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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의사가 죽음 이해 없이 환자 돌볼 수 있나요?”

인터뷰 | 유은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

“의사가 죽음 이해 없이 환자 돌볼 수 있나요?”

“의사가 죽음 이해 없이 환자 돌볼 수 있나요?”
한국 사회에서 어른이 자신의 나약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저명한 의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유은실(57·사진) 울산대 의대 병리과 교수는 특별한 사람이다. 질병과 최전선에서 ‘맞서 싸워온’ 병리과 의사가 “나는 사실 죽음이 두렵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의대 교과에 죽음에 대한 강의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울산대 의대가 4학년 학생들에게 국내 최초로 ‘죽음학’을 강의하도록 한 주역이며, 이 과목을 다른 대학에 확산하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기도 하다. 그에게 “왜 병리학자가 죽음학 강의에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냐”고 물었다. 유 교수는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의사에게 죽음에 대한 고민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출발점은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였다. 그는 열 살 무렵, 장례식장에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여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바쁜 일상에 쫓겨 잊고 지내던 이 공포의 감정은 병리전문가이자 대학교수로 평탄한 삶을 살던 어느 날, 불쑥 다시 유 교수를 찾아왔다.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서리를 친 어느 날의 경험에 대해 들려줬다.

“혼자 몸을 떨다가 남편에게 ‘나 갑자기 죽음이 너무 무서워’라고 했어요. 남편이 무슨 소리냐며 당황해하더군요. 오랜 세월 병균을 연구하고, 시신을 부검하며 살아온 사람이 돌연 ‘사람은 왜 죽는 거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물으니 기가 막혔겠죠.”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병리과 의사는 환자의 조직이나 세포를 검사해 질병을 진단한다. 사망자를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것도 병리과 의사의 몫이다. 임상과 의사가 청진기를 들고 환자를 만나듯, 병리과 의사는 현미경을 통해 세균과 마주하고 부검실에서 주검과 만난다. 유 교수도 그랬다. 병리과 전공을 택한 뒤부터 줄곧 그는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헤집으며 죽음의 기원을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그토록 익숙하던 죽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 순간 제가 늘 죽음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의대에 다니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은 기억도 없다는 걸 깨달았고요.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 교수는 그때부터 길을 걷다가도, 연구실에 앉아 있다가도 자신도 모르는 새 죽음에 관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던 2005년 6월, 전기가 찾아왔다. 한 신문에서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가 주도해 ‘죽음학회’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본 것이다. 그는 이 모임에 찾아갔다가 대학 선배이면서 역시 죽음에 대한 고민을 품고 살던 정현채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와 조우했고 두 사람은 곧 함께 죽음 공부에 뛰어들었다.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미국에서 죽음학 교과서라고 부를 만큼 널리 읽히는 책 ‘The Last Dance:Encountering Death and Dying’(한국에서 ‘죽음 : 인생의 마지막 춤’(창지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 출간)을 찾아 읽었고,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학술서적, 신화, 문학, 그림, 음악, 영화 등에 담긴 죽음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죽음을 직시하면서 유 교수는 자신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죽음이 뭔지는 알지 못해요. 두려운 마음이 다 사라진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 그건 결코 불행하거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모두에게 다가올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죠.”

그렇게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인정하고 나니 하루하루의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생물과 다른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아가 의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터부를 없애야 한다는 깨달음도 찾아왔다.

의사 대상으로 죽음학 강의 준비

“의사가 죽음 이해 없이 환자 돌볼 수 있나요?”

죽음 준비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을 촉구하며 최근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를 공동으로 펴낸 정현채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 김건열 전 서울대 의대 교수, 유은실 울산대 의대 병리과 교수(왼쪽부터).

“의사는 기본적으로 죽음을 싸움 대상으로 여기는 면이 있어요. 환자의 죽음은 곧 의료 실패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하려 하죠. 웬만하면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하지만 그런다고 죽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환자는, 그리고 모든 의사도 결국엔 죽게 마련이에요.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의사가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환자를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 교수가 의대 교과 과정 내 죽음학 강의 개설에 두 팔 걷고 나선 이유다. 그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인 만성질환자가 늘어나면서 의사들이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최근 번역 출간한 책 ‘나의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허원북스)를 소개했다. 이 책에서 미국의 노인의학 전문의인 저자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는 최신 기술과 빠른 대처를 미덕으로 삼는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 이른바 ‘패스트 메디신(fast medicine)’에서 벗어나야 한다. 천천히 깊이 생각하고 최선의 방법 으로 신중히 대처하는 ‘슬로 메디신(slow medicine)’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사람 다리가 부러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패스트 메디신은 가능한 한 빨리 다리를 붙이는 데서 끝난다. 그러나 노인의 경우엔 뼈를 붙이는 것 못지않게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근력 약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치료 방향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게 바로 슬로 메디신”이라며 “특히 환자가 노화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경우 의료진이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의사가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지난해와 올해 진행한 울산대 의대 죽음학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유 교수는 “학생들끼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이라고 본다”며 “병원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도록 계속 노력도 할 생각이다. 당장 내년 봄 의사를 대상으로 한 죽음학 강의를 운영하려고 한창 프로그램을 구성 중이다. 유 교수의 바람은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언젠가 명료하게 깨어 있는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낄지라도, 그 아픔을 또렷이 인식하며 죽음의 과정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죽음이 과연 뭔지, 지금도 참 많이 궁금하거든요”라며 빙긋 웃는 그의 눈이 장난꾸러기처럼 반짝였다.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최선의 죽음 준비라고, 그의 웃음이 말하는 듯했다.



주간동아 2014.12.08 966호 (p32~33)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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