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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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정체 모를수록 열광, 가수는 세상에 나올 용기 얻어”

인터뷰 l ‘복면가왕’ 숨은 주인공 가면 제작 김유안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7-24 16: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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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은 정체 모를수록 열광, 가수는 세상에 나올 용기 얻어”
    가릴수록 진짜가 보인다?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은 우리가 얼마나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지 깨닫게 한다. 복면으로 정체를 숨기고 무대에 선 덕에 아이돌 가수들의 숨은 가창력을 발견했고, 추억 속 전설들을 다시 마주하기도 했다. ‘히든싱어’ ‘보이스 코리아’처럼 자신을 숨기고 목소리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복면가왕’이 주목받는 건 단연 독특한 디자인의 가면 덕이다.

    지금이야 걸출한 가왕을 배출하며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지만, 올해 초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됐을 때만 해도 이런 콘셉트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초기부터 가면 디자인과 제작을 맡은 스타일디렉터 김유안 ㈜유안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바스락거리거나 화장 번져도 안 돼

    7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유안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 겸 쇼룸인 이곳 벽에는 독특한 피규어가 가득했고 금성전자 TV와 VHS-VCR, 1990년대 영화 비디오테이프와 80년대 사진연감까지 옛날 물건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바로 이 앤티크한 공간에서 우리가 열광한 가면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쯤 ‘복면가왕’ 제작진과 첫 미팅 이후 올해 4월까지 가면 50여 개를 만들었다. 이 중 28개가 방송을 탔다.

    김 대표는 2004년부터 유안리얼스타일을 통해 연예인이나 기업가들의 스타일 콘셉트를 잡아주는 일을 했다. 야구선수 오승환, 개그맨 붐과 조세호, 배우 김수로 등의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꾸준히 늘어난 마니아들의 성원 덕에 최근 온라인 쇼핑몰 보리씨(Bolee.C)를 열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외에도 예능프로그램 ‘공감토크쇼 놀러와’ ‘놀라운 대회 스타킹’ ‘코미디빅리그’ 등의 출연진 스타일링을 해왔지만 가면 제작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 대표가 디자인을 구상하면 7년째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 타코(본명 한주형)가 가면을 제작했다. 의상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기존 틀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복면가왕’ 속 가면들은 ‘오페라의 유령’에 나올 법한 가면보다 레슬링 복면에 더 가깝다. 프로그램의 핵심 포인트인 ‘정체 가리기’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나온 결과물이다. 제작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체를 숨겨야 하기에 귀를 비롯한 얼굴 전체가 노출되지 않아야 하고, 입을 가리되 노래를 부를 때 지장이 없어야 했다. 마이크에 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 바스락거리는 재질은 탈락. 가면을 벗었을 때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화장이 번지면 안 된다는 조건도 붙는다. 뒤통수에서 벨크로로 고정하는 방식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나온 결과였다. 김 대표는 이런 가면제작 방식을 특허 출원 중에 있다.

    “처음에는 미라같이 붕대 형태로 만들어 감아볼까 싶었는데, 연예인들이 무대에 오르내릴 때 일일이 감아주고 벗겨야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러다 원터치로 쓰고 벗는 벨크로 방식이 떠올랐죠. 오랜 시간 쓰고 있어도 피부에 자극이 없는 원단을 찾다보니 신축성이 있는 네오프렌 소재가 눈에 들어왔어요.”

    카무플라주 무늬나 태극문양을 활용하는 건 금지사항이었다. 그에 따르면 “카무플라주는 IS(이슬람국가)가 연상될 수 있고, 태극문양은 태극기를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복면가왕’ 제작진 측의 요청이었다고. 첫 완성작은 조권의 ‘꾀꼬리 같은 파랑새’.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면은 자신의 스타일이 한껏 반영된 ‘집 나온 수사자’와 ‘앙칼진 백고양이’다.

    “무명 가수들이 가면을 쓰고 빛이 나길 바랐기에 만들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한창 노래하는 중에 정체가 탄로 나면 김이 새니까요. 오로지 실력과 목소리만으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면 하나하나에 캐릭터 콘셉트와 스토리를 담아 만들었죠.”(김 대표)

    “작업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가면은 개그맨 정철규 씨가 쓴 ‘감전주의 액션로봇’이었어요. 사포로 표면을 깎고 LED(발광다이오드) 전구와 스위치, 선을 드릴로 구멍을 뚫어 하나하나 넣었는데 방송에선 짧게 나와 아쉬웠죠. 초대 복면가왕에 오른 EXID 솔지 씨가 쓴 ‘자체검열 모자이크’는 원단을 하나하나 조각내서 모자이크처럼 꿰맸기에 기억에 남아요.”(디자이너 타코)

    가면에 캐릭터와 스토리 담아

    “대중은 정체 모를수록 열광, 가수는 세상에 나올 용기 얻어”
    현재 김 대표는 ‘복면가왕’ 가면 제작에서 손을 뗐지만 여전히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많다. 그는 “방송 당시 원기준 씨가 노래를 부를 때 입 부분에 덧댄 천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 우리가 제작에서 손을 뗀 뒤 참신한 가면 착용 방식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직까지 달라진 점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심리학 용어 페르소나(persona·인격적 가면)는 극 중 특정 배역을 연기하고자 배우가 썼던 가면을 뜻하는 말로 인물(person)이나 인격(personality) 같은 말도 여기서 파생됐다. 가면이라 하면 대다수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스위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적절한 인격적 가면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누구나 업무적인 얼굴과 개인적인 얼굴에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하는 일은 밝고 화려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죠. 일하다 보면 가면을 완전히 벗어버리고픈 충동이 들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영화인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해요.”

    최근 10주 만에 가왕 자리를 내준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정체는 가수 김연우였다. 그는 ‘일밤-나는 가수다’에 나왔을 때보다 얼굴을 가리고 ‘복면가왕’에 나왔을 때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사람들은 왜 가렸을 때 더 열광할까.

    “현대 사회에서는 보이는 대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고, 보이는 것(외모)에 대한 평가에서 낙제했다고 상실감을 느끼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가면을 쓴 누군가가 타인의 시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이 가진 걸 펼치고 갈채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자신인 양 몰입하고 대리만족하는 게 아닐까요.”

    김 대표는 “나도 어릴 적 활동적이지 못한 편이라 집 안에만 있을 때가 많았지만 세상에 나오면서 재능을 찾게 됐다”며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가면을 벗고 세상으로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활동하지 못하던 가수들이 가면을 쓰고 용기를 내 나왔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인터넷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다 보니 재능을 뽐내지 못하고 있어요. 이제는 가면을 벗고 세상에 당당히 나와 자기 꿈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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