회항했지만, 양 정상이 보여준 DMZ 방문 의지는 빈틈없는 한미동맹 메시지를 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통령 경호 시스템을 아는 이들은 “미국 대통령의 일정이, 더구나 외국에서 일정이 하루 만에 변경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보안 때문에 미리 밝히지 않았을 뿐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은 한참 전에 예정돼 있던 것”이라며 청와대의 설명을 부인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제의만으로 DMZ 방문이 추진된 것은 아니라고 수정했다. 한 소식통은 “예민한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DMZ를 방문하면 남북관계는 좋아질 수 없기에 청와대는 반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의 의지가 강했고 막을 수도 없었기에, 그렇다면 한미동맹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문 대통령이 동행하는 쪽으로 결정했는데, 안개로 무산돼버렸다”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DMZ 방문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9월 23일 B-1 폭격기를 필두로 한 미국 해·공군기들이 동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가 작전을 수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일단의 함재기들은 북한 영공 밖 청진 앞바다까지 날아갔는데, 북한 측 대응은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몇몇 미군기는 북한 영공으로 들어갔다. 그 항공기들이 비행한 날짜와 스텔스기 여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평시 한미 정찰기는 북한 SA-3와 SA-5 대공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동서(東西) 비행을 하며 북한을 감시한다. 우리나라에는 레이더를 운용하는 수많은 기관이 있는데, 이 무렵 이들은 일제히 SA-3와 SA-5 사거리 안에서 횡단 비행하는 항적을 발견하고 정체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조인트스타스와 RC-135 정찰기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비무장인 대형 정찰기들이 적(敵)의 대공미사일 사거리 안에서 비행한다는 것은 자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적의 도발을 유도하는 행동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강한 발언을 하지 않은 트럼프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대응이 없었다. 어떠한 비행기도 떠오르지 않았고, 어떠한 미사일도 발사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정찰기를 향해 집중적으로 레이더파를 쏘는 것도 탐지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미국이 전자전기를 함께 띄워 북한 레이더를 무력화하는 작전을 병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고성능 전자전기는 북한 레이더를 순식간에 다운시킬 수 있다. 언론은 10월 15일부터 조인트스타스가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다는 보도를 내놓았고, 한미정상회담 시 한국은 미국에 조인트스타스 구매를 타진했다. 

판문점 바로 곁에는 군사분계선에서 25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군 오울렛 초소가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가운데 이 초소를 찾지 않은 이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뿐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곳을 방문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는데, 예민한 시기인 만큼 보안을 위해 ‘판문점은 방문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퍼뜨렸다. 북한 처지에서 미국 대통령의 오울렛 초소 방문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트럼프의 방한이 임박하자, 미국이 군사 행동을 강화해온 두 달간 조용하던 북한이 비밀 통신망을 이용해 강한 비난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보 업무에 종사하는 복수의 소식통은 “북한은 방한한 트럼프에게 위해를 가하라는 지시와 선동을 거듭해서 내렸다. 위해는 암살로 이해될 수 있기에 양국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요코다 미 공군기지에서 ‘어떠한 독재자도 미국의 결의를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강력한 연설을 했으나, 오산과 평택을 방문해서는 미군을 상대로 연설하지 않았다. 한미동맹은 굳건하다고 포장해야 하니, 미국은 한국 정부가 거북해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 듯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임박하자 한국에서는 ‘노(No) 트럼프’와 ‘노 전쟁(No War)’를 외치는 시위가 열렸다. 11월 7일 청와대에서 만찬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트럼프 일행의 차량을 향해 물병 등을 투척하는 사태도 있었다. 그 시기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DMZ에 오면 위해를 가하라는 지령을 강화했다. 트럼프의 DMZ 방문을 막으려는 심리전임이 분명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상상황이 좋지 않았다. 먼저 헬기로 청와대를 출발한 문 대통령은 안개가 짙자 헬기를 착륙하게 한 다음 육상 교통편으로 오울렛 초소로 이동했다. 미국 측은 머린 원(Marine One)의 이륙을 망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기에 이륙시켰다. 그러나 현지 기상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착륙 5분 전 기수를 돌렸다. 미국은 한국 측 차량을 이용해 오울렛 초소로 가지 않았다. 한 소식통은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위원장의 전용차에 올랐지만, 미국 비밀경호국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면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 대통령이 외국 차량을 타지 않게 한다. 더군다나 적전(敵前)에서는…”이라고 말했다. 

판문점에 안개가 끼지 않았다면 한미 대통령은 오울렛 초소를 함께 방문해 한미동맹을 만방에 과시하는 기회를 가졌을 테다. 우리 정부로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얻는 대신 남북관계 개선 기회를 놓치는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인데, 뜻밖의 안개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피해갔다. 국회로 돌아온 트럼프는 오울렛 초소에 가지 못했으니 준비된 연설문을 수정했다. 그러나 6·25전쟁에서 미군 3만5000여 명이 전사했다는 것과 한미동맹 강화 내용은 빠뜨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북한은 2개월여 간의 침묵을 깨고 ‘톤 낮은’ 대응을 했다. 북한은 당 우위 체제이기에 노동당이나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한 국무위원회의 발표가 외무성 발표보다 훨씬 위에 선다.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비난했는데, 이는 미국의 군사 힘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였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과 항모 3척을 동원한 한미해군의 연합훈련이 끝난 11월 15일 다시 ‘노동신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을 비난했는데, 이 또한 톤 낮은 비난에 해당한다.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원유 공급 차단 같은 최대한의 대북 압박을 요구했다. 미국은 통상압력과 신용등급 조정 등을 지렛대로 갖고 있기에 중국을 압박할 수 있다. 이는 당장 북한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소식통들은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는 내년 2월까지 미국이 중국의 행동을 지켜보며 기다릴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은 유엔이 정한 휴전기이니 이를 피하고, 2월 말이 되면 키리졸브 연습을 위해 다시 미군 전력이 모여드니 그때를 행동 시기로 잡았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안갯속

외교로 북핵 문제를 풀지 못했기에 미국은 ‘전략적 비(非)인내’를 뜻하는 ‘최대한의 압박과 개입’으로 전환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북핵 불용을 천명하고 오울렛 초소 동반 방문을 추진했음에도, “외교로 북핵을 풀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중간 자리한 한국 정부가 현실 세계로 돌아오도록 한미동맹을 관리하면서 기다릴 것이다.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을 이렇게 전망했다. 

“미국은 항모 3척을 계속 한반도 인근에 대기시키며 기다릴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일차적으로는 일본, 이어서 미국 함대가 요격하고 바로 공습을 한다. 이것이 부담스러워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면 김정은은 내부 모순에 빠지리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외부에 나타나지 않고, 자신이나 국무위원회 명의로 미국을 비난하지 못하면 그의 지도력이 한계에 달한 것으로 여겨 북한이 급변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통상압박으로 중국도 대북제재를 강화할 테니, 올겨울 북한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최대한 군사적 압박으로 군사력을 쓰지 않고도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속셈이다.” 

판문점의 안개 덕에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를 더 소원하게 만드는 부담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그런 가운데 판문점에서 북한 병사의 귀순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군이 병사 한 명에게만 사격했기에 망정이지, 우리 초소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면 포병부대까지 동원해 대응에 들어갔던 한국군의 준비로 미뤄 그날 판문점에서는 국지전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대화로 북핵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판문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실에 맞는 대북정책을 택할 것이냐, 내 생각과 일치하는 북한을 만들 것이냐.’ 문재인 정부가 대면한 진정한 숙제는 이것이다. 판문점에는 안개가 여전히 짙게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