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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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끝, IS-알카에다 전략적 제휴

‘서방 공격’이란 대의명분 일치, 사안별로 경쟁과 협력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1-19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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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유대인 식료품점 인질 사건의 범인들이 예멘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AQAP)와 이슬람국가(IS) 소속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두 조직의 협력 가능성이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월 7일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을 공격해 편집장과 만평가, 기자, 경찰 등 12명을 사살한 알제리 출신 프랑스 이민 2세 사이드 쿠아치(34)와 셰리프 쿠아치(32) 형제는 AQAP의 지시로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들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 테러 공격 이후 경찰이 추적해오자 1월 9일 파리 북동부 도시 다마르탱앙고엘의 한 인쇄공장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순교자로 죽겠다”며 항복을 거부하다 사살됐다. 동생 셰리프는 사살되기 전 프랑스 방송 BFM 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AQAP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밝혔다. 형 사이드도 2009년부터 1년간 예멘에서 교육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형제는 또 2011년 7월 오만을 거쳐 예멘에 밀입국해 AQAP 근거지인 마리브 주 사막에서 무기를 다루는 법과 테러 훈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AQAP는 알카에다의 산하 조직 가운데 가장 강력한 테러단체. 알카에다는 200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의 조직을 통합해 AQAP를 만들고 지휘관으로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개인비서였던 예멘 출신의 나시르 알와하이시를 임명했다. AQAP는 2011년 5월 빈 라덴이 사살된 이후에도 알카에다의 이념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후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지시를 따라왔다.

    적대와 협력 사이

    공포의 끝, IS-알카에다 전략적 제휴
    쿠아치 형제가 인질극을 벌이던 시간, 프랑스 파리 동부의 한 유대인 식료품점에서도 인질사건이 발생했다. 세네갈 출신 프랑스 이민 2세인 아메디 쿨리발리(32)는 1월 9일 AK-47 소총을 들고 식료품점을 공격해 손님들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했다. 쿨리발리는 경찰에 “쿠아치 형제를 석방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쿨리발리는 경찰에 사살되기 직전 BFM TV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들은 쿠아치 형제와 함께 계획한 것”이라면서 “쿠아치 형제는 샤를리 에브도를, 나는 경찰관을 맡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쿨리발리는 1월 8일 파리 도심에서 여성 경찰 한 명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쿨리발리는 범행하기 전 촬영한 동영상에서 “나는 IS 지도자인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한다”고 밝혔다.

    1월 11일 공개된 이 동영상을 보면 쿨리발리는 “쿠아치 형제에게 수천 유로의 자금을 지원했다”면서 “알카에다와 IS가 이번 프랑스 연쇄 테러를 벌이는 데 금전적, 전략적으로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쿨리발리의 공범이자 동거녀인 하야트 부메디엔(26)은 터키를 거쳐 시리아로 들어가 IS에 합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국가 정보기관들은 쿨리발리가 AQAP와 IS가 테러에 협력했다고 밝힌 동영상을 보고 일제히 충격에 휩싸였다. IS와 AQAP는 그동안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비판해왔기 때문. 특히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알자와히리는 지난해 2월 IS와 결별한다고 선언했고, 이후 알카에다는 IS가 참수 등 잔인한 수법으로 테러를 자행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AQAP의 지도자급 성직자인 하리스 빈 가지 알나드하리도 지난해 11월 IS 지도자인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칼리프제 국가 건설 선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IS는 지난해 6월 이라크에서 시리아까지 세를 확대하면서 ‘칼리프제 국가’를 선포한 바 있다. IS는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등에서 활동해온 알카에다 연계세력과 조직 및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을 흡수하면서 세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IS는 최근 AQAP가 견고하게 터를 닦아놓은 예멘에 지부를 설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점들로 미뤄볼 때 IS와 AQAP가 프랑스 테러를 합작했을 개연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그간의 주된 평가였다.

    하지만 쿠아치 형제와 쿨리발리의 과거 행적 및 언행을 감안하면 AQAP와 IS가 경쟁관계이면서도 전략적으로 협력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쿨리발리는 셰리프 쿠아치와 함께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에 지원자를 보내는 파리 제19구 네트워크에서 함께 활동했다. 제19구는 파리 동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무슬림 이민자가 많이 살고 있다.

    IS 대원인 쿨리발리는 이러한 친분을 이용해 쿠아치 형제와 테러를 모의했고, 시행 뒤 각자의 조직을 밝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쿨리발리의 동영상을 보면 IS가 사전에 이를 인지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 동영상을 처음 입수한 테러·극단주의 감시단체 시테는 동영상 게시자가 IS와 연계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라고 밝혔다.

    IS 지지 나선 알카에다 핵심

    이렇게 놓고 보면 IS가 쿨리발리에게 쿠아치 형제의 테러를 지원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IS로서는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모욕하고 조롱해온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가들을 살해하는 일이 자신들의 대의명분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프랑스 대테러 전문가 이브 트로티뇽도 “과거 알제리 과격단체들이 국내에서는 서로 피의 보복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프랑스에서 벌이는 테러에는 공조한 일이 있다”면서 “알카에다와 IS의 공동대의는 같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IS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다음 날인 1월 8일 쿠아치 형제를 ‘영웅’이라고 극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두 조직은 현재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서방을 적으로 삼고 이를 공격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내왔다. AQAP는 지난해 10월 IS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대항하는 전투에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서방의 대테러 전문가 가운데 일부는 ‘IS-알카에다 연맹’이 이미 형성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IS는 석유 밀수출 등으로 풍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AQAP처럼 서방 각국에 심어놓은 ‘휴면세포(sleeper cell)’ 조직원은 없다. 그 때문에 IS의 의도는 AQAP의 조직원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세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AQAP 조직원 중 상당수는 이미 IS를 지지하고 있다. 알와하이시와 알나드하리 등 지도부는 IS를 적대시하지만, 성직자인 마모운 하템을 비롯해 많은 조직원이 IS에 가담하고 있다. 현재 알자와히리가 인정한 알카에다 산하 및 연계단체는 AQAP와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AQIM), 소말리아를 중심으로 한 알샤바브, 시리아의 알누스라 전선뿐이다. 반면 IS는 갈수록 세가 확대되고 있다.

    IS는 지난해 11월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활동하는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ABM)의 충성맹세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활동을 확장했다. ABM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의 권력 공백기를 틈타 생긴 조직으로, 현재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테러 조직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ABM은 현재 IS의 시나이 지부가 됐다.

    알카에다의 주요 인물들도 IS에 가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시리아계 독일인인 무함마드 하이다르 잠마다. 잠마는 1996년 빈 라덴의 요청으로 독일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알카에다의 모집책을 담당했다. 9·11 테러를 모의한 ‘함부르크 그룹’을 빈 라덴에 소개한 것 역시 잠마다. 그는 지난해 IS에 투신했다.

    ‘외로운 늑대’가 몰고 온 공포

    오랫동안 알카에다와 강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인도네시아 테러단체 제마 이슬라미야(JI)를 창설한 아부바카르 바시르도 IS 지지를 선언했다. 자메이카 국적으로 알카에다 지지자들의 온라인 모임인 ‘혁명 무슬림’의 정신적 지도자인 압둘라 파이잘도 IS의 지지자를 자처하고 있다. 알카에다의 홈그라운드인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도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IS 지지를 표방하고 나섰다.

    특히 IS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는 외국인 출신 전사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IS에는 최소 80개국 출신의 외국인 전사 1만5000여 명이 가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방 출신이 최소 3000여 명에 달한다. 프랑스인 1200명, 영국인 600명, 독일인 550명 등이다. 유럽 경찰기구 유로폴(Europol)의 롭 웨인라이트 국장도 시리아 등의 지역을 출입한 경험이 있는 서방 출신 전사가 3000~5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본국으로 돌아가 IS를 위해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지하드 리터니(Jihad Returnee)’로 불리는 이들은 각종 테러 훈련과 함께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매우 위협적인 ‘인간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S는 또 ‘외로운 늑대(Lone Wolf·자생적 테러리스트)’의 테러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선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호주 시드니의 카페 인질 사건의 만 하론 모니스를 비롯해 지난해 10월 캐나다에서 군인을 치고 달아난 마르탱 쿠튀르 루로, 오타와 의회 총격사건의 마이클 지하프비보, 미국 뉴욕 손도끼 사건의 제일 톰슨 모두 IS가 테러를 부추긴 ‘외로운 늑대’였다. 프랑스 테러 공격이 IS와 AQAP의 전략적 제휴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해도, 앞으로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할 테러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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