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거장, ‘디오픈’에서 지다

톰 왓슨, 닉 팔도의 은퇴식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nhy6294@gmail.com

    입력2015-07-27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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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 ‘디오픈’에서 지다
    평생을 필드 위에서 살며 희로애락의 풍상을 겪은 프로골퍼들은 은퇴를 앞두면 인생에서 정말 의미 있는 곳에서 골프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남자 프로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별 무대는 역시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총 144회의 브리티시오픈(유럽에선 디오픈이라 부른다) 가운데 올해를 포함해 모두 29회를 치렀을 만큼 명성이 높다. 1873년 제13회 디오픈 이후 꾸준히 개최해왔으며 최근 들어선 5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따라서 다음 개최는 2020년이다. 9곳의 디오픈 순회 개최지 중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다음으로 자주 개최한 곳은 16회를 치른 뮤어필드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평평하고 넓어 처음 마주하면 공터 같은 느낌을 준다. 코스 난도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14개 홀이 인아웃 코스 그린을 공동으로 쓰고 있고 홀 간 독립성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승한 선수는 당대 최고 선수들이었다.

    최고 선수들이 겨룬 전장이자 가장 오랜 골프 역사를 가진 명당인지라 숱한 전설이 이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아놀드 파머는 1995년, 잭 니클라우스는 2005년 이곳에서 은퇴했다. 올해는 65세를 맞이한 톰 왓슨과 58세 닉 팔도가 작별을 고했다.

    은퇴식을 거행하는 무대도 정해져 있다. 18번 홀 중간 스윌컨(Swilcan) 개울을 지나는 조그만 다리다. 듬성듬성한 머리숱에 목과 이마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전노장은 마지막 티샷을 하고 이 다리에 올라 클럽하우스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한다. 그리고 그린으로 걸어가면서 갤러리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게 신성한 의례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그랬다. 닉 팔도는 2라운드 18번 홀에서 티샷을 한 뒤 노란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었다. 1987년 뮤어필드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처음 우승했을 때 입었던 옷이다. 스윌컨 다리 위에선 캐디를 한 아들 매슈, 동반 플레이를 한 저스틴 로즈, 리키 파울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첫째 날 83타를 쳤고, 이날은 1언더파 71타를 쳤다. 예선에서 떨어졌으나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메이저대회에서 6승을 쌓은 그는 60세가 넘으면 디오픈 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올해 이곳에서 앞당겨 은퇴 경기를 치른 것이다.

    톰 왓슨은 팔도보다 4시간 늦게 라운드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려 대회는 3시간 늦게 시작됐고 왓슨과 어니 엘스, 브랜트 스네데커 조가 17번 홀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어둑해졌다. 엘스는 일몰로 경기를 중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왕립골프협회(R&A)관계자를 불렀다.

    “이 조에는 전설이 있다. 아무도 내일 새벽 6시 30분에 이곳에 다시 와 고별 경기를 하는 걸 원치 않는다. 이건 챔피언을 배웅하는 일이다. 경기를 마치게 해달라.”

    어스름이 깔린 속에서 그 조만 경기를 계속했다. 왓슨은 18번 홀에서 티샷을 한 뒤 스윌컨 다리에 올라 동료 선수들과 캐디를 한 아들 마이클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하늘의 골프신을 향해 손뼉을 쳤다. 그가 18번 그린에 올라갈 무렵 어디서인지 갤러리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왓슨의 마지막 퍼트를 지켜봤고 박수를 쳤다. 왓슨은 디오픈에 38번 출전했는데 1975년부터 83년까지 5번 우승했다. 2009년 59세로 출전한 디오픈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놀라운 활약으로 65세까지 출전권을 연장받았다. 그리고 이제 디오픈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거장, ‘디오픈’에서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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