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6

2017.07.12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거짓말은 나와 우리를 파괴한다!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7-07-11 09: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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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는 종종 배운 적도 없는 거짓말을 본능적으로 하곤 한다. 예컨대 아이가 방금 물컵을 깨뜨렸다고 하자. 부모가 혼내려고 할 때 아이는 “제가 안 그랬어요. 물컵이 저절로 미끄러졌어요”라고 거짓말한다. 부모에게 야단맞을까 봐 두려워 거짓 핑계를 대는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한 거짓말도 자주 한다. “엄마, 저 여기 아파요. 호~ 불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는 것이다. 무시당하지 않거나 실제보다 더 강하게 보이려고 거짓말하는 아이도 있다. “우리 집은 100층이야.

    우리 아빠는 키가 2m가 넘어”라고 말하는 여섯 살배기 아이가 그런 예다. 물론 아이의 거짓말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 씨가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의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된 제보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작된 육성 증언 녹취 파일과 카카오톡 화면 캡처 파일이 당에 그대로 보고됐다고 한다. 국민의당은 진상 조사 결과 이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씨는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조작 지시를 내렸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나 안철수 전 대선후보 관련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씨가 진실이 아닌 내용을 허위로 조작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또한 당 차원에서, 혹은 고위층 누군가가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충격은 더 클 것이다. 거짓 누명으로 상대방을 음해해 이익을 누리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도덕적인가, 혹은 얼마나 악한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이다. 문제는 그러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은 나 혹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는 대표적 행위다. 과거 전쟁터에서는 적을 속이고 유인하는 일을 전략 혹은 전술이라 보고, 이를 잘 수행하는 사람을 유능한 인재로 평가했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발전하면서 전쟁 중에도 인도주의에 따라 부상한 적군을 치료하고 민간인 공격을 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이 선거를 마치 전쟁처럼 받아들여 비도덕적 행동을 일삼는 건 매우 유감스럽다. 과정의 공정함과 정직함보다 결과가 좋으면 만사 오케이(OK)라는 식의 발상인 것이다. 실제로 선거에서 여러 위법 사항 때문에 당선이 취소되고 처벌받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짓말의 유혹을 받고 있다. 만일 우리가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의 거짓말을 속상해하며 훈육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어른은 나이가 사십, 아니 오십이 넘어서도 죄의식 없이 뻔한 거짓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사회적·경제적 타격을 주고자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꾸며 모함을 한다.

    과학자 리처드 도킨슨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이론을 통해 동물의 진화와 자연 적응을 설명하고 있다. 한 예로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종달새 둥지에 가져다 놓는다. 종달새는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알을 품고, 새끼가 태어나면 먹이를 준다. 결국 종달새는 뻐꾸기로부터 착취당한 셈이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이기주의를 선택하고, 그것이 유전자를 통해 발현됨으로써 종족이 유지된다고 했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이기주의의 말로는 자기 파멸과 집단에서 소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주의 대신 이타주의를 선택했다. 물론 인류라는 큰 틀에선 또 하나의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차원에서는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거짓말쟁이를 사회적으로 배척하고, 거짓말로 타인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처벌하는 시스템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하지만 인류보다 국가, 국가보다 민족, 민족보다 지역, 지역보다 가족, 가족보다 나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이기주의로 변해 거짓말을 일삼고 타인을 모함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인류 발전은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아지면 대한민국의 발전 역시 물 건너간다.

    그러니 이런 행태와 관련해 사회적 압력 또는 감독 체계를 더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거짓말과 사술이 결코 통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경쟁과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경쟁에 임하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이때 패자는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재도전을 다짐한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면서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아량을 베푼다. 승자와 패자를 지켜보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은 합리적 판단으로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고 적절한 보상과 불이익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잘한 일에는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는 벌을 주는 이른바 ‘상벌체계’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흔히 적용되는 기법이다. 행동치료 과정에서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와 ‘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를 번갈아 사용한다. 현 정권은 국민의 긍정적 강화를 통해 정권 획득 및 높은 국정운영 지지율이라는 결과를 얻고 있다. 과거 정권은 국민으로부터 부정적 강화를 받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라는 처참한 결과를 떠안았다. 이씨의 거짓말 사건으로 국민의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부정적 강화다. 만일 이씨 외 더 많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추가적으로 밝혀진다면 국민은 더욱 가혹한 부정적 강화를 안겨줘 정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거짓말을 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거짓말이 잘못된 행동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 후회해야 한다. 이어 거짓말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고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목각 인형 피노키오가 진짜 소년이 되기를 바랐다. 푸른 요정은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게 만들었다. 피노키오는 마침내 착한 마음을 갖게 됐고,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한 뒤 죽었다. 죽은 피노키오는 되살아나 진짜 사람이 됐다. ‘피노키오’ 동화책을 우리는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국민이다. 피노키오는 정권이다. 푸른 요정은 역사다. 피노키오의 길어지는 코처럼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는 지혜가 국민 가슴에서 피어나길 희망한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를 통해 결국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것 역시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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