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2015.03.30

中 금융굴기 AIIB의 위력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美 금융패권 향한 첫 도전장, 목표는 위안화 기축통화 만들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3-30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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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미국의 글로벌 금융패권을 향한 중국의 도전이 탄력을 받고 있다. 본격적인 신호탄은 올해 연말 출범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 AIIB). 3월 26일 한국도 참여를 결정한 AIIB는 아시아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 대한 사회기반시설 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중국이 제안한 국제금융기구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24일 베이징에서 AIIB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들과 함께 모임을 갖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3월 말 신청이 마감될 AIIB 창립 회원국은 아세안 10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 중앙아시아 국가 등 35개국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도 가입 의사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AIIB는 초기자금 500억 달러로 출발해 자본금을 1000억 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의 AIIB 설립 의도는 무엇보다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 ADB)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1966년 창설돼 그동안 아시아에서 사회기반시설 자금을 지원해온 ADB는 일본과 미국이 각각 1대, 2대 주주로 15.7%와 1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미국의 전폭적인 후원 덕에 초대부터 현재 나카오 다케히코 총재까지 9명의 총재 모두를 배출하면서 ADB를 장악해왔다. 반면 ADB에서 중국의 지분은 6.47%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ADB에서 발언권은 미미한 편이다.

    중국이 만드는 ‘대안의 세계’

    중국은 그동안 ADB는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주요 국제금융기구 측에 자신의 지분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그러자 아예 AIIB를 시작으로 독자적으로 국제금융기구 설립에 나선 것. 실제로 미국은 세계은행과 IMF의 지분을 각각 15.85%, 16.75% 갖고 있다. 개별 국가로는 단연 최대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인, IMF 총재는 유럽인이 독점해왔다. 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4%를 차지하는 중국의 세계은행과 IMF 지분은 각각 4.42%, 3.81%에 불과하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7월 브릭스(BRICS) 5개국의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 NDB) 설립 협정 체결을 주도한 바 있다. 2016년 상하이에서 공식 출범하는 NDB는 자본금 1000억 달러 규모로, 신흥개발국이 참여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중국은 브릭스 회원국과 함께 1000억 달러 규모의 위기대응기금(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 · CRA)도 설립할 계획이다. ‘미니 IMF’라 부르는 CRA에는 중국이 410억 달러, 러시아와 브라질, 인도가 각각 180억 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이 50억 달러를 출연할 예정이다.

    NDB와 CRA는 각각 세계은행과 IMF를 견제하기 위한 금융기구다. 중국의 이러한 도전에 대해 테레사 팔론 유럽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은 대안의 세계(an alternative universe)를 만들어가고 있다”면서 “미국이 구축한 국제경제 질서의 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모두 1944년 7월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협정 이후 탄생했다. 당시 연합국이던 44개국 대표들은 미국 뉴저지 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전후 국제경제 질서 구축 문제를 논의한 끝에 새로운 통화체제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브레턴우즈 협정의 핵심은 금에 미국 달러 가치를 고정(금 온스당 35달러)시키고 각국 통화 가치를 미국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금태환 고정환율제를 실시한다는 것. 이를 감시, 감독하는 기구로 IMF와 세계은행의 창설이 이어졌다. 미국은 71년 금태환 고정환율제 중단을 선언했지만, IMF와 세계은행을 축으로 한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는 지난 70여 년간 유지돼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중국의 의도는 AIIB 창설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부터 미국에 맞서는 강력한 금융 및 경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AIIB가 자본금을 1000억 달러로 늘릴 경우 ADB 자본금(1650억 달러)의 3분의 2 수준에 이르게 된다. 특히 중국은 AIIB를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 · One Belt One Road)라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자금도 조달할 계획이다.

    일대(One Belt)는 ‘신(新)실크로드 경제벨트’로 중국 서북 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대륙과 유럽을 관통하는 육상 무역통로를 말한다. 일로(One Road)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로 중국 동남 연해지역에서 동남아시아, 인도양, 중동을 연결하는 해상 경제 무역통로다. 중국은 일대일로에 있는 국가들에 AIIB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대출해줌으로써 거대한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은 또한 AIIB를 통해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위안화의 국제화를 실현한다는 목표도 추진 중이다. AIIB를 통한 인프라 건설에 중국의 국유기업들이 진출하면 당연히 위안화의 결제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의 무역 결제를 확대하고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등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해왔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위안화의 국제 결제 비중은 2.17%로 세계 5위다. 종전 7위에서 캐나다달러와 호주달러를 제친 것이다. 2012년 20위에 비하면 15계단이나 높아졌다. 중국 런민대 국제화폐연구소는 위안화가 2020년쯤 영국 파운드화나 일본 엔화를 뛰어넘어 달러화, 유로화에 이은 세계 3대 통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5월 IMF 비공식 이사회를 주목하라

    결국 중국의 최종 목표는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것. 중국은 이를 위해 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SDR는 IMF 회원국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로,

    5년마다 4개 통화 시세의 가중평균을 내는 방법으로 가치를 결정한다. 중국은 2010년 11월 IMF에 위안화를 SDR에 집어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IMF는 이를 거부했다. 위안화가 아직은 SDR에 편입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진짜 이유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IMF는 중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5월 비공식 이사회를 열고 위안화의 SDR 통화 바스켓 편입 여부를 검토한 후 올해 하반기 회원국 회의를 통해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IMF 회원국 지분율 85% 이상의 찬성을 얻어내면 위안화는 내년 1월 IMF의 SDR 산정에 포함된다. 중국의 AIIB 창설은 IMF의 SDR 편입 결정을 위한 포석인 셈. 중국의 ‘금융굴기(屈起)’가 브레턴우즈 체제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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