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2014.04.28

중국, 新실크로드 부활 아시아 끌어안기 전략 가동

석유·원자재 등 운송 핵심 통로…인접 국가와 우호관계 수립에 박차

  • 시타오 베이징외국어대 영어국제관계학과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4-04-28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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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지도부가 실크로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적극적으로 포섭하려는 베이징의 구애 전략이 명대(明代)까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갔던 옛 실크로드를 따라 이어지는 것. 한반도 정반대 방향에서 가속화하는 중국의 세력 확장은 과연 무엇을 노린 것인가. 중국의 저명한 전문가가 내부 시선으로 이를 해부해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2014년 봄호에 게재한 글을 소개한다.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사막과 파미르 산맥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육상 운송로다. 중국이 가장 번성했던 한나라와 당나라 때 전성기를 누린 이 길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해상 실크로드도 같은 운명을 걸었다. 남중국해, 믈라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에 이르던 이 바닷길은 정화 제독이 7번의 항해를 기록한 15세기 초 절정의 번영을 구가하다 명대 이후 쇠퇴했다. 이후 중국은 4세기 가까이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한 채 갇혀 지냈다.

    실크로드 경제벨트에 숨은 뜻

    이렇게 보면 최근 중국 정부가 실크로드를 공식 언급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앙아시아 4개국 순방을 통해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축을 제안했다. 한 달 뒤 시 주석은 인도네시아 의회 연설에서 중국·아세안(ASEAN) ‘공동운명체’와 ‘21세기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역설했다. 2013년 12월 13일 끝난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지도부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2014년 6대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채택했다. 과연 실크로드 전략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에 담긴 전략적 사고는 과연 무엇인가.

    소련이 붕괴한 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와 중국의 교역 규모는 대폭 증가했다. 1992년 4억6700만 달러에 불과하던 교역량은 2012년 100배 가까이 늘었다. 두 지역이 대륙횡단 고속도로와 철로를 통해 직접 연결되면서 인적 교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00년 전 실크로드의 영광이 재현되는 양상이다.



    물론 21세기 실크로드는 옛 실크로드와는 다르다. 비단이 오가던 길 위로 이제는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석유, 천연가스, 원자재 등이 운송된다. 2009년 건설한 총연장 3000km의 중국·카자흐스탄 송유관으로 한 해 최대 3000만~4000만t 원유가 흐른다.

    자원외교만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이 추진하는 서부 지역 팽창 전략의 또 다른 주요 요인에는 러시아와 신장위구르자치구 문제가 있다. 중앙아시아가 러시아에 넘어간 이후 이 지역은 중국에게 안보 위협일 뿐이었다. 19세기 수차례 불평등조약으로 광활한 북서부 영토를 양보하게 된 중국은 이후 소련과의 영토분쟁을 피할 수 없었고, 이는 1969년 국경분쟁으로 이어졌다. 최근 들어 일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할 것이라 예견하지만, 역사적으로 마찰이 끊이지 않던 두 나라가 동맹을 맺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실크로드 경제벨트에는 바로 중앙아시아를 러시아로부터 떼어내 중국과 러시아 사이 완충지대로 활용하겠다는 중국 측 의도가 녹아 있는 것이다.

    러시아 또한 전 세계에 걸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다. 20년 가까이 중국에 군사기술을 이전해온 러시아가 최근 그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이를 방증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가격을 결정하는 양국 간 협상도 수년째 교착상태다. ‘경제대국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국 본토보다 중앙아시아에 훨씬 인접한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이미 1884년 중국 영토로 편입됐지만 종교, 언어적으로도 중앙아시아와 더 가깝다. 이로 인해 발생한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분리주의운동은 중앙아시아 일대에 은신처와 본거지를 두고 있다. 날로 거세지는 분리주의 진영의 테러를 막는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가진 최대 목표다. 2013년 10월 28일 톈안먼과 올해 3월 2일 쿤밍 기차역 테러사건 모두 분리주의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고 중국 당국은 판단한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신장지구 관리의 어려움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와 가까워질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인적, 물적 교류가 증가하면 분리주의운동 단체들이 단원을 모집하고 자금을 마련할 기회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및 원자재 수요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적극적 행보를 감안하면, 중앙아시아를 끌어당기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베이징은 러시아와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이는 한편,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주의운동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협조를 받는다는 이중 전략을 택하게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강대국 전쟁터

    다음은 바다다. 중국에게 동남아시아가 중앙아시아와 가장 다른 점은 지금까지 안보위협 요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도차이나 국가는 1000년 넘게 중국 조공체제의 주요 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중국은 1880년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후 100년간 서양 열강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힘에 의해 이 지역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냉전 시기에는 혁명이념을 이 지역에 수출하려 했던 시도가 지역국가들로부터 불신을 샀고, 반복된 국경 마찰도 분노의 씨앗이 됐다. 1991년까지 ASEAN과 공식 연락 채널을 열지 못할 정도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냉전이 종식하면서부터다. 2002년 양측은 포괄적 경제협력에 관한 기본협정에 서명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2010년 1월 발효된 중국·ASEAN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무역규모는 2012년 4000억 달러로 치솟았고 중국은 ASEAN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정치·외교 분야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 1997~98년 금융위기 당시 중국은 위안화 절하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혜택을 베풀었다. 이른바 ‘매력 공세’의 시작이었다. 2003년 중국은 인도와 함께 비ASEAN 회원국으로는 최초로 동남아시아 우호협력조약에 서명했고, ASEAN+3, ASEAN 지역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등 관련 국제회의체에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2009년에 이르자 상황은 다시 한 번 바뀐다. 필리핀, 베트남과의 남중국해 분쟁이 불거지고 이 지역에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하자 중국과 ASEAN의 관계는 다시 악화했다. 특히 인도와 일본이 지정학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향한 적극적 행보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 뒷마당이나 다름없던 동남아시아는 이제 주요 강대국이 어깨를 다투는 전쟁터로 탈바꿈했다.

    ASEAN에 걸린 중국의 이해관계는 남중국해가 전부가 아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에게 믈라카 해협은 경제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만에 하나 미국과 싱가포르 함대가 이 해협을 차단하면 중국의 에너지 수입은 사실상 끊긴다. 중국 정부가 미얀마와의 우호관계 수립을 통해 가스관과 송유관 건설에 총력을 기울인 배경이다. 다급해진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이 사상 최초로 미얀마를 국빈 방문하며 가까워지는 두 나라를 막아섰다. 그 결과 중국이 추진해온 가스관 및 송유관 건설 사업은 불투명해졌고, 베이징의 전략적 처지는 한층 어려워졌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의 변수

    현지 동포를 보호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동남아시아에는 전통적으로 중국 동포가 많았지만, 최근 경제가 부상하면서 사업을 위해 진출한 중국인 수도 상당하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체 재외거주 중국 동포 5000만 명 가운데 3270만 명이 동남아시아에 산다. 자본과 부를 거머쥔 중국인들에 대한 현지인의 반발과 불만은 때로 폭동으로까지 이어진다. 보호를 원하는 재외동포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이렇듯 동남아시아에 걸린 중국의 막대한 국익을 감안하면, 최근 중국 정부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공언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당장은 에너지 자원 확보, 장기적으로는 2009년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ASEAN과의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속내다. 결국 뒷마당이 평안해야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또 다른 변수다.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 속도를 감안하면, 동아시아 지역에 주둔하는 군사력 비중을 늘리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역내 경제동맹을 강화하려는 워싱턴의 행보는 지극히 당연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처지에서 볼 때 이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양상을 심화하는 요인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해상 실크로드’전략은 중국을 위협으로 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시각을 약화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뿌리부터 흔들고자 하는 복잡한 계산의 결과물이다.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재건하겠다는 중국의 1차 의도는 당연히 남쪽, 서쪽 이웃들과 잘 지내겠다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앞서 살펴본 다양한 전략적 이해관계도 함께 깔려 있다. ‘멀리서 사는 사촌보다 이웃이 낫다’는 중국 속담처럼, 그동안 유럽과 미국을 상대하느라 소홀했던 인접 국가들을 끌어당기겠다는 의도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제 중국은 ‘중국식 아시아 중시 전략’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영어원문은 www.globalasia.org/Issue/ArticleDetail/ 548/back-on-the-silk-road-chinas-version-of-a-rebalance-to-asia.html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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