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2014.07.14

“자전거로 3000~3500km 여행 온몸으로 일본과 부딪쳐보고 싶어”

큰맘 먹은 일본 ‘피스 라이딩’ 가족 반대…우여곡절 끝 일본 도착 첫날부터 녹초

  • 장원재 동아일보 기자 peacechaos@donga.com

    입력2014-07-14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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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로 3000~3500km 여행 온몸으로 일본과 부딪쳐보고 싶어”

    큰맘 먹고 시작한 일본 자전거 여행. 출반 전부터 해결할 난제가 많았다.

    “온몸으로 일본과 부딪쳐보고 싶어서….”

    동료 기자가 왜 일본을 자전거로 여행하느냐고 물었을 때 내놓은 답이다.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만 9년 동안 현장을 뛰었다. 반복되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가는 걸 느꼈다. 취재원과의 잦은 술자리 탓에 뱃살도 붙어났다. 결혼하고 아들이 태어나면서 가뜩이나 적었던 운동 횟수는 더 줄었다.

    그러던 중 회사의 배려로 1년간 일본 연수 기회를 얻었다. 와이프 직장 때문에 아쉽지만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한밤중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나왔을 때 문득 자전거 여행이 생각났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전거가 나를 찾아온’기분이었다.

    # 가깝고도 먼 나라 ‘라이딩’



    기자는 발로 뛰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근력을 써야 할 일은 거의 없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전화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는 정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모험을 하거나, 스릴 넘치는 매일을 보내는 기자도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여행과 모험, 신체적 한계를 이겨낸 후 얻는 성취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자전거 여행을 떠올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자전거 여행을 떠올리고는 흥분해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몸으로 부딪칠 대상이 일본이라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친숙하지만, 과거사를 생각하면 속이 부글거리는 애증의 대상이다. 특히 최근 양국 정부의 냉랭한 관계는 민간 차원의 활발한 교류마저 위축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담을 쌓고 살면 좋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양국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이웃끼리 등지고 사는 것이 편할 리 없다.

    그러면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적대적 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에게 맡겨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분야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려는 의지를 관계 회복의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자전거 여행의 테마를 ‘피스 라이딩’으로 잡은 것도 양국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양국 국기를 자전거에 부착했고,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만큼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전단지도 만들었다. 자전거 여행의 루트도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장소를 지나도록 짰다.

    첫 과제는 여행에 적합한 자전거를 고르는 것이었다. 옆 동네에 가는 게 아닌 만큼 신중하게 지인들의 조언을 들었고 인터넷을 탐색했다. 산악자전거(MTB), 로드바이크, 하이브리드, 투어링 바이크, 미니벨로(바퀴가 20인치 이하인 소형 자전거), 전기자전거…. 철티비(철로 만든 저가 산악자전거)만 타던 내게 낯선 명칭들이 쏟아졌다.

    보통 ‘사이클’이라 부르는 로드바이크는 속도는 빠르지만 바퀴가 얇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없어 장거리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비포장도로가 많으면 바퀴가 넓고 충격 흡수용 서스펜션을 잘 갖춘 MTB가 좋지만 속도를 내기 어렵고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투어링 바이크는 장거리 여행에 특화한 자전거다. 로드바이크보다 바퀴가 넓고 프레임이 튼튼해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 서스펜션은 없는 경우가 많지만 MTB보다 속도가 빠르고 랙(짐받이), 패니어(짐 가방), 머드가드(흙받기) 등을 쉽게 설치할 수 있다. 고민 끝에 일본에서 주로 국도를 달린다는 점을 감안해 투어링 바이크로 결정했다. 그 안에서는 대만 브랜드를 골랐는데, 가격이 100만 원 안팎이어서 상대적으로 착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5월 중순 매장에서 처음 만난 자전거는 세련되진 않았지만 실용적인 인상을 줬다. 안장에 앉으면 당장이라도 질주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었다. 신용카드로 계산한 뒤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지만 걸림돌은 아직 많았다.

    “자전거로 3000~3500km 여행 온몸으로 일본과 부딪쳐보고 싶어”
    # 가족 설득, 라이딩 연습, 동행 찾기…

    먼저 가족의 반대에 부딪쳤다. 와이프는 “왜 위험한 일을 사서 하느냐”며 손사래를 치며 반대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만나는 친구와 친척들도3000~3500km를 자전거로 여행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자전거 용품이 하나씩 집으로 배달될 때마다 눈치가 보였다. 주말에 자전거 연습을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아버지나 남편 없이 지내야 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와이프의 말이 맞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전거 여행에서 다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가족의 동의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웠다’던 한 여행자의 말이 생각났다.

    간곡히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 여행이라고 위험한 건 아니다, 미국을 자전거로 횡단한 선배 기자도 있다, 매일 페이스북에 소식을 남기겠다…. 결국 와이프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물러섰다.

    체력을 기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처음 자전거를 타니 30분도 안 돼 숨이 차고 엉덩이가 아팠다. 집(문정동) 근처에 있는 탄천을 거점으로 조금씩 활동 범위를 늘렸다. 여의도,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아라서해갑문…. 복장이 자유로운 휴일엔 집에서부터 회사(광화문)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 100km 이상을 달릴 수 있게 되기까지 한 달가량 걸렸다. 중간에 몇 차례 나동그라졌지만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은 생겼지만 장거리 여행을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다. 일정, 예산 등 조건을 제시하고 댓글을 기다렸다. 다행히 수차례 국토종단 경험이 있는 아저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이가 열 살 연상인데 자영업자라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했다. 만나서 몇 차례 같이 라이딩을 했다. 가족끼리도 만나 밥을 먹었고, 만약에 대비해 와이프끼리 연락처를 교환했다.

    자전거 여행을 결심하기 전 자전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정도였다. 노련한 동행이 생겼지만 모든 것을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자전거를 구매한 곳으로부터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수업을 개설했다는 연락이 왔다.

    # 마지막 난관, 자전거 포장과 운반

    “자전거로 3000~3500km 여행 온몸으로 일본과 부딪쳐보고 싶어”

    앞으로 3000km를 함께할 투어링 바이크.

    수강생은 대부분 자전거 세계여행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3년간 자전거 세계일주를 떠난다는 부부, 3개월 동안 미니벨로로 일본을 여행한 정보기술(IT) 전문가 등이 모여 함께 수업을 들었다. 페달을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부터 펑크가 났을 때 어떻게 수리하는지, 변속 불량을 점검하고 이상을 바로잡는 방법, 체인을 끊고 잇는 요령, 브레이크 고장을 고치는 방법 등 배울 것은 한도 끝도 없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컸다. 기계치에 가까운 나였지만 배운 대로 하니 신기하게도 자전거가 말을 듣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기술 수업을 들은 지 거의 20년 만에 손에 오일을 묻히고 땀을 흘리며 기계를 만지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장갑을 끼고 자전거 앞에 달라붙어 있었다. 페달링 효율을 높이려고 클릿(페달과 신발을 연결하는 장치)도 달았다.

    마지막 난관은 자전거를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비행기에 실으려면 규격에 맞는 박스에 넣어야 했다. 전화해보니 항공사 담당자는 가로세로 높이를 합쳐 203cm 이상인 수하물은 싣지 못하게 돼 있다고 했다.

    배운 대로 앞바퀴를 분리하고 안장을 떼어낸 뒤 박스에 넣으니 가로 130cm, 세로 20cm, 높이 80cm가 됐다. 합치면 230cm였다. 부랴부랴 인천국제공항의 항공사 카운터에 전화해 약간 넘는 정도는 봐주겠다는 답변을 듣고서야 안도했다. 다른 필요 물품들은 미리 포장해 일본에 사는 선배 집에 부쳤다.

    출발 당일 소형차 뒷좌석을 접어 자전거 박스 두 개를 넣은 뒤 조심조심 운전해 공항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수하물 위탁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추가 요금도 내지 않았다. 와이프와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

    일본 나리타국제공항에 도착해선 자전거를 든 채 지하철을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느라 애먹었다. 지하철은 그렇다 쳐도 역에서 1.2km 떨어진 숙소까지 오느라 진이 다 빠졌다. 15kg 무게도 그렇지만, 사람과 맞먹는 박스 크기 때문에 어떻게 들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50~100m마다 쉬면서 숙소에 도착해 자전거를 방에 들여놓자마자 몸이 자동으로 침대로 향했다. 피곤이 밀려왔다. 자전거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일본, 알고 보면 긴 나라

    본토 최북단~최남단 약 3000km…40~50일 넉넉한 일정


    “자전거로 3000~3500km 여행 온몸으로 일본과 부딪쳐보고 싶어”

    3000km에 이르는 예상 종단 루트.

    일본은 긴 나라다. 본토 최북단 소야곶에서 최남단 사타곶까지 거리가 약 3000km에 달한다. 이는 오키나와 등 남쪽 열도는 제외한 것이다.

    비슷한 거리를 세계 다른 지역에 대입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벨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를 지나 유럽 끝인 터키 이스탄불까지 갈 경우 그 거리가 약 3000km이다.

    참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500km가 채 안 되고, 신의주에서 부산까지도 1000km가 안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세계에서 가장 길쭉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칠레는 남북 간 거리가 4300km 정도 된다.

    보통 자전거 여행은 하루 주행거리를 100km 남짓으로 잡는다. 평지의 경우 시간당 15~20km 속도가 나기 때문에 식사와 휴식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하루 8시간 정도 주행하면 100km를 달릴 수 있다. 한 달 정도면 일본 남북 종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악천후, 자전거 고장 등을 고려하지 않아 비현실적이다. 유적이나 관광지를 둘러볼 시간도 포함돼 있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전체 일정은 40~50일로 다소 여유 있게 잡았다.

    경험자들은 여름철 일본을 여행할 때 가장 힘든 것으로 더위를 꼽는다. 자전거 여행 초반 더위에 지치는 것을 방지하려고 루트는 가장 북쪽인 홋카이도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짰다. 또 험한 산악지형을 피해 바다를 따라 내려오되, 태평양 연안 일부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여행 제한 구역으로 지정된 점을 감안해 동해 쪽 바다를 끼고 한국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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