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0

2014.10.27

“간판…계단…위험 알면서 무시 의도적 안전불감증 심각”

인터뷰 |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 조영실 객원기자 esperanza0738@gmail.com

    입력2014-10-27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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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계단…위험 알면서 무시 의도적 안전불감증 심각”

    10월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시민 50여 명이 환풍구 위에 올라서서 포미닛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왼쪽).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조사를 위해 10월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사고 현장에서 크레인으로 환풍구 하중실험을 하고 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에 명시된 사항이다. 헌법에 안전에 관해 명시한 나라는 전 세계 5개국에 불과하다. 나는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한국방재안전학회 고문)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안전할까. 10월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몰 야외 공연장에 설치된 환풍구 덮개가 부서지면서 27명의 구경꾼이 18.7m 아래 지하주차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은 또 한 번의 대형 참사였다.

    조 교수의 금과옥조로 해석하면 우리나라는 ‘헌법이 무색한’ 안전 사각지대다. 더욱이 올해는 서울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해.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부와 기업, 시민의 안전의식엔 변화가 없다. 세월호 대참사로 ‘대한민국 안전제일’을 부르짖은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반면교사는 되지 못했다. 한국방재안전학회(방재학회)의 큰 어른인 조 교수에게 왜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지 그 이유와 대책에 대해 들어봤다. 조 교수는 “환풍구 외에도 우리 생활주변에는 대형 참사를 일으킬 만한 시설이 산재해 있다”고 말한다.

    ▼ 환풍구 붕괴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나.

    “사고가 난 시설이 흡기구인지 배기구인지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시공사와 건물주는 건축구조 기준은 충족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판교테크노밸리 축제를 실질적으로 주관한 이데일리의 책임이 크다. 애초 공연은 환풍구가 무대 뒤쪽에 위치하도록 계획돼 소방서가 사전 안전점검을 실시했을 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행사 당일 환풍구가 무대 왼쪽 앞에 놓이면서 사람들이 그 위로 올라가 문제가 된 것이다. 무대 위치를 변경하면서 안전점검을 다시 하지 않은 것은 주관사 잘못이다. 또한 사전에 안전요원 4명을 배치하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단 1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환풍구 외 참사 유발 시설물 산재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의원(국토교통위원회)은 국토교통부령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23조 3항 1호에 명시된 ‘배기구의 높이는 도로면으로부터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할 것’이라는 규정을 유스페이스몰 건설사인 포스코건설 측이 위반했다고 밝혔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환풍구를 건축물 환기구조물 중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지붕으로 봐 100kg/㎡를 견디는 구조로 설계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공사인 포스코건설 측은 “2009년 착공 당시 환풍구의 활하중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고 맞서면서 “현재 사고가 난 시설은 흡기구로 알고 있어 배기구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는지는 조사해봐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 미비한 시설물 설치 규정이 문제 아닌가.

    “환풍구를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지붕으로 보고 100kg/㎡를 견디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는 규정(국토교통부 주장) 역시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성인 2명의 무게만 해도 100kg이 넘는다며 기준이 지나치게 미흡하다고 지적하는데, 애초 환풍구는 사람이 올라가서는 안 되는 시설이다. 환풍구 주변에 울타리 등 진입 차단 시설이나 추락 방지물, 접근 제한 경고문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그래서 주관사 책임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 어쨌든 현재 환풍구 구조에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상적인 환풍구 모습은 유도관을 5m 이상으로 해 공기를 높은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것이다. 그래야 냄새가 나지 않고 보행자 안전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 같은 모습으로 서울 종각역에 설치된 환풍구의 경우 도시 조형물 구실까지 겸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예산문제, 주변 건물 간 조망권 문제로 관련자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망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려진 건물의 광고탑 형태로 환풍구를 만드는 등의 대안이 있다.”

    이번 사고를 보면 안전요원이 없는 가운데 “환풍구에서 내려오라”고 3번이나 경고 방송을 했지만 사람들이 이를 무시했다. 문제는 일반 시민과 정부, 지자체, 안전당국 누구도 환풍구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시민이 안전하게 길 위를 다닐 수 있는 보행권이 없다. 나는 12년 전부터 환풍구 안전 규정을 법에 반영해달라고 각 지자체에 요구해왔다. 관계 공무원들은 환풍구 등 도시 시설물의 위험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누군가 나서서 하기 전까지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의도적인 안전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가 샘플을 만들어 선도하면 나머지 지자체에서도 따라 할 것이다.”

    ‘내 안전 내가 지킨다’ 주인 의식 필요

    “간판…계단…위험 알면서 무시 의도적 안전불감증 심각”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 이번 사고의 경우 관련 행정부처만 3곳이다. 부처 간 소통 부족이 문제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여러 행정부처가 협력하는 것은 오히려 효율적이다. 구제역이 발생할 경우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무기관이지만 경찰청이 교통을 통제하고 국방부 방재대대에서 살처분한다. 재해재난을 관리하고자 여러 부서가 관계돼 있다. 이처럼 필요에 따라 협력하고 평시에는 각자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기능적 통합관리 행정’이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부처 간 구조가 수직적이라는 데 있다. 안전관리 행정에는 기능적 통합관리 행정이 횡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 안전 관련법 규정이 보수, 유지 등 사후관리를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이후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함께 한국시설안전공단을 설립해 시설물의 안전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1년 동안 실제로 행하는 업무량은 많지 않다. 이번에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 그 안으로 편입돼 인력과 예산이 2배가 될 것이다. 그러면 1년 내내 국가 시설물을 점검하고 국가기관 시설물 관리 전문기관 137곳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계획하고 있다.”

    ▼ 환풍구 외에 안전관리가 시급한 생활 시설에는 무엇이 있나.

    “간판이 특히 위험하다. 태풍 등 강한 바람이 불면 간판이 떨어질 위험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입간판이 많은데 이는 바람에 더 취약하다. 밤만 되면 도로에 설치되는 이동식 간판 역시 대부분 불법 시설물이지만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바닥에 전깃줄이 연결된 입간판은 비가 올 경우 감전 위험도 크다.”

    ▼ 계단은 어떤가.

    “계단의 경우 건물 주이용자의 연령 등에 따라 계단 높이를 다르게 만드는, 즉 계단 높이에 대한 표준화 규정이 없다. 그러나 표준화 규정이 없다는 점 때문에 사용자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가파르거나 폭이 좁게 만든 계단이 많다.”

    ▼ 안전불감증이 국가, 기업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재난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다들 책임자 물색에만 혈안이 된다. 어쨌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몫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시민들이 자발적인 도네이션(donation)을 통해 시설 안전에 투자한다. 법을 탓하기 전에 법 개정을 촉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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