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2015.06.29

단순명료함으로 사고의 틀 깨기

성공적인 브랜드 네이밍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6-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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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명료함으로 사고의 틀 깨기
    요즘 세대의 단순명료함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10대가 인터넷 공간에서 쓰는 용어들이다. 이제는 너도나도 익히 알고 널리 쓰는 ‘멘붕’(멘털붕괴), ‘셀카’(셀프카메라)와 어른들은 도저히 알 길 없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미존’(미친 존재감)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축약어는 요즘 세대가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화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과 방송에서 제목, 자막 등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축약어를 센스 있게 집어넣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일본 예능프로그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요즘은 모든 방송에서 자막을 사용하고 있고, 자막을 ‘제3 출연자’라고까지 부르는 추세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단순명료함의 원칙

    전쟁, 전투에 얽힌 복잡성과 예측불가능성을 떠올려볼 때 작전계획과 명령을 단순명료하게 작성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다’는 금언처럼 말이다. 군사용어사전에서는 ‘단순명료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순명료함은 전쟁의 원칙이다. 이는 효과적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교화적인 계획과 명령은 단순하고 정확하다. 참모들은 쉽고 단순한 명령을 작성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명령은 교리적으로 틀림없어야 하며 올바른 군대용어와 도식을 사용해야 한다. 오해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긴 계획보다 짧은 계획 쪽이 단순명료하다. 짧은 쪽이 전달하기 쉽고 읽거나 외우기에도 편하다.



    미국 육군 야전교범 ‘작전 절차’(The Operations Process·2012)는 군이 작전을 계획, 준비, 실시, 평가하는 데 필요한 원준칙, 매뉴얼, 시스템을 포괄하는 기준교리다. 이 ‘작전 절차’에 명시된 순서와 틀을 통해 미군은 실제 작전계획과 명령을 작성하고 전투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여기 내용들은 실전과 그 교훈의 정수를 담은 것이다. 즉 전쟁터에 나가 있는 이등병의 경험과 미 정부로부터 의뢰받아 그들의 경험을 연구 분석한 존스홉킨스대 등 교수진의 연구 결과가 한데 모아져 있다.

    ‘작전 절차’는 단순명료함이 작전계획과 명령 작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명시하면서 이를 추구하기 위한 전제 및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처음부터 개념을 잘 잡으라는 것이다. 단순명료함을 추구하려면 잘 작성된 작전 개념(concept of operations)이 있어야 한다. 군대에서 작전 개념이란 지휘관이 판단한 현재 상황과 위협, 가용한 자원을 기준으로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를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한 것이다. 즉 조직목표로서 단순명료함의 추구는 지휘관의 의지와 일관된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는, 그냥 ‘단순한 것들의 나열’에 그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둘째로 옵션 혹은 선택지는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지휘관의 작전 개념이 하달되면 참모들은 현재 상황에서 취해야 할 행동이나 달성해야 할 과업을 가능한 한 적은 수로 골라놓아야 한다. 즉 작전 개념의 해석과 그 해석에 기반을 둔 샘플 정도는 중간 참모진이 제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단순명료하게 해’라고 내린 지침이 최하층까지 그대로 ‘단순명료하게 해’라는 명령으로 전달되면 이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셋째로 단순한 것과 단순명료한 것은 다르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단순명료함이란 복잡한 것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단순명료한 계획이나 명령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어려워야 하고, 그것을 받는 사람은 쉽고 간단해야 한다. 참모들은 어렵고 복잡한 상황과 위협을 모두 이해하고 일어날 수 있는 사태를 예측한 후 그 정수만 뽑아 단순명료한 계획과 명령을 작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로 조직의 유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조직의 유연성과 권한 위임은 단순명료함에 영향을 미친다.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하나하나 다 정해주고 제한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예하 조직과 부하들이 업무를 통해 성장하지 못해 결국 발전이 없는 정체된 조직이 된다. 유연한 조직에서 권한 위임은 예를 들면, 정확한 공격 방향을 지시하지 않고 적의 강·약점이 어딘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작전계획과 명령은 단순명료해지고 예하 부대는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강구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브랜드 이름은 차지고 단순하게

    단순명료함으로 사고의 틀 깨기
    단순명료함의 원칙은 기업이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빛을 발한다. 첫째로 브랜드 이름은 차지게, 단순하게, 솔직하게 지어야 한다. 물건을 고르고 살 때 제품에 관한 정보를 찾거나 상품 뒤에 붙어 있는 설명을 읽고 구매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자신이 사려는 물건의 효용이나 기능을 대략적으로 알기만 하면 요즘 말로 ‘차진 이름’이나 ‘단순하고 솔직한’ 이름을 가진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다.

    최근 이런 젊은이들의 선호현상을 재빠르게 상품 네이밍에 활용한 패션브랜드 A사 사례를 보자. 먼저 다음에 나오는 네이밍은 기존 패션 제품들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썸플리스 그레이 후드 집업, 스트라이프 블록 배색 레드 카라 티셔츠, 카라 배색 네이비 스트라이프 티셔츠, 네이비 울 투버튼 정장

    패션이나 그 세부 정보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저런 이름이 정보를 주거나 매력적이기 힘들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통해 A사가 내놓은 제품명은 이렇다.

    바지 컬러를 설명할 때 : 불금(불타는 금요일) 와인, 멘붕(멘털붕괴) 옐로, 미존(미친 존재감) 레드 블루 스압(스크롤 압박)

    마찬가지로 화장품업체 B사도 제품 변화 없이 네이밍만으로 대박을 기록했다. 다음은 A사와 유사한 방법을 택한 B사 매니큐어 이름이다.

    비온 뒤 맑음 청록, 깊은 숲속에서 초록, 흐릿한 기억 회색, 다람쥐 점심식사 갈색

    둘째로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톡톡 튀는 젊은이들을 최전선에 배치해야 한다. 앞의 두 회사는 어떤 절차를 통해 제품명을 선정하게 된 걸까. 해당 부서 인터뷰를 읽어보니 역시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신입사원을 마케팅 전략 전면에 과감히 배치했다. 젊은 세대로서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였던 그들의 깬 생각과 아이디어를 과감히 받아들인 것이 성공 요인이었던 것이다.

    셋째로 기존 사고 틀을 깨고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한다. 단순히 제품 네이밍의 히트 하나로 한 기업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시장 성적은 평가할 수 있다. 한마디로 A+다. A사는 2015년 1분기 현재 상장 이후 증권시장에서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고, B사는 2014년 주가가 2배로 올라 상위주에서 가장 큰 수익을 냈다. 과감한 아이디어를 시도해야 과감한 투자를 기대할 수 있고 이는 큰 수익으로 이어진다.

    넷째로 흐름과 심리를 읽어내야 한다. 이들이 단순명료한 네이밍을 전략으로 내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과 구매 대상의 흐름, 심리를 잘 읽었다는 뜻이다. 기업의 명성과 제품 질이 상향평준화된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은 넘치는 정보 홍수 속에서 헤매기 보다 단순명료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자신이 즐겁게 사용하는 언어의 유희와 유행 속으로 함께 들어와 소통하는 기업과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군대 내 단순명료함의 원칙을 패션계에 적용해봤으니 마무리도 패션계 명언으로 하면 괜찮을 듯하다. 세계적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단순명료함은 모든 진정한 우아함의 핵심”이라고 했다. 패션이 예술(art)로서의 우아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전쟁도 ‘술(art)’ 차원에서 단순명료함을 추구한다. 이들은 서로 상통한다. 그래서 ‘손자병법’ 영어제목도 ‘Art of War’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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