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9

2017.10.18

국제

중국=세계 No.1 ‘국뽕’ 영화 흥행 대박

지나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부추겨…군사굴기 미화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10-13 14: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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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궈칭당(國慶)’은 중국에서 국경절 영화 대목을 지칭하는 말이다. 중국에선 건국기념일인 10월 1일 국경절을 맞아 이레간 휴일이 이어진다. 관객들로 영화관이 꽉 차는 이 기간에 맞춰 여러 대작이 개봉한다. 중국 온라인 영화예매 사이트 먀오옌(猫眼)에 따르면 국경절 연휴를 맞아 9월 29일부터 10월 5일까지 영화 12편이 개봉됐다. 중국 언론들은 올 연휴는 역사상 가장 빽빽한 영화 시즌이라며 박스오피스 수익이 사상 최고치인 27억 위안(약 466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 영화관 앞에는 수많은 관객이 줄을 섰다.

    올해 궈칭당 중 ‘대박’을 친 영화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정치부 방송예술센터가 민간영화사와 손잡고 직접 제작에 참여한 ‘스카이헌터(空天獵·Sky Hunter)’다. 이 영화는 중앙아시아 한 국가에서 발생한 테러와 싸우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젠(殲·J)-20이 이 영화에서 첫선을 보이는 등 J-10C, J-11, J-11B, J-16 같은 각종 전투기가 등장한다. 중국 전투기가 미국 F-15와 프랑스 미라주 2000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장면도 나온다.



    ‘탑 건’의 중국판 ‘스카이헌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최근 결혼을 발표한 리천과 판빙빙이 맡았다. 판빙빙은 예비 남편인 리천이 처음으로 영화 메가폰을 잡자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리천은 전투기 조종사, 판빙빙은 헬기 조종사로 열연했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탑 건(Top Gun)’의 중국판이다. 제작자인 장리 공군 중교(중령)는 “중국의 군사영화가 더는 창정(長征)이나 제2차 세계대전 같은 과거 스토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면서 “인민해방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영화 제작에 나섰다”고 밝혔다. 장 중교는 “과거에는 청년들이 할리우드 영화인 ‘탑 건’을 보고 조종사에 지원했지만 이제 ‘스카이헌터’가 대신할 것”이라며 “중국의 현대화된 군대를 소개하고 청년들을 인민해방군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영화는 ‘스카이헌터’만이 아니다. 7월 28일 개봉된 ‘전랑(戰狼)2’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중국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이 내전 중인 아프리카에서 미국 용병들과 싸우면서 학살 위기에 처한 중국인과 현지 난민을 구조하는 액션물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람보’의 중국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1억4000만 관객과 57억 위안(약 9840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역대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전랑2’는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닷컴이 집계하는 전 세계 역대 흥행 성적 55위를 기록해 중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100대 흥행 영화에 올랐다. 이 영화는 내년 3월 4일 개최되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출품됐다. 중국의 대표적인 액션 배우 우징(吳京)이 감독 및 주연을 맡았는데, 수많은 무기와 장비가 등장해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보여준다. 특히 관객들은 “중화민족을 건드리는 자는 아무리 멀어도 쫓아가 반드시 처벌한다” 등 애국심을 한껏 부추기는 주인공의 대사들에 열광한다.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화면에 중국 여권이 나오면서 ‘당신이 해외 어디에서 어떤 위험에 처하든 당신의 뒤에는 강대한 조국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자막이 흐르는 대목이다.



    ‘전랑2’의 흥행 대박은 중국인의 자존심을 부추기고 중국 시각에서 미국 등 서방의 패권주의와 가치관을 반박하는 내용이 곳곳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군함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무력 개입을 자제하는 건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조롱이고, 주인공이 오성홍기를 치켜들자 반군들이 사격을 멈추는 장면은 중국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최신예 무기가 총동원된 전투 장면은 중국의 군사굴기를 연상케 한다. 1990년대 이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샤오펀훙’(小粉紅·작은 분홍색) 세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문화혁명시대 홍위병처럼 열광한다.   



    영화는 최선의 선전도구

    7월 27일 개봉한 영화 ‘건군대업(建軍大業)’도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27년 국민당에 맞서 ‘난창(南昌)봉기’를 일으킨 홍군이 팔로군을 거쳐 현재 인민해방군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았다. 총격 추격 신이나 전투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다. 출연 배우도 화려하다. 마오 역은 류예, 저우언라이 역은 주야원, 장제스 역은 대만 출신 훠젠화가 각각 맡았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 EXO(엑소)의 중국 출신 전 멤버 루한도 출연했다. 주연급 스타들은 ‘국가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모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이 영화는 ‘건국대업’(2009) ‘건당대업’(2011)에 이어 나온 ‘대업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올해 들어 중국판 ‘국뽕 영화’가 잇달아 나온 이유는 10월 18일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모든 영화 제작은 반드시 공산당의 사전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인 ‘국뽕’은 지나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과 자국민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일당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고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중국 국뽕 영화들이 흥행 대박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의 의도와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영화 제작사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열풍이 불고 있는 데 대해 국제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룰에서 벗어나 자국 이익만 추구해온 중국의 행태를 감안할 때 자칫하면 빗나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중국의 무력이나 힘의 사용을 부추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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