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2

2014.08.25

거의 정해진 회화 문제 막상 공부하니 진짜 어려워

스페인어 B2 등급 도전, 깔끔하게 성공 열망에 시험 스트레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08-25 10: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거의 정해진 회화 문제 막상 공부하니 진짜 어려워

    김원곤 교수가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사용한 참고서적들.

    2011년 11월 13일 프랑스어 능력 평가시험을 끝낸 후 바로 스페인어 델레(DELE) 시험 일정을 알아봤다. 그런데 ‘2012년 이른 봄쯤엔 있겠지’하는 막연한 예상을 깨고 2012년 첫 시험이 5월 26일과 27일에 걸쳐 시행되는 것으로 일정이 나와 있었다.

    뜻하지 않게 반년이 넘는 시험 준비 기간이 주어지자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도전 등급을 B1이 아닌 B2로 해야겠다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주어진 셈. B2는 특별한 이력이 없는 일반 스페인어 학습자가 지원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라 할 수 있다.

    합격률 가장 낮은 말하기 부분

    일단 B2로 도전 등급을 정하고, 11월의 나머지 날 동안 스페인어 문법책을 가볍게 훑어봤다. 한편으론 서점에 들러 B2 등급에 해당하는 참고서를 구매해 독해 부분부터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독해만 놓고 보면 합격 가능성이 충분할 것 같았다. 역시 문제는 듣기와 말하기였다.

    12월 접어들어 스페인어 전문학원을 찾았다. 시험준비반은 이듬해 1월부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12월 한 달도 자습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해야 했다. 2012년 1월이 되자마자 바로 시험준비반에 등록했다.



    수업은 화요일과 목요일 각 2시간씩 한 달에 총 8회 진행됐다. 수업 방식은 매주 화요일은 한국인 여강사가 문법을 중심으로 듣기, 쓰기를 포함한 강의를 하고, 목요일은 스페인 원어민 강사가 배점이 가장 높은 반면 합격률이 가장 낮은 말하기 부분을 담당하는 형식이었다. 30대 초반 한국인 여강사는 멕시코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사람으로, 강의 경험이 많은 데다 특유의 발랄함과 박진감 넘치는 강의로 수업 집중도를 높였다. 원어민 강사도 관련 강의 경험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두 달 과정을 끝내고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실전시험 문제를 다루는 수업에 들어갔다. 강사들은 동일했다. 수업 시간은 문법·어휘, 작문, 독해, 청취를 아우른 한국인 여강사의 강의가 주 1회에서 2회로 늘어났다. 회화 수업을 포함하면 화, 목, 금 매주 사흘을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꼬박 두 시간씩 학원에서 치열하게 시험공부를 한 셈이다.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회화 수업은 정해진 문제 풀을 가지고 공부하는 형식이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2012년 당시만 해도 회화 시험의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여러 해 동안 같은 자료들을 이용한 시험이 반복되다 보니, 시험에 출제되는 주제가 이미 대부분 노출돼 있다는 것이었다.

    회화 시험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 부분은 4칸짜리 만화를 보면서 관련 정황을 스페인어로 설명한 뒤 시험관과 함께 롤플레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두 종류의 만화가 제시되는데, 수험생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면 된다. 두 번째 부분은 주제 발표로, 제시된 3개 주제 가운데 하나를 수험생이 골라 10분 정도 준비 시간을 가진 뒤 시험관 앞에서 그 주제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발표하는 형식이다. 세 번째 부분은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험관과 토의하는 과정이다.

    총 10종류의 4칸짜리 만화와 12가지 발표 주제는 앞서 말한 대로 거의 공개가 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은 시험관들도 익히 알고 있어서 단순히 예상 답안을 달달 외워 말하는 수험생을 가려내려고 그들 나름대로 애를 쓴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런데 직접 시험공부를 해보니, 비록 주제가 거의 공개돼 있다 해도 정작 그 범위 안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어떤 측면에선 주제를 공개한 것이 오히려 말하기에서 학생들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객관식 문제나 주관식 문제를 미리 안다면 그 답만 달달 외울 수 있겠지만, 어떤 주제를 놓고 A4 용지 한 장 가까운 분량을 몇 분간 발표할 때는 단순히 외운다는 표현이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발표 주제만도 12가지에, 4칸짜리 만화도 10종류나 되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자기 혼자만 시험 주제들을 안다면 모르겠지만 모든 수험생이 다 알고 있다면 이 또한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어떤 주제가 나올지 몰라 뜬구름 잡듯이 막연하게 공부하는 것보다 이렇게 정해진 범위 내에서 공부하는 것이 학습 동기 고취에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시험에 나오는 예상 주제를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공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틀에 걸친 시험 응시료 비싼 편

    거의 정해진 회화 문제 막상 공부하니 진짜 어려워
    어쨌든 이렇게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5월 말 시험날이 가까워졌다. 모든 시험에는 언제나 일정 정도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앞선 세 번의 시험에서는 떨어져도 무슨 큰 문제이겠느냐는 심리적 방어막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대장정을 깔끔한 성공으로 마무리했으면 하는 열망이 더 강했다.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치르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원서접수는 사전에 경기 용인시에 있는 경희대 국제캠퍼스 세르반테스 교실(‘아울라 세르반테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했다. 응시 원서 1부, 신분증 사본, 그리고 응시료 입금확인증을 스캔해 보내게 돼 있었다. 그런데 원서접수를 한 뒤 접수 확인 e메일이 오지 않아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담당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그런 식의 행정 시스템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델레 응시료가 상당히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틀에 걸친 시험 일정과 시험관과의 직접 대면을 통한 회화 시험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같은 형식의 프랑스어 델프 시험과도 제법 차이가 났다. 프랑스어의 경우 응시 당시인 2012년을 기준으로 B1 13만5000원, B2 16만5000원인 데 비해 스페인어 B1 등급은 21만 원, B2 등급은 23만5000원으로 그 차이가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이마저도 2014년 B1 22만5000원, B2 25만 원으로 좀 더 올랐다고 한다. 한 번에 붙기도 어려운 시험이라 특히 학생 처지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다. 구체적인 응시료 산정 기준은 알 수 없으나 아무쪼록 합리적으로 산정한 비용이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