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4

2014.06.30

맨발의 교황, 마피아와 ‘聖戰’

프란치스코 “마피아는 악의 숭배자로 파문”…伊 시칠리아 경찰도 공동전선

  • 정세진 동아일보 기자 mint4a@donga.com

    입력2014-06-30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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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마피아 가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대부(代父)’. 이 영화에는 조직의 보스가 가톨릭 영세식을 열어 조직원 아이들의 대부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후속작인 ‘대부 3’에서는 교황청 소속 바티칸은행을 통해 돈세탁을 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에서처럼 마피아가 가톨릭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교황청과 ‘검은 커넥션’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6월 21일(현지시간) 모든 마피아 단원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파문됐다’고 선언한 것은 마피아 조직은 물론 이탈리아 내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교황은 이날 마피아 본거지인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주 카사노알리오니오를 방문해 미사를 집전하면서 “마피아는 악의 숭배자이며 공동선을 모욕하고 있다. 모든 마피아 단원은 신과 교감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은 파문됐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언급은 1993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칠리아 마피아를 비난한 이후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같은 발언 내용을 사전에 준비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말했다.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442km 떨어진 칼라브리아 주는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 나폴리의 카모라와 함께 이탈리아 3대 마피아로 꼽히는 은드란게타의 근거지다. 코사 노스트라와 카모라가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위축된 사이 은드란게타는 급격히 세력을 키웠다. 이 때문에 마피아 조직 세계에서 ‘떠오르는 태양’이라고도 부른다.

    교황청과 마피아 끊임 없는 유착설



    칼라브리아 주는 중남미나 유럽 지역으로 코카인을 운송하는 창구 구실을 하고 있다. 은드란게타의 한 해 수입은 약 750억 달러로 이탈리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5%에 이른다. 1월에는 카사노알리오니오에서 마피아 공격으로 세 살배기 코코 캄폴롱고가 숨지면서 비판 여론이 커졌다. 캄폴롱고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불탄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자 이탈리아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이 전 유럽에서 가장 높은 56%에 이르는 칼라브리아 주의 현실이 강력한 범죄조직을 만든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의 ‘마피아 파문’ 선언은 마피아와 교회의 결탁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적잖은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은드란게타는 교회에 많은 돈을 기부했고 일부 성직자는 반대급부로 마피아의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에 참석해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교황청과 마피아의 결탁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교황의 영지를 빼앗기는 등 권력이 급격히 위축된 교황청이 지역사회를 장악하던 마피아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마피아가 바티칸은행을 불법자금 세탁 창구로 활용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교황청과 마피아의 유착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기에 처한 가톨릭교회를 구하려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조직인 가톨릭교회의 혁신을 위해 기존 교황들이 시도하지 않은 과감한 개혁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내부 회계자료가 유출되면서 부패와 무능이 온 천하에 드러난 바티칸은행에 메스를 들이댔다. 취임 3개월째인 지난해 6월 바티칸은행개혁위원회를 설치해 마피아 자금 유입을 차단하고 올해 3월에는 현직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마피아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하더니 드디어 “마피아를 파문하겠다”며 전면전에 들어간 것이다.

    그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한 자를 돕는다’는 가톨릭교회의 핵심적인 소임에 집중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용 관저 대신 일반 성직자 50명과 함께 살며 소년원에서 아이 12명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르네상스 시대 이후 교황들이 줄곧 입어온 벨벳 망토와 붉은 신발을 벗어던졌다. 가톨릭이 여전히 금지하는 낙태와 동성애자 결혼에 반대하면서도 이들에 대해 “내가 누구라고 이들을 단죄한단 말입니까”라고 발언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일련의 흐름에서 이뤄진 마피아와의 전쟁에 대해 우려 목소리도 높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교황이 마피아의 표적이 됐다”고 보도했다. 칼라브리아 주 검사 니콜라 그라테리도 교황의 개혁 행보가 “수년간 교회와 공모해 돈을 세탁해온 마피아를 몹시 짜증나게 하고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밀한 점조직으로 각종 범죄 활동

    1970년대에도 바티칸 교황청의 실력자였던 마르신쿠스 주교가 마피아의 검은 돈 세탁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때문에 요한 바오로 1세는 78년 즉위 직후 마르신쿠스 주교를 해임하고 은행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피아와의 검은 거래를 청산하려던 요한 바오로 1세는 즉위 33일 만에 급사했고 바티칸은행 개혁은 물거품이 된 바 있다.

    이탈리아 수사당국은 은드란게타의 조직원이 최대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범죄 가문 수백 개가 은밀하게 점조직으로 연결돼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마약 밀매와 고리대금업, 도박, 무기 밀매, 부동산, 주식 거래, 포르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유럽으로 들어오는 코카인의 80%가 이 조직원의 손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의회 소속 반(反)마피아위원회는 “은드란게타는 세계적 규모로 확장해나가면서도 ‘가족(패밀리)’을 기초로 삼고 있어 글로벌 환경에도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피아 조직의 살해 표적이 되고 있지만, 역대 교황이 사용해온 방탄차량을 타지 않고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교황은 최근 인터뷰에서 “내 나이에 잃을 것은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경찰은 시칠리아 섬 팔레르모에서 마피아 소탕작전을 벌여 95명을 체포했다. 이탈리아 경찰은 6월 23일 시칠리아 섬의 중심 도시 팔레르모에서 악명 높은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 소속의 조직원 95명을 강탈과 마약 밀매, 돈세탁 혐의로 체포하고 수백만 유로 규모의 사업체 자산을 압수했다. 시칠리아 경찰의 칼로게로 시베타 경감은 “2년간의 수사 끝에 마피아 패밀리 2개 두목과 조직원들을 완전 소탕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교황이 마피아를 파문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이뤄진 검거 작전은 마피아 척결을 위해 교회와 국가가 공동전선을 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마피아와의 대결. ‘맨발의 교황’으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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