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2014.10.27

내우외환 아베, 지지율 하락

각료 동시 사퇴·납북자 재조사 잇단 궁지에 몰려 ‘한숨’

  •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입력2014-10-27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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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0일 일본 도쿄 총리공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다테 주이치(伊達忠一·자민당) 참의원 간사장 등과 저녁식사를 하며 “참의원에는 논객이 많아 까다로운 질문도 많다. 어떻게든 (참의원 심의를) 하루에 끝내달라”고 부탁했다. 또 심의 때 주제와 상관없는 각료의 불상사 등을 추궁당할 때가 많다는 의견도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10월 21일 이 같은 내용을 전하며 “아베 총리의 보기 드문 ‘약한 소리’”라고 평가했다.

    일본 국민은 아베 총리의 두 가지 얼굴에 익숙하다. 외국 인사의 예방을 받거나 행사에 참석했을 때는 웃음을 가득 띤 채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국회에서 야당 대표와 논쟁을 벌이거나 기자회견을 할 때는 입을 꼭 다문다. 자신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지향하는 정치인상으로 밝혔던 ‘싸우는 투사’ 이미지다.

    하지만 최근 기운이 빠진 낯선 모습이 자주 보인다. 왜일까.

    여성 숫자에 집착, 21년 만의 불행

    10월 20일 오부치 유코(小淵優子·여) 경제산업상과 마쓰시마 미도리(松島みどり·여) 법무상이 동시에 사퇴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자기 선거구인 군마(群馬)현 유권자들에게 약 5300만 엔(약 5억2500만 원)의 공연 관람비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자신의 선거구에서 열린 축제 때 부채 2만1980개를 돌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결국 둘은 ‘사퇴’를 선택했다.



    물론 각료 사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그 성격과 파장이 다르다. 2012년 12월 아베 내각이 들어선 이후 각료가 사퇴하기는 처음. 9월 3일 개각 전까지만 해도 낙마는커녕 교체된 인물조차 없었다. 각료 2명이 동시에 사퇴한 것도 충격적이다. 동시 사퇴는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 이후 처음이다.

    아베 내각의 각료가 동시 사퇴에 내몰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문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아베 총리의 무리한 욕심이 배경에 있었다. 아베 총리는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개각 전인 올해 8월 “여성 각료를 최대로 만들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당시 아베 내각의 여성 각료는 2명. 9월 3일 실시한 내각 개편에서 아베 총리는 여성 각료 5명을 기용했다. 조각을 끝낸 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 여성 각료들이 아베 총리 주위를 둘러쌌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하지만 여성 숫자에 집착하다 보니 인선을 엄격히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야당과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과 마쓰시마 법무상 모두 정치자금 문제와 연관돼 있는데, 이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과거 ‘단명 정권’의 교훈도 영향을 미쳤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 처음 총리에 올랐지만 1년 만에 물러났다. 재임 동안 각료 5명이 낙마했고 그때마다 지속적으로 야당 공격에 시달렸다. 지지율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이번에도 각료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나자 아베 총리는 과거 경험에 기초해 서둘러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사퇴한 각료가 억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야당은 유권자에게 부채를 돌린 것은 공직선거법이 금지한 ‘기부’에 해당한다며 마쓰시마 법무상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마쓰시마 법무상은 국회에서 “부채는 한 번 사용하고 버리므로 돈의 가치가 없다. 또 지역 유권자의 관심이 높은 내용을 (부채에) 인쇄해 토의자료로 돌린 것이라 기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10월 20일 사퇴 기자회견에서는 “부채를 나눠준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아베 내각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억울하지만 아베 총리의 뜻에 따라 물러난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여당의 불행은 야당의 기쁨이다. 지금까지 자민당 1강 체제에 주눅 들어 있던 일본 야당은 모처럼 공격 기회를 잡았다. 제1 야당인 민주당 등 7개 야당은 각료가 동시 사퇴한 당일 아베 총리의 책임을 추궁하고 사퇴한 각료가 국회에 출석해 설명할 것을 요구하기로 합의했다.

    문제 여지가 있는 각료에 대해 추가 공격에도 나설 태세다. 특히 정치자금 보고서를 고친 에토 아키노리(江渡聰德) 방위상, 지역구 안의 노인 요양시설 개설을 허가해준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후생노동상, 축산 단체로부터 헌금을 받은 니시카와 고야(西川公也) 농림수산상 등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처음부터 북한에 이용당했다”

    각료의 동시 사퇴 문제만 불거졌다면 아베 총리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납북자 재조사 문제도 그를 괴롭히고 있다. 7월 3일 북한은 납북자 재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일본은 대북 독자제재 일부를 해제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은 늦여름 혹은 초가을에 1차 조사 결과를 일본에 통보하기로 했다.

    북·일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일본 정치권에선 아베 총리의 방북설이 흘러나왔다. 1차 조사 결과를 들으러 아베 총리가 직접 평양에 간다는 시나리오였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필생 과업’으로 삼고 있는 아베 총리로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아베 총리가 정부 전용기로 북한에 가는 예행연습까지 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북한은 10월이 되도록 1차 조사 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북·일 관계에 정통한 일본 학자는 “아베 총리가 북한에 이용당했다. 생존해 있는 납북자는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납북자 재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혀 대북제재 해제라는 과실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10월 27~30일 납북자 재조사를 점검할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일본의 ‘납치피해자 가족회’는 반대하고 있다. 대표단이 방북해 북한의 납북자 재조사 과정을 점검해버리면, 향후 북한이 신뢰성 없는 조사 결과를 내놔도 제대로 반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로선 선택 여지가 없다. 지금 일본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으면 북한의 납북자 조사는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크다. 북한에 속을 위험은 있지만 대표단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북한의 재조사 결과 생존 납북자가 없다면? 아베 총리는 ‘북한에 농락당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내우외환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전부터 아베 내각 지지율은 이미 하락 국면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산케이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10월 18, 19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53.0%로 한 달 전 조사 때보다 2.7%p 떨어졌다. 교도통신과 NHK가 비슷한 기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그 전달보다 각각 6.8%p, 6%p 빠졌다. 각료 동시 사퇴와 정부 대표단의 북한 파견 성과가 알려질 11월 조사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 아베 총리로서는 여러모로 고심이 클 수밖에 없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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