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9

2017.10.18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붉은불개미,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세계 곳곳 생태계 교란하는 외래종의 공포

  •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10-14 03: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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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주에서 1년가량 살 때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집 안에 수시로 출몰하는 개미였다. 한국과 달리 ‘독한’ 미국 개미의 악명을 익히 들었던 터라 한두 마리라도 눈에 띄면 그렇게 불안할 수 없었다. 한 해 평균 1400만 명 이상이 붉은불개미에 쏘이고 지금까지 최소 8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간담이 써늘해졌다. 괜히 붉은 ‘독개미’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몸길이 5mm의 붉은불개미는 강한 독성을 갖고 있어 그 날카로운 침에 찔리면 통증과 가려움증이 생긴다. 심하면 호흡 곤란과 쇼크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더 무서운 일은 이 붉은불개미가 집으로 들어와 에어컨, 냉장고 등 따뜻한 팬 부분에 집을 짓는 것이다. 거기에서 붉은불개미가 배출한 개미산이 합선을 일으켜 화재가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 부산항에서 발견돼 문제가 된 붉은불개미는 원산지가 남아메리카다. 1930년대 미국에 진출해 이제는 완전히 자리 잡았다. 2005년부터는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도 서식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 일본(5월 26일), 우리나라(9월 28일)로까지 ‘밀입국’에 성공했다.

    부산항에서 발견된 붉은불개미는 다행히 추석 연휴 때 박멸된 것으로 보인다. 여왕개미를 찾지는 못했지만 서식지 규모가 작았고 곳곳을 훑었지만 추가 발견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붉은불개미의 밀입국은 수시로 이뤄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따라 동식물도 세계 곳곳을 누비기 때문이다.





    괌 섬에서 새소리가 사라진 이유는

    추석 연휴 기간 자녀를 차량에 방치한 채 쇼핑을 하던 한국인 변호사-판사 부부가 체포되면서 새삼 미국령 괌이 뉴스의 중심이 됐다. 태평양 마리아나제도 남단의 섬 괌은 북한이 폭격 위협을 할 정도로 미국 군사 기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은 법조인 부부가 가족 여행을 가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 천혜 자연경관을 가진 열대 낙원이기도 하다.

    괌을 다녀온 독자 가운데 혹시 숲에서 새소리를 들어본 이가 있는가. 섬뜩한 일이지만 괌 숲에서는 새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애초 괌 숲에 서식하던 토착 새 상당수가 멸종했기 때문이다. 괌에서 50km 떨어진 로타섬이 온갖 토착 새의 낙원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도대체 괌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연은 이렇다.

    1949년 어느 날 괌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임신한 인도네시아 갈색나무뱀 한 마리가 몰래 하선했다. 갈색나무뱀은 나무에 사는 포식자로 3.3m까지 자라는 독뱀이다. 갈색나무뱀이 괌 숲에 똬리를 튼 시점부터 이곳은 토착 새의 지옥이 됐다. 갈색나무뱀은 천적 없이 진화한 토착 새의 상당수를 말 그대로 폭식했다.

    이후 토착 새 18종 가운데 7종이 멸종됐다. 특히 괌딱새와 괌뜸부기가 치명타를 입었다. 갈색나무뱀 같은 포식자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던 이들 새는 결국 야생에서 절멸했다. 괌딱새는 1984년 마지막으로 등장한 뒤 완전히 사라졌다. 괌뜸부기는 야생에서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다행히 보호 프로그램 덕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포유류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괌에 서식하던 토착 포유류 3종은 모두 박쥐였다. 이들 중 2종이 갈색나무뱀의 먹잇감이 돼 사라졌고 1종(마리아나큰박쥐)은 멸종위기 직전이다. 갈색나무뱀은 이제 5종의 토착 도마뱀을 비롯한 파충류, 양서류를 없애면서 식성을 과시하고 있다.

    토착 새가 없어지자 쾌재를 부른 것은 거미와 각종 곤충이다. 이들의 증가는 농작물 피해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갈색나무뱀이 전신주에 올라가 정전을 유발하는 등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덫 40만 개를 설치하는 등 갈색나무뱀과 전쟁을 하고 있다. 특히 갈색나무뱀이 로타 같은 인근 섬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두꺼비 사냥에 나선 이유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브리즈번 근처에서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주기적으로 왕두꺼비(cane toad)를 사냥한다. 인도적인(?) 살상을 위해 ‘냉장실에 열두 시간’ 두고 그다음에 ‘냉동실에 열두 시간’ 넣어 죽이라는 엽기적인 지침까지 마련한 실정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애초 호주에는 왕두꺼비가 없었다. 아메리카 토착종으로, 남쪽으로는 아마존강에서부터 북쪽으로는 텍사스 주 남부까지 서식하던 왕두꺼비는 사탕수수 농사를 훼방 놓던 딱정벌레를 먹어치울 포식자로 호주에 공식 입국했다. 몸무게 2.3kg에 13인치(약 33cm) 노트북컴퓨터만큼 자라는 왕두꺼비는 기대했던 대로 딱정벌레를 싹쓸이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덩치가 큰 왕두꺼비는 황무지를 누비며 딱정벌레뿐 아니라 다른 토착 동물까지 먹잇감으로 삼았다. 몸속 독도 문제였다. 북부주머니고양이나 덩치가 큰 토종 뱀, 악어 등이 왕두꺼비를 먹고 독 때문에 목숨을 잃기 시작했다. 덩치가 작으면 먹잇감이 되고, 덩치가 크면 독에 죽임을 당하는 진퇴양난! 결국 아이들이 나선 것이다.

    이렇게 외래 동식물의 침입으로 토착 생태계가 망가지는 일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는 현재 두 달마다 새로운 외래종이 들어온다. 하와이 상황은 더해 매달 새로운 외래종이 들어오고 있다. 인류가 하와이에 정착하기 전까지 새로운 종이 약 1만 년에 한 번씩 들어왔던 것과 비교해보라.

    한때 낭만적인 몽상가 몇몇은 세계 각국 문물이 교류하고 서로 융합해 다양성이 꽃을 피우는 인류의 미래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맥도날드 패스트푸드, 코카콜라 탄산음료, 할리우드 영화 등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소비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획일화였다.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한 지각(地殼) 활동의 결과로 갈가리 찢겨 고유한 다양성을 뽐내던 여러 생태계는 인간 활동으로 다시 하나가 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태계의 다양성 파괴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태계는 다양성을 잃고 인류의 소비문화처럼 단순해질 개연성이 크다. 국내 하천 생태계를 교란해온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블루길 등도 그 한 예일 뿐이다. 앞으로 언제 또 부산, 인천, 경기 평택 등을 거쳐 전국으로 퍼질지 모르는 붉은불개미도 잠재적 후보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집요한 수색을 피한 여왕개미가 알을 까고 있을지 모른다. 붉은불개미 여왕개미는 하루 1500개씩 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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